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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 Feb 06. 2022

서울살이 정리

서울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혼자 대학로에 갔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금방 갈 수 있었다. 역 뒤편으로 들어서면 일방통행 도로가 있는 우리 학교 대학가와 달리 혜화역 4번 출구는 복작거렸다. 대학로 cgv 아트하우스에서 미리 예매해 둔 영화를 봤다. '문라이트'였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옛날 영화나 몇 편 다운로드해서 보고, 극장에서 보는 독립영화를 동경만 했던 내게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인디 영화 많이 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cgv 1층의 원더플레이스에서 충동적으로 옷을 몇 번 샀다. 혼자였지만 많이 들떠 있었다.

서울에서 5년이 흘렀다. 그동안 극장에서 인디 영화를 본 적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날 산 옷은 새내기 때나 좀 입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뭔가가 없을 거라는 걱정을 해 본 적은 없다. 생경한 경험을 편리하고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서울이 좋았다. 그런 감각들을 당연시하게 되는 순간부터 내 세계는 넓어졌고, 내 성장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랬던 내가 서울을 떠나게 됐다. 고향과 가까운 지역의 로스쿨에 합격했다. 처음 입시를 시작할 때 나름의 마지노선으로 잡아 놓은 결과였는데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입시 커뮤니티만 들어가 봐도 서울을 떠나는 결과를 실패로 자평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결과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굳이 고향 근처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나 자신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끄러운 마음을 안고 구글링을 했다. 내가 진학하는 학교와 비슷한 학교들을 누군가가 '서울에 갔던 지방 학생들이 연어처럼 돌아오는 곳'으로 표현해 놓은 것을 봤다. 나는 실패한 연어인가? 참담한 연말이었다.


생각이 이어지면서 서울에서의 내가 어땠는지를 떠올렸다. 물 만난 고기처럼 행복했지만 늘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그 감정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울 아이들은 순진한 표정으로 사투리를 해보라고 하거나, 글에 '서울 애' 같은 말을 쓸 수 있어서 부럽다고 했다. 고향에서 경험한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시를 완전히 오독해 놓고 향수(본인에게도 고향-서울-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마냥)에 젖어 있는 아이도 있었다. 지방에서 서울에 온 나는 '대단하'거나, 사투리를 덜 써서 '신기'한 아이였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혹은 때로는 의도했겠지만) 서울 아이들은 출신 지역의 맥락에서는 납작한 환상이나 당연한 위계를 상정하고 말을 걸어왔다. 때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이기도 했다. 그들이 숨 쉬듯 누려 온 인프라나 고민 없는 불평의 대상은 어린 내가 늘 시기 혹은 동경하던 것들이었으므로. 내 피해 의식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

지방 로스쿨 합격을 계기로 내 사고 회로를 제대로 직면하자, 어디까지가 정당한 피해의식이고 어디까지가 열등감인지 헷갈렸다. 무심코 던져지는 말들에 기분이 상할 때마다 고민했다(지금 내가 기분 나빠도 되는 걸까? 내가 또 예민한 걸까?). 혹은 체념했다(이번에도 시작이네). 아니면 돈을 조금 더 손쉽게 아끼는 사람들과 비슷한 물질적/문화적 기반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발버둥 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했다. 수 년을 복잡하게 살아 왔구나 싶었다.


그러자 잊고 지내던, 원서를 내던 시점 서울로 두 장의 원서를 쓰지 않기 한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마음을 먹어 보고 싶었다. 고향에서도 늘 떠나고 싶었지만 서울에서도 난 이방인이었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정체성을 이용해서 내 피해의식인지 열등감일지 모르는 마음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고향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곳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보면 어떨까. 당시의 내 사고 흐름은 이런 모양이었다는 사실이, 입시 결과가 나올 무렵의 좌절감으로부터 살짝 벗어나니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고작 진학하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수도권 중심적인 사회에서 지방으로, 그것도 기피해 왔던 고향 근처로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던 내가, 실은 어느 정도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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