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밴쿠버에서 보낸 하루
밴쿠버 여행 중 노스밴쿠버 일정
2019.08.20~2019.08.22
동행: 엄마
방문한 장소: 딥 코브, 론즈데일 퀘이 마켓, 밴쿠버 다운타운(...)
이전에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닐 때, 난 주로 끌려다니는 쪽이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친구에게 의존하는 식은 아니긴 했지만. 극강의 계획형 친구들(다 다른 집단에서 만난 아이들인데 어쩜 그리들...) 사이에서 나는 꽤나 수동적인 인간이곤 했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완전히 기대 버리는 스타일은 또 아니라서 적절히 알아보고 친구들이 선택지를 주면 난 주로 선택을 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여행에 공백이 없게 날 데려 다녀 줬다. 민폐라고 생각하냐면, 또 그렇진 않다. 친구들은 내가 여행에 함부로 개입하면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서 싫어하는 눈치였다(...? 고맙다 친구들아?)
언니는 계획보다는 융통성이 넘치는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여행은 원래 언니와 떠나기로 했던 여행이고, 언니와 함께 대강의 그림을 그렸다 보니 계획은 오히려 내 몫에 가까웠다. 한편 나는 계획에 그렇게 능한 사람이 아니면서도 계획이 없는 시간을, 특히 혼자 있는 것이 아닐 때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 대한 공부는 언제나 부족하다.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거나 길고, 그 와중에 일정은 꼬이기까지 한다.
노스밴쿠버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노스밴쿠버의 명물 딥 코브에도 있는, 밴쿠버의 전통음식인 스시를 먹으며 한국인 사장님과 서로 모른 척 영어로 대화할 때는 좋았다. 도넛으로 유명한 가게에서 도넛보다는 커피가 더 맛있었지만(긍정적인 의미다. 커피가 정말 맛있는 가게 HoneyDoughnuts & Goodies!) 그것도 좋았다. 딥 코브는 멋진 만이었고 사람들은 유유자적 카누에 앉아 노를 젓고 있었다. 나도 카약을 탈까 했는데 호수에 입고 들어가기 부적절한 차림이었다. 수영복을 가져올걸, 하면서 엄마와 물가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때도 좋았다.
딥 코브에서 다음 행선지에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데 뭔가 이상했다. 구글맵이 하라는 대로 내렸는데 너무도 한적하고 썰렁하고, 심지어 못생기기까지 한 동네가 나왔다. 끊임없이 찝찝한 마음을 그러안고 지도가 가라는 대로 가 봤더니 다음 버스는 한참 뒤에 온다는 알림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 하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캐네디언 타이어(캐나다의 대형 잡화점)가 있었고, 거기 들어가서 돌아다니는데 이상했다. 진땀이 빠지는 게 아니라, 안심이 됐다. 노스밴쿠버에는 객관적으로 할 게 너무 없었다. 다음 행선지인 론스데일 퀘이 마켓도 그렇게 큰 곳이 아나라던데. 여기서 꽤 많은 걸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고, 차라리 뜬금없는 차질 때문에 시간을 때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괴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캐네디언 타이어를 다 돌고 바깥에 나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다른 버스를 발견했다. 그 버스를 탐으로 인해 엄마와 나는 대화해야 했다. 우리가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엄마와 나는 대화라고 하기도 애매한 소통을 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말을 하는 대신 각자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찾다가 그냥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귀엽고 살 건 젤라또 밖에 없는 론스데일 퀘이 마켓을 삼십 분 만에 돌아보고 주변을 잠시 구경하다가 숙소에 와서는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난데없는 넷플릭스 영화-한국어 자막 지원이 안 돼서 5분 만에 꺼야 했던-도 보고 파스타도 만들었다. 야외에 두 개의 나무 의자가 있는 멋진 에어비앤비였다.
그게 우리가 그다음 날 밴쿠버 다운타운에 다시 간 이유다. 할 일이 없는 우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할 일이 없는 여행자는 동행과 이야기하게 된다. 계획이 많지 않다면 그 시간 안에 눅진하게 눌어붙게 된다. 마치 엄마와 내가 딥 코브의 잔디밭에 앉아서 카누 타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았듯, 더 새로운 장소에 방문하지 않아도 노스 밴쿠버가 얼마나 정겹고 살고 싶게 하는 동네인지 알게 되었듯 말이다.
+ 사실 노스밴쿠버에서는 다들 흔들 다리를 보러 협곡에 가긴 하던데 우리는 입장료 가성비를 생각하면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시애틀 스페이스 니들에서 비슷한 값을 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생각하면 아.. 그냥 돈 써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 다운타운 다시 간 날에는 맥(캐나다 브랜드라서 한국보다 쌈)에서 화장품도 지르고 느끼한 말레이시아 음식도 먹고 내 북미 생활 영혼의 동반자였던 H마트에도 갔다.
+++ 밴쿠버 여행 중 가장 신기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밴쿠버 도심에서 노스밴쿠버에 갈 때는 페리를 탄다. 그것도 밴쿠버 전철처럼 평범한 대중교통 취급을 받아서 과금 없이 환승이 됐다. 창문도 더러웠는데 괜히 신났다. 이 여행기를 쓰면서 괜히 노스밴쿠버 집값...같은 걸 쳐 보고 있는 나를 보니 그때의 신남 어디 안 갔다.
+ 다음 글은 내가 엄마와 함께했던 여행 중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공간인 시애틀에 대해 쓸 텐데 주제 뽑기가 어렵네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