이야기꾼이 거치는 4단계 여정
미디어 기획의 기초를 강연할 때 항상 올드한 사진 한 장을 들고 간다. 시장에서 이야기꾼이 소리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둥그렇게 서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멀리서 애들이 달려오고, 도떼기 시장 속에서 이야기꾼이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목소리 높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매체의 4요소 (발화자, 시청자/독자, 콘텐츠, 채널)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 많은 시장에 처음 자리를 편 이야기꾼이다. 바삐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이야기를 시작하면 될까? 아니다. 돗자리에 다가와 가장 앞줄에 앉을 사람을 공략해야 한다. 첫 번째 관객을 사로잡고, 그들이 친구를 데려오게 만들고, 단골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미디어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해 동안 매체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건, 독자와의 관계 구축이 하나의 명확한 여정을 따른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되돌아보니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상상 속 독자 정의하기다. 누구에게 이야기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단계. 두 번째는 콘텐츠로 증명하기다. 알고리즘과 플랫폼 특성을 이해해서 실제로 그 독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세 번째는 두 번째 독자 모으기다. 첫 독자가 친구를 데려오게 만드는, 그 확산의 고리를 만드는 단계. 마지막은 지속적 관계 유지하기다. 일회성 시청자가 아니라 계속 돌아오는 독자로 만드는 일.
이 과정은 1, 2, 3, 4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순환한다. 독자는 변하고, 우리도 변하고, 플랫폼도 변한다. 그래서 이 네 단계를 계속 돌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여튼, 이런 전체 그림을 염두에 두고 각 단계별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처음 매체를 기획할 때부터 독자들과 실제로 소통하며 채널을 키워나가는 과정까지.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 그렇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시장에 돗자리를 편 이야기꾼은 무엇을 먼저 찾아야 할까? 첫 번째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가장 앞줄에 와서 자신이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미디어를 기획할 때도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건 첫 번째 독자/시청자다. 당신이 꺼내려는 이야기를 들어줄 독자는 누구인가? 그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왜 필요하고 매력적인가?
이 일화에서는 비유적으로 '첫 번째 독자',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적어도 수천 명, 유의미하게 이 매체가 사로잡고자 하는 목표 청중의 시장 규모 일부를 뜻한다. '그거 볼 만하던데' 그 소문을 내줄 첫 독자들을 만드는 게 매체 시작 후의 첫 번째 과제다.
미디어 기획 프로세스의 첫 번째로는 수용자를 정의하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드는가. 아주 간단하게는 당장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 친구의 취향, 하루 일과, 무엇에 돈을 쓰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주된 관심사와 어려움을 겪는 문제, 열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초기에 닷페이스 팀원들과 이 과정을 하면서 잡지를 오려 콜라주로 프로필을 만든 기억이 있다. 사실 이때는 매체를 만든 사람들이 동일시하는 캐릭터 같은 걸 만들었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모델 J와 배우 Y, 그리고 가수 E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과한 디테일을 서로 던지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매체를 만든다는 건 결국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내면서도 말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를 명확하게 만들어내는 행위다. 그걸 위해 우리는 공동의 정신 모형 같은 걸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머릿속에서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때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건 저 사람이야'라고 가리키기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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