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살짝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계정 탈퇴가 아니라 앱 삭제를 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방증한다.
어제 이 사진을 찍어 놓고 나도 모르게 스토리에 올려야지, 생각했다가 아차 했다. 맞다 나 인스타 지웠지... 대신 브런치에 올리자...
지난 학기 동안 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학교를 다닐 때 근본 없는 괴로움에 시달린 기억들이 끔찍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고 힘들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받고, 강박을 느낀다.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기도 하고 미움도 받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어려움은 실체도 없는 대상에게 이 모든 것을 능수능란하게 케어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데서 시작됐다. 그러다 보면 그 '실체도 없는 대상'이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스스로 자꾸만 평가하게 되고, 그 결과 한 가지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은 가치판단을 내리게 된다. 잘 모르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결점을 발견하고 부정적 가치판단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그게 내 결점은 아닌지 다시 생각한 뒤 나를 너무나 음습한 사람으로 스스로 몰아가는 게 나의 뻔한 내적 패턴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 판단들은 다 나를 향하게 된 것이다. 진로 선택 같은 중요한 고민에서부터, 저녁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로 뭘 볼지 결정하는 것까지, 결정을 내릴 때에도 너무 많은 기준들이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행동 하나하나를 가지고 점수 매기고 있지 않을 텐데도 그런 식이었다. 생각이 겹겹이 쌓이니까 내가 지금 뭘 느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십 대 초중반에는 오히려 너무 생각하는 대로 말해서 문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해야 하는 순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 상담하면서 깨달았다. 이 뭐라 말할 수 없었던 찝찝한 기분들은 여러 대상과 사람을 거쳐 결국은 나를 평가해 오던 실체 없는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실체도 없는 '좋은 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내가 정말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는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그 결과 괴롭고 피곤했구나. 나는 그냥 나일뿐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이 특별한 묘책을 알려주거나 대단한 위로의 말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지 않는 젊은 분이었는데, 그냥 수다 떠는 것 같은 편한 분위기에서 내가 말을 잘할 수 있게 이끌어 주다가 맞불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줬다. 그런 때마다 얻는 미묘한 깨달음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마침 이번 학기에는 상담심리학과 인지치료 강의를 듣고 있었기에, 수업 시간에 말로만 들어 감이 잘 오지 않던 이론들이 나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말에 마지막 상담을 했다. 선생님이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겁이 났다. 난 상담 기간에도 뭘 잘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혼자서 뭘 잘한다는 걸까. 상담을 받지 않는 나는 다시 전처럼 쓸데없는 생각에 에너지 낭비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상담 없이 보낸 몇 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생겼다.
인스타그램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 말은 즉 게시물 대진운이 안 좋으면 상술한 종류의 온갖 생각이 단시간에 최고의 효율로 들기 쉬운 환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내가 취약한 분야는 지나간 인간관계지만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안 보게 된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 종류의 게시물이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서 피드를 내리고 스토리를 넘기다 보면, 디엠을 보내고 답장을 받다 보면 난 결국 세상에 홀로 남게 될 것 같다. 내가 이들과 멀어진 사이에 이들은 서로 가까이 지내고 있고, 나는 먼저 이 사람의 안부를 묻는데 이 사람은 내 일상에 별 관심 없는 것 같다. 누가 내 스토리를 봤는데도 누구는 답장을 하지 않았는지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데 한 술 더 떠서 나는 나 자신에게 신경 쓰이지 않는 것처럼 세뇌한다.
어제도 비슷한 자극을 받았고 다시 언제나처럼 생각했다. 얘랑 얘는 연락 주고받는구나. 그런데 왜 얘들은 나랑 멀어졌지, 내가 그때 이러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래 나도 이 사람들이랑은 어딘가 불편했고...
또 하나마나 못한 생각이었다. 난 영원히 그 애들이 나를 그저 어쩌다 보니 멀어졌지만 향수를 느끼는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골 때리고 다신 안 보고 싶은 인간관계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멀어진 사람들'을 후자보다는 전자로 생각하고, 그들과 멀어진 이유는 세월과 코로나라고 생각하지만 또 근본 없는 생각의 늪에 빠져 있는다면 영원히 그 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스토리 창을 닫고 나서, 비록 내가 상담을 통해 저런 생각을 다시는 안 하는 사람이 되진 못했지만, 적어도 생각 밖으로 벗어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데 약간 안도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해로운 생각을 스스로 제어하긴 그른 것 같으니 최소화라도 하고 싶었다. 내게 생각을 끼얹다시피 하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다.
솔직히 언제 다시 깔게 될지도 모르겠다. SNS가 주는 특유의 피로감 때문에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삭제했는데, 마찬가지로 계정을 지우지 않았다 보니 앱이 없어도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자꾸만 들어간다. 페이스북은 그나마 덜 들어가는 편이긴 하지만 트위터는... 덕질과 비건 맛집 정보는 트위터 없이 알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 보는 중인데 인스타도 친구들 근황이 미친 듯이 궁금하면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친구라면 걔들이 알아서 근황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기도... 여하튼 이틀뿐이지만, 인스타 없이 살아보니까 없어도 휴대폰으로 할 일은 많아서 아직까지는 괜찮다. 좋은 출판물 소식을 그때그때 접하지 못할 거라는 게 그나마 아쉬운 부분인데, 대신에 알라딘에 자주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음, 통장 사정엔 해롭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