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 내리던 치앙마이.
날이 흐리다고 얼굴까지 흐려질 필요는 없다.
비가 오면 낭만이 더 짙어질 치앙마이의 장소들을 모았다.
GLOOMY CHIANG MAI
가랑비에 옷 젖듯
치앙마이의 9월은 우기다. 한 달 평균 23일 비가 온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선 ‘날씨요정’의 정의가 달라진다. 날이 맑고 해가 쨍해야 날씨요정이 아니다. 어둑어둑, 흐릿흐릿. 폭우가 내렸다가 구름이 꼈다가. 지글지글 끓던 태양이 열을 식히고, 쏴아아─ 땅 식는 소리가 들리면, 이 시점부터 여행자는 치앙마이를 본격적으로 좋아할 준비가 된다. 비 맞은 자의 정신 승리가 아니라 진짜다. 빗방울 털어 내고 노점에서 들이키는 카오소이 한 그릇. 쫄딱 젖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세븐일레븐에 들어가 쐬는 얼음장 같은 에어컨 바람. 천둥 치는 바깥 소릴 들으며 시장에서 건망고 더미를 뒤적이는 오후. 쓰나 마나 한 우산을 들고 숙소까지 털레털레 걷는 길. 전부 치앙마이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이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비가 내렸다. 길고 따분한 장마와는 결이 다르다. 속전속결. 내일이 없을 듯 퍼붓다가, 영원한 건 없다는 듯 그친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엔 꼭 맑은 날씨가 곁들여져야 한다는 통념도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고루한 통념 위로 흩뿌려진 양념. 치앙마이의 비는 그런 양념 같다. 어둑한 사원은 신비롭고, 한갓진 거리는 부얘진다. 코끼리는 매끈해지고 시장은 소란해진다. 쏨땀도 괜히 더 새콤해지는 것 같고. 비와 구름과 축축한 공기와 끈적한 살갗. 그 모든 감각을, 몸짓을, 셔터를 눌러 기록했다. 그렇게 떨어지는 빗방울에 낭만을 담았다. 모름지기 치앙마이에선 비를 좀 맞아야 한다. 그래야 이 도시의 글루미한 매력이 가랑비에 옷 젖듯 드러난다. 그런 곳이다.
WAT UMONG
정적이 감도는 사원
왓우몽
세상에는 드물게도 비가 와야 더 감동적인 장소가 있다. 왓우몽이 그렇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차로 20분. 우거진 숲속, 이끼 덮인 바위와 젖은 나무 향 사이로 정적이 감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기도를 올린다. 명상이든 수련이든,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그 속에 왓우몽이 있다.
13세기 란나 왕국의 멩라이(Mangrai)왕에 의해 시내에 건립됐다가, 도시 발전으로 치앙마이가 복잡해지자 훨씬 조용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왓’은 사원, ‘우몽’은 동굴. 풀이하면 동굴 사원이니 당연히 동굴 안을 들어가 봐야겠지만, 사실 숨겨진 촬영 포인트는 따로 있다. 동굴 입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난 작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원의 측면 풍경을 독특하게 담을 수 있다.
왓 우몽(동굴 사원)
135, Suthep,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WAT PHA LAT
나무뿌리와 덩굴로 뒤덮인
왓파랏
치앙마이 여행은 ‘왓’의 연속이다. 우리 말로는 ‘사원’. 도심과 근교에만 300개가 넘는 왓들이 있다. 그런데 모든 왓이 다 같진 않다. 그중 왓파랏은 특히 더 다르다. 보통의 사원은 올드타운 내 평지에 있다. 그런데 왓파랏은 도이 수텝(Doi Suthep) 산중턱, 그것도 정글 한가운데에 있다. 전자는 사원 속에 자연이 있고, 후자는 자연 속에 사원이 있다.
나무뿌리와 덩굴이 사원의 구조물들과 얽혀 하나의 왓파랏을 이룬다. 빗물 젖은 오래된 석조 건물과 계단, 불상들은 신비로움을 넘어 영험하기까지 하다. 전설마저 그렇다. 14세기 중반, 란나 왕국의 쿠에나(Kuena)왕이 수행원들과 도이 수텝 정상까지 향하던 길. 왕이 타고 있던 흰 코끼리가 중간에 멈춰서 쉬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앙마이의 숨겨진 사원’으로 소개됐지만, 솔직히 이젠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유명해져 버린 곳.
Wat Pha Lat
บ้านห้วยผาลาด 101, Sriwichai Alley,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태국
LAMPHUN
10만개의 소원
람푼
치앙마이에서 남쪽으로 26km. 몽족이 7세기에 하리푼차이 제국을 세울 때 조성한 도시, 람푼이 있다. ‘치앙마이보다 더한 시골’이란 이유로 여행객들이 좋아도 하고 지루해도 하는 곳. 그런데 매년 우기가 끝나는 시점인 11월이 되면 잔잔했던 마을이 떠들썩해진다. ‘10만 등불 축제(Hundred Thousand Lantern Festival)’가 열리기 때문.
축제 기간 동안 람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원인 왓프라탓 하리푼차이(Wat Phra That Haripunchai)에 소원을 적은 등불 10만개가 매달린다. 러이 끄라통 못지않게 태국 북부 지역에서 열리는 유명한 축제 중 하나다. 등불은 어두운 날이 끝나고 밝은 날이 시작되는, 우기에서 건기로의 그 찰나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다행히 색색의 등불은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람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Wat Phra That Haripunchai Woramahawihan
주소: 1H2G5+RCR, Thanon Rop Mueang Nai, Nai Mueang, Mueang Lamphun District, Lamphun 51000 Thailand
WAT LOK MOLEE
먹구름 몰려드는 날에는
왓 록 몰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 몰려드는 먹구름에 한낮에도 왓 록 몰리는 한밤중처럼 캄캄하다. 왠지 모르게 인류 최후의 날처럼 디스토피아적인, 영화 같은 분위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이랄까, 과묵한 영혼 같은 것에 포위되는 느낌이기도 하고. 날 궂은 날, 왓 록 몰리를 꼭 가야 할 이유다.
사원이 지어진 시기는 14세기 즈음으로 추정된다. 란나 왕국의 왕족을 위해 지어졌고, 쿠에나왕이 미얀마 승려들을 초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체디(불타의 사리탑)도 꽤 멋지지만, 그보단 코끼리 조각상이 놓인 사원 입구가 소박하니 더 마음을 끈다.
왓 록 몰리
주소: 1298/1 Manee Nopparat Rd, ตำบล ศรีภูมิ อำเภอ เมืองเชียงใหม่ Chiang Mai 50200 Thailand
ELEFIN FARM & CAFE
촉촉한 산속, 매끈한 코끼리
엘리핀 팜
치앙마이 시내에서 40분 정도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 나타나는 엘리핀 팜. 코끼리의 ‘웰빙’에 각별히 신경 쓰며 윤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코끼리 농장 겸 카페다. 여타의 코끼리 체험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코끼리들이 워낙 착하고 순해서 먹이 주기, 사진 촬영 등 전부 가능하다. 가까이 가면 사람에게 포옹이나 키스도 해 준다(냄새는 순하지 않지만).
그런데 이곳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산중턱의 농장 전망이 몽환적으로 변한다. 숨만 쉬어도 폐활량이 늘어날 듯, 들숨 가득 엄청난 양의 피톤치드가 들어온다. ‘코끼리 쿠키’ 한입에 촉촉해진 산속 풍경을 보고 있으니, 글로만 적었던 ‘힐링’이 이런 거구나 싶다. 비에 젖어 매끈매끈해진 코끼리의 등판을 바라보는 일도 상당히 즐겁다.
Elefin Farm & Cafe
주소: 1128/6, Ban Pong, Hang Dong District, Chiang Mai 50230 Thailand
SUNDAY NIGHT MARKET
쇼핑의 늪
선데이 나이트 마켓
반드시 일요일을 껴서 치앙마이를 여행해야 할 이유, 선데이 나이트 마켓 하나로 정리한다. 선데이 나이트 마켓은 타패 게이트(Tha Phae Gate)부터 구시가지 지역의 여러 블록에 걸쳐 뻗어 있는 야시장이다. 기념품, 수공예품, 음식 노점상, 길거리 마사지, 전통 음악…. 동남아시아 어느 야시장에서든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규모다. 노점 수로 보나 관광객 수로 보나 가히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시장인 건 당연하고, 방콕의 짜뚜짝 시장 다음으로 태국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쇼핑의 늪. 뭘 사든 재밌지만 뭘 안 사도 재밌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며 후후 불어 먹었던 소시지 꼬치구이마저, 고통스러울 만큼 맛있었던 기억.
Sunday walking street
주소: Rachadamnoen Rd, Tambon Si Phum,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200 Thailand
WAROROT MARKET
없는 것 빼고 다 있죠
와로롯 시장
유명한 시장엔 딱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첫째, 저렴할 것. 둘째, 종류가 많을 것. 물건이 싸고 다양하면 사람이 붐비는 게 시장의 이치다. 와로롯 시장은 두 조건을 훌륭히 갖췄다. 일단 싸다. 치앙마이 시내의 웬만한 가게에선 볼 수 없는 가격표가 와로롯엔 붙어 있다. ‘와로롯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치앙마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판매 물품도 다양하다.
총 3층짜리 옛날식 쇼핑몰 건물로 되어 있는데, 일단 들어섰다 하면 빈손으로 나서기 어려워진다. 특히 1층에는 건조식품 라인업이 어마어마하다. 망고, 무화과, 딸기, 두리안 등 각종 말린 과일들은 여기 다 있다. 비 피하러 들어왔다 먹거리 기념품에 여비를 탕진하게 된 당신, 지극히 정상. 태국 북부식 소시지인 싸이 우아(Sai ua)를 요리하고 있는 가판대도 널렸다. 하여튼 가방과 위장과 뒷일정은 비워 둔 채로 가는 게 현명하다.
와로롯 시장(깟 루앙)
주소: Wichayanon Rd, Tambon Chang Moi,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300 Thailand
JAO PING RIVER CRUISE
리버 위 레스토랑
핑강 크루즈
치앙마이 구석구석을 관통하며 흐르는 핑강(Ping River). 올해 1월, 아난타라 치앙마이 리조트가 크루즈 위에서 파인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핑강 크루즈를 선보였다. 리버 ‘뷰’ 레스토랑 말고, 리버 ‘위’ 레스토랑이다.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크루즈는 핑강을 가로지른다.
강물은 걸쭉하게 녹인 캐러멜 같은 묘한 색감이다. 홍수 난 뒤 불어난 한강 물 같기도 하고. 카누 타는 승려, 낚시하는 아저씨(대체 무슨 물고기가 잡힐까)만이 말없이 크루즈를 흘끔거린다. 아난타라 크루즈는 소규모로 예약을 받고 서비스도 그에 맞게 친밀하다. 치앙마이에서 프라이빗 크루즈를 가진 5성급 호텔은 아난타라가 유일하다고. 식기 위에는 메뉴와 함께 사진 포인트가 적힌 지도가 놓여 있다. 크루즈가 예쁜 다리 밑을 지나가면 포크를 내려놓고 냅다 인증숏부터 찍고 볼 일인데…. 도저히 포크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음식 맛이 훌륭하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다.
JAO Ping River Cruise
주소: 123, 1 Charoen Prathet Rd, Tambon Chang Khlan, เชียงใหม่ Chiang Mai 50100 Thailand
ALEENTA RETREAT CHIANG MAI
초점은 웰니스에
알린타 리트리트 치앙마이
야금야금 어느새 알 만한 여행객은 다 안다는 신상 호텔. 방향성이 확실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은 ‘웰니스’에 맞췄다. 시내에서 떨어져 산기슭에 자리 잡은 호텔답게 목가적인 분위기가 짙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탈출한 기분. 모든 투숙객에겐 모닝 요가, 사운드 테라피, 셀프 마사지, 명상 등 웰니스 수업이 무료로 제공된다. 사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사운드 테라피’가 되는 호텔이긴 하지만. 객실 타입은 총 3가지. 대부분의 여행객은 딜럭스와 풀 레지던스에 머문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4 베드룸 골든 티크 빌라’다. 호텔 방이라기보단 하나의 집에 가깝다. 거실, 주방, 다락방, 4개의 침실과 개인 수영장까지 갖춘 300m2 규모의 빌라로, 100년 된 티크나무를 재활용해 세워졌다. 3대 대가족 여행을 위한 별장 같은 객실. 전 객실에 요가 가방과 새하얀 요가복이 정갈히 준비돼 있는 것 역시 알린타답다.
Aleenta Retreat Chiang Mai
주소: 189 Suthep Alley, Tambon Su Thep, Muang, Chiang Mai 50200 Thailand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태국정부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