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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치는 제품에 앞서지 않는다

'배드파머스'에서 배우는 브랜딩의 필요충분조건

가로수길에는 ‘배드 파머스’라는 샐러드 맛집이 있다. 지금은 잠시 문을 닫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때 가로수길을 대표하던 이 핫한 가게를 굳이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붉은 색과 녹색의 강렬한 조화가 샐러드의 컬러와 매칭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브랜드였다. 로고 속 화난 아저씨는 오히려 찾는 이들에게 이상한 믿음?을 주었다. 자신의 농작물을 고집스럽게 키웠을 것 같은 나쁜 농부의 고집, 컨셉마저 선명한 이곳의 창업자 중 한 분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람 바이러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자신이 좋은 가치를 가졌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먼저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브랜딩입니다. 완성도가 높고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라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속도로 대중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멋져서' 다가와 경험하게 되면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어지고, 브랜드가 이야기하는 가치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제3세계의 아이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들을 돕는 핸드폰 케이스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가치’가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라도 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진 제품과 서비스라 해도 사람들이 매력적인 첫 인상을 주지 못하면 어려운 거로구나. 그런 깨달음이 ‘배드 파머스’ 탄생에 일조했다. 외국과 달리 아직 우리는 샐러드를 사이드 메뉴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샐러드 전문점을 그들은 실행에 옮겼다. 샐러드 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토록 가벼운 하루, 아주 보통의 하루


그러나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매장의 입구에 배드 파머스와 로고와 함께 녹색과 붉은 색의 포토존을 만들었다. SNS에 익숙한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실제로도 배드파머스를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색색의 컬러감을 중시한 메뉴들을 접하고 나면 샐러들을 대하는 그들의 유쾌한 자세를 재미있는 카피에서 만날 수 있다. ‘이토록 가벼운 하루’는 비트와 당근, 사과와 레몬이 들어간 주스 이름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는 당근과 사과, 오렌지와 자몽 그리고 파인애플이 들어갔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배드 파머스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단순히 예쁜 먹거리가 아니구나. 우리들의 몸까지 생각한 건강한 브랜드구나. 배드 파머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후 오픈된 ‘아우어’ 브랜드를 통해 날개를 달았다. 맛있는 빵과 보기에도 좋은 마실거리로 유명한 이 집에도 포토존이 있다. 외국인 전문 셰프의 솜씨는 조금 뒤로 숨겨 놓았다. 녹차와 커피, 우유를 층층이 쌓은 ‘그린 티 더블’은 누구라도 한 번쯤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고 싶어지게끔 만든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는, 이 시대의 트렌드에 완벽히 부합한 브랜드다. 사진을 찍고 나서야 그들은 빵맛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이 페이스북 글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바른 가치와 굳건한 철학의 선행이 좋은 브랜드를 완성한다 믿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그 '가치'라는 것이 실은 만드는 제품의 가장 본질적인 완성도를 향한 끝없는 고민과 고집, 세상의 반대와 비난, 실패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인내와 끈기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킬 수 없는 가치와 철학을 '말'로 포장한채 나아가면 결국 자신이 내세운 그 가치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때의 가치는 참된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자 오만으로 남기 쉽다. 쿨하고 멋진 제품, 세심한 배려와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준다. 그때 내가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그 가치를 전하면 된다.


진정한 브랜드 뒤에 숨어 있는 한 가지


많은 기업과 브랜드가 ‘가치와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다. 통닭 한 마리를 튀기면서도 마치 철학책을 읽는 듯한 고집스러움으로 ‘포장’한 브랜드를 TV 광고에서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정작 뉴스를 통해 드러난 민낯은 자신의 직원들에게 갑질과 폭력을 일삼는 부도덕한 기업이었다. 그래서 브랜드가 ‘포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하지만 그건 가짜다. 진짜들은 가치와 제품, 서비스가 따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제대로 만든 제품이 먼저다. 가치와 철학은 그 다음이다. 혹 시간은 조금 걸릴지언정 진짜는 결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감탄한다. 이토록 좋은 제품, 이토록 섬세한 서비스의 뒤에는 그들의 ‘가치’가 숨어있었던 것이구나 하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무런 철학 없이 그저 ‘사진 찍기 좋은’, ‘예쁘기만한 카페’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증샷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 예쁨을 이어갈 메시지나 철학, 제품의 매력이 없다면 한 때의 핫한 브랜드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된 가치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제품과 서비스 깊숙이 숨어 있어야 한다. 그 둘의 조화가 결국은 제대로 된 하나의 브랜드를 가늠할 수 있는 진정한 잣대가 된다.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 브랜드 스토리텔링 문의

작지만 강한 브랜드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그런 브랜드를 알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 E-mail:  hiclean@gmail.com

> Mobile: 010-2252-9506

> Site : www.beaver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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