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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ug 30. 2024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
이방인의 은행나무 길

국적을 뛰어넘는 대항의 정신


100여 년 전, 조선 사회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독립운동을 취재해 해외에 알렸고,  누군가는 눈 감는 순간까지 조국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며 끝끝내 이 땅에 묻혔다. 국적은 달랐으나 불의에 대항하는 그 마음만큼은 단일했던 역사 속 인물들. 코스를 따라 여행하고 나면, 그들을 더 이상 ‘이방인’으로만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종로 ▶이방인의 은행나무 길
코스 거리: 2km
소요 시간: 2시간

딜쿠샤 – 홍난파 가옥 – 베델 집터 – 서울 한양도성 – 국립기상박물관 – 경희궁 - 경교장 – 스코필드 기념관(돈의문 박물관 마을) – 헐버트 동상(주시경 마당)



희망의 궁전
딜쿠샤



일제강점기 당시, 3·1 운동 전개 소식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해 기사로 꾸준히 외신에 보도했던 미국인 통신원 앨버트 테일러. 그는 조선 총독을 항의 방문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942년, 앨버트는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한국을 급하게 떠났으나 ‘태평양 너머에 내 나라가 있고, 내 집이 있다’고 늘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바람대로 그의 육신은 한국 땅에 묻혔다.



딜쿠샤는 1923년에 앨버트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가 인왕산 성곽길을 산책하던 중 만난 은행나무 아래 지은 붉은 벽돌집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희망의 궁전’이란 뜻을 지닌 딜쿠샤는 오래된 성벽과 언덕, 남산과 인왕산이 보이던 서양식 2층 주택이었다. 2021년 3·1절부터 개방된 딜쿠샤 전시관은 마치 아담한 박물관 같다. 내부 중 1,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에서의 생활상과 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딜쿠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도보 10분


▶Check Point
권율도원수집터

딜쿠샤 바로 옆, 거대한 은행나무 하나가 있다. 테일러 부부가 인왕산 산책 중 만났다는 그 은행나무다. 그리고 이곳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 도원수 장군의 집터이기도 하다. 늠름하고 단단한 나무 기둥이 장군의 모습과 닮아 있다. 



권율장군집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



독일 선교사의 집
홍난파 가옥


1900년대 초반, 송월동에는 독일영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그 일대는 국내 독일인들의 주거지였다. 홍난파 가옥 역시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지은 집이다. 지붕이 가파르고 거실엔 벽난로가 있으며, 창문을 위아래로 여닫는 독특한 방식이 특징이다. 이방인의 흔적이 남은 집이지만, 지금은 <봉선화>, <고향의 봄>의 작곡가로 유명한 음악가 홍난파의 집으로 더 알려져 있다.



홍난파는 1935년부터 6년간 거주하며 말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수많은 대표작들을 남겼다. 새문안 교회에 다니며 서양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감옥에 다녀온 뒤 일본의 압박을 받았고, 안타깝게도 그의 음악 역시 변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 한국의 서양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홍난파 가옥에서 홍난파 가곡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그의 음악을 기리고 있다. 



홍난파가옥

주소: 서울 종로구 송월1길 38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도보 14분



한국을 사랑했던 영국인 기자
베델 집터


구한말, 앨버트 테일러와 함께 한국에 한 줄기 빛이 돼 준 해외 언론인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며 일제에 대항했던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베델이다. 베델은 1904년 한글로 된 민족 항일지 <대한매일신보>와 영어로 된 <코리아 데일리뉴스>를 창간하고 항일 언론 활동을 힘껏 지원했다. 그는 일제의 침략에 반하는 기사를 쓰고, 일본의 을사늑약 강요를 비판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기사를 <코리아 데일리뉴스>에 영어로 싣기도 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때도 앞장섰다. 



비록 일본의 방해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지만,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에 대한 의지가 급격히 높아졌다. 홍난파 가옥에서 약 30m쯤 걷다 보면 베델의 집터에 다다른다. 월암근린공원으로 들어오는 오르막길 왼편에서 집터의 표석을 찾으면 된다. 
 
주소: 서울 종로구 홍파동 2-2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도보 16분



서울의 상징
한양도성 성곽


양도성은 조선시대 한양의 도심부를 둘러싼 도성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1396년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고 성곽을 쌓았으니,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됐지만 1974년 박정희 정권 시기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했고, 현재 삼청지구에 이어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 약 70%에 이르는 구간이 남아 있다. 


한양도성 탐방 구간은 총 6구간으로 나뉜다. 그중 인왕산 구간은 돈의문 터부터 경교장과 월암근린공원을 지나 창의문까지 이어지는 4km의 코스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수백 년 역사의 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인왕산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엔 서울 사대문 도심의 마천루들이 만들어 내는 멋진 서울 도심의 야경도 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94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3번 출구 도보 13분


▶Check Point
월암근린공원

베델집터와 한양도성 성곽 그리고 푸릇푸릇한 나무와 잔디를 모두 품은 공원. 산책하기 좋은 코스인 건 물론이고, 인왕산의 수려한 자태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귀한 스폿이기도 하다. 



월암근린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 1-2



서울 날씨의 기준
국립기상박물관


1932년,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던 지대 높은 곳. 기상 관측을 위한 새로운 건물인 서울기상관측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1933년 1월1일부터 이곳은 서울 날씨의 기준이 됐다. 지금은 국립기상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박물관 야외 뜰은 여전히 서울 날씨의 측정 기준이 된다고. 



박물관은 대한민국 기상관측의 역사와 현재 첨단화되어 있는 기상관측기술을 소개한다. 총 7개의 전시실과 쉼터 1곳으로 구성돼 있고, 규모가 크지 않아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다양한 유물들 중 꼭 관람해야 할 것은 바로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기상과학문화를 상징하는 국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세계 최초로 강우량을 쟀던 측우기로, 서양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우리의 자랑스러운 발명품이다. 



국립기상박물관

주소: 서울 종로구 송월길 52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도보 16분



수난의 역사가 깃든
경희궁


경희궁은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 후기 동안 정궁인 창덕궁과 더불어 이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제2의 궁궐이다. 많은 왕이 경희궁에 거처하면서 창덕궁이 지닌 정궁으로서의 기능을 일정 부분 나눠서 수행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숙종은 경희궁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고 이후 영조는 치세의 거의 절반을 경희궁에서 보냈다. 정조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도 이곳, 경희궁이다. 



경희궁은 과거 규모 면에서 상당히 거대했다. 경복궁 크기의 2/3를 넘는 영역이 경희궁에 속했고, 서울 한양도성 서쪽 성벽 일부와 한양 서북부를 대부분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희궁은 한양의 궁궐 중 가장 많이 파괴된 궁궐이기도 하다.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을 위한 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희궁 전각의 거의 90%를 헐었다. 이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렸고 면적도 축소됐다. 남은 전각이 적고 협소한 탓에 조선 5대 궁궐 중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그만큼 가장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궁이기도 하다.
 

경희궁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도보 10분


▶Check Point 1
경희궁공원

경희궁 앞으로 펼쳐진 너른 공원. 평소에는 고요한 정취를 풍기지만, 봄이면 벚꽃을 보러 온 상춘객들로 북적인다. 구석구석에 비석과 역사적 장소들이 숨어 있으니 보물찾기하듯 산책해 보는 것도 좋겠다. 



경희궁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Check Point 2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공원 부지에 있는 역사 전문 시립박물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18만 점 이상의 서울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들러야 할 곳. 



서울역사박물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Check Point 3
88 서울올림픽 의전버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의전용으로 특별 제작됐던 버스다. 국내외 많은 귀빈들이 각 경기장을 순회할 때 이 차량을 사용했다고.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실내외 차량의 형태를 원형 복원한 후 전시 중이다. 



▶Check Point 4
전차 381호

1930년경부터 1968년 11월까지 약 38년간 서울 시내를 운행했던 오래된 전차다. 당시 전차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버스와 자동차 운행에 방해가 되자 일제히 운행을 중단하게 됐다. 전차 381호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2대의 전차 중 하나다.




반탁운동의 중심지
경교장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 중국에서 귀국해 머물렀던 개인 사저이자 그가 피살당했던 장소다. 본래 금광으로 큰돈을 번 친일파 최창학이 지은 개인 주택이었는데,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상하이에서 귀국하자 김구 선생에게 이 건물을 제공했다. 이후 김구 선생은 1945년부터 암살당한 1949년까지 경교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다. 광복 이후 한국은 신탁통치 문제와 정부 수립 문제로 많은 논쟁을 벌일 때였다. 당시 경교장에서는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열렸고,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반탁운동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했다. 



경교장은 3년여의 복원 공사를 거쳐 2013년 일반에 공개됐다. 1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2층에는 김구 선생의 개인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2층 창문에는 암살 당시의 총탄 자국까지 선명히 복원돼 있다. 지하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김구 선생 그리고 경교장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경교장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29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도보 5분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했던 이방인
스코필드 기념관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했던 또 한 명의 이방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영국계 캐나다인인 그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다. 스스로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고 의사와 선교사로 활동했고, 만세운동 현장을 찾아 일제의 비인도적인 한국인 탄압 사실을 파악하고 언론을 통해 그 만행을 알렸던 지식인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독립선언문의 사본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백악관에 보냈고 만세 시위 현장의 사진을 찍어 3·1 운동의 실상을 증거 사진과 함께 해외에 알렸다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3·1운동 초기의 몇 안 되는 귀중한 사진들은 모두 그가 찍은 것이다. 그의 유해는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국립 현충원 독립운동가 묘역에 묻혀 있다.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내에 위치한 스코필드 기념관에서는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스코필드기념관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5-40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도보 6분


▶Check Point
돈의문박물관마을

근현대 서울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역사문화공간. 근현대 건축물,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서울 1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흥미로운 무료 전시들이 상시 열리고 있어 언제 가도 지루할 새가 없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14-3



한글을 향한 무한한 사랑
헐버트 동상(주시경 마당)


호머 헐버트는 헤이그 특사를 지원하고 미국과 교섭해 대한제국을 돕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다. 그가 한국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글이었다. 1886년에 그는 조선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육영공원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으나, 정작 그가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친 건 한글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의 말과 글을 익히면서 한글의 우수함을 발견한 그는 1889년 뉴욕의 신문에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1892년에는 논문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한글의 띄어쓰기 문법을 <독립신문>에 도입한 것도 그였다. 그런 헐버트에게 배재학당에서 언어학을 배운 사람이 한글 학자 주시경이다. 그들은 함께 독립협회에서 발간하는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하며 한글 연구를 이어갔다. 주시경의 이름을 붙인 공원인 주시경 마당에는 헐버트의 부조가 함께 있다. 어지러운 도심 속,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잠깐 땀을 식히기엔 이만한 장소도 없다. 



주시경마당

주소: 서울 종로구 당주동 108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도보 3분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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