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외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비 매거진 Aug 13. 2024

터키 에페수스를 지속시키는 힘

튀르키예는 방대한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의 유적을 보유한 나라다. 성경과 역사서로 익숙한 많은 지명이 여전히 튀르키예의 행정 지명으로 남아 있다. 소멸해 버린 제국과 도시. 그 이후를 가늠할 지표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켜켜이, 층층이, 알알이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풍경이 에게해로 바뀌는 순간 비행기는 튀르키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이즈미르(Izmir)에 착륙했다. 여전한 기내식의 포만감을 안고 향한 곳은 중소 도시 셀축(Selcuk)의 에페수스(Ephesus) 고대 도시 유적지였다. 셀축에서 단 한 곳을 보아야 한다면 이곳이라는 뜻이리라.



가이드의 뜨거운 열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알고 보면 튀르키예는 유럽 최고, 최대로 꼽히는 고고학 유적의 보고입니다. 아쉽게도 영국이 많은 것을 훔쳐 가긴 했지만, 튀르키예에는 이탈리아보다도 많은 로마 시대의 유적이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쓰러진 기둥과 흩어진 돌조각이지만, 그가 나열하는 이름과 숫자로 금방 설득이 된다. 에페수스 고대 도시에는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인이 건설했고, 로마인이 점령했다가, 알렉산더 대왕이 재건한 후 15세기에 오스만제국의 일부가 된 역사가 켜켜이, 층층이, 알알이 축적되어 있다. 



그 많던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에페수스 고대 도시


도시는 멈춰진 시간을 품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로마 시대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였기에,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인구와 기반을 갖춘 도시였음을 남은 잔해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기원전 356년 건설), 2만5,000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 1만2,000권의 책을 소장했다는 셀수스 도서관, 의과대학, 메두사와 니케 여신을 새겨 넣은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아니 지금도 기둥으로, 터로, 무덤으로, 타일로, 조각으로, 문자로 남아 증명하고 있다.


인구 50만명의 항구도시를 지탱했던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들


찬란했던 번영기는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37년 사이(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기간)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라클레스의 문에서 셀수스 도서관 사이의 화려한 쇼핑가였다는 쿠레테스 거리, 로마의 발달한 치수 기술을 증명하는 트라야누스 분수와 목욕탕, (칸막이도 없이 적나라한) 공중화장실 등은 발굴된 작은 부분일 뿐이다. 계속 파면 첫 정착민이 살았던 기원전 6,000년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기원전 104년경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분수. 황제의 분수라고도 불렸다


에페수스 고대 도시를 처음 방문했던 것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2015년)되기 전이었다. 여전한 것은 가이드의 열정, 한낮의 열기, 여행자들의 감탄사였다. 영감에 휩싸인 방문객들은 에페수스의 잔해 위에서 놀라운 건축 기술과 디테일을 간직한 2,000년 전 도시를 상상으로 재건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이키’로 더 익숙한 승리의 여신 니케(Nike) 여신상은 위태로울 만큼 카메라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복원된 전면부만으로도 뛰어난 건축술을 보여 주는 셀수스 도서관. 1만2,000권의 책을 소장했었다


기원전 2세기에 동로마제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번성했던 에페수스는 항구에 퍼진 말라리아 등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멸 도시가 됐다. 누군가 물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가이드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갔죠!” 그에게 요즘 한국의 도시 소멸과 인구 감소에 관해 물으면 같은 대답을 할 것 같다. 도시의 소멸 이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 것인가. 사족이지만, 지인 중 하나는 물려받은 선산에 작은 나무집을 지으며 땅에서 나오는 그릇 조각을 버리지 않고 모은다. 청자, 백자가 아니어도 조상님이 쓰던 것이니 유품이고 유물이라는 것이다. 나무집이 완성되면 한 편에 전시할 예정이니, 와서 보라고 했다. 꼭 갈 것 같다. 



에페소스 고대 도시
Efes Antik Kenti

Atatürk, Efes Harabeleri, 35920 Selçuk/İzmir, 튀르키예
홈페이지: https://whc.unesco.org/en/list/1018



어머니의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의 집


에페수스 유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모 마리아의 집(House of the Virgin Mary)이 있다.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보내고 승천한 곳에 대해서는 예루살렘과 에페수스 사이에서 ‘원조’ 논쟁이 있었다. 교회의 문헌 중에는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인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위해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가톨릭교회의 공식 인증과 여러 교황의 방문으로 논란이 종결되면서, 성지순례지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성모 마리아상. 성모 마리아의 집은 여러 교황의 방문으로 가톨릭교회의 인증을 받았다
코레소스 산중에 있던 작은 집에서 성모 마리아는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 전세계 순례객이 찾아오는 채플이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은 현재 아담한 채플로 꾸며져 있다. 내부 촬영은 절대 금지되어 있고, 늘어선 대기 행렬 때문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수분 이내. 뭔가 아쉬운 듯 허무한 듯한 마음을 채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소액의 봉헌금과 교환한 작은 초 하나를 켜 두는 것, 그리고 빈 생수통을 하나 준비해 성수를 받아 오는 것이다.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했던가. 간절한 순례자들이 놓고 간 지극한 염원은 종종 기적으로, 치유로 보상받기도 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촛불에 담긴 간절한 소원이 때론 기적으로 풀어지기도 했다


동정 마리아의 집
Meryem Ana Evi

주소: Atatürk Mahallesi, Meryemana Mevkii, Küme Evler, 35920 Selçuk/İzmir, 튀르키예
전화: +905304690844
홈페이지: www.hzmeryemanaevi.com



숨은 보석 같은 
튀르키예 부티크 호텔 
더 스테이 The Stay


오너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호텔이 있다. 범상치 않은 인테리어와 콘셉트, 미디어아트와 패션 브랜드까지 다방면의 코업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모기업의 정체성이 영화 제작 및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체인 호텔이 아닌 튀르키예 브랜드의 디자인 부티크 호텔을 찾는 이에게 튀르키예 내에 6개의 체인을 가진 ‘더 스테이’을 추천한다. 


오래된 창고를 모던하게 개조하고 데크 정원과 수영장을 더해 팜 하우스 분위기를 연출한 더 스테이 웨어하우스


에페수스를 여행하면서 머물렀던 더 스테이 웨어하우스(The Stay Warehouse)는 에게해 인근에 자리 잡은 유명 휴양지인 알라차티(Alaçatı)에 있다. 오래된 창고에 정성과 센스를 덧입혀 개방감 가득한 리조트로 개조했다. 백종원이 천상의 맛이라고 극찬했던 ‘카이막’이 매일 나오는, 튀르키예 가정식 조식이 일품이다.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호텔의 공식 애견 보더 콜리의 애교는 덤이다. 참고로, 이스탄불에 있는 2개의 체인 호텔은 가장 ‘핫’하다는 니산타시(Nişantaşı) 패션 지구,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에 각각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적인 수상 경력을 지닌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손을 거쳤다. 이곳의 덤은 호텔 내부에 전시된 유망 아티스트들의 예술 작품이다.


로비에서 맞아 주시는 이는 반갑게도 한국작가 박승모의 작품, ‘유현정’


The Stay Warehouse
주소: Alaçatı, 27, 14001. Sk., 35930 Çeşme/İzmir, 튀르키예
전화: +902329707829
홈페이지: www.thestay.com.tr



미슐랭인데 이런 가성비가?
오디 우를라 OD Urla


올리브 나무 아래 놓인 야외 테이블에서 마지막 디저트를 비우며 극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미쉐린(1스타)이 보증하는 레스토랑에서 12개의 코스 요리를 즐기는 비용이 한화로 17만원이 넘지 않았다. 6잔의 와인 페어링을 더하면 30만원이 조금 넘었다. 맛과 분위기, 서비스 등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의 관점에서, 강력하게 추천한다.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서의 식사. 다양한 올리브 오일을 맛볼 수 있다 ©OD Urla


무엇보다 놀란 것은 튀르키예 와인의 퀄리티와 풍부한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 지리적으로만 동양과 서양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 식문화가 만나서 최고의 것이 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넘쳤다. 


동서양의 문화와 친환경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음식으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오디 우를라 ©OD Urla


잠시 일행의 테이블에 들른 오스만 세제네르(Osman Sezener) 셰프는 피곤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확장을 계획하는 이유는 레스토랑이 창출하는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대한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고향 우를라로 돌아온 오스만 세제네르 셰프는 레스토랑을 열기 전에 과수원과 밭을 사고 농사를 먼저 시작했다. 로컬 식재료 사용을 위해 직접 농축산물을 재배하거나 10km 이내의 지역 농부와 장인들에게 구입하는데, 그 중심에는 올리브가 있다. 마치 와인리스트처럼 빼곡하게 기록된 올리브 오일 리스트가 따로 있을 정도다. 제로 웨이스트를 원칙으로 식재료의 부산물은 오일, 소스, 칩 등의 제품으로 가공하고 있으며, 자동차도 전기차만 고집할 정도로 친환경 윤리경영을 고집하고 있다. 


분주한 오픈 주방.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일까, 식당은 자정까지 바쁘다


OD Urla
주소: Rüstem, Süt Pınarı Mevkii, 2018/9 Sokak No:28, 35430 Urla/İzmir, 튀르키예
전화: +905397751221
홈페이지: www.odurla.com


 
글·사진 천소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매거진의 이전글 사슴만 볼 수는 없잖아? 일본 나라의 맛집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