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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어려운 몇 가지 이유

회사에 우열반이 있었다면, 분명 나는 열반이었을 것이다. 서른 중반,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것부터가 위험한 선택이었다. 더 늦기 전에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어 브랜드 전문지에 입사했다. 혹독한 현실이 뒤를 따랐다. 주말 없이 일했다. 밤낮 없이 글을 썼다. 하지만 이십 대의 젊은 감각을 따라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글을 쓰는 것은 조금 경험이 있었다. 잘 쓴다는 얘기도 곧잘 들었다. 하지만 '브랜드'는 내게 전혀 생소한 분야였다. '캔버스' 신발을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편집장이 혀를 차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그렇게 꾸역꾸역 10여 년간 브랜드에 관한 글을 썼다. 크고 작은 다양한 회사를 인터뷰했다. 그 결과 한 가지 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브랜드'란 어려운 주제를 조금은 '쉽게'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종종 병원에 가면 이런 의문을 가지곤 한다. 왜 의사들은 일반인이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얘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처방전에 감기, 몸살이라고 쓰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왜 생경하기 짝이 없는 '라틴어'로 병명과 증상을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남과 '구별'짓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의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전문용어'로 일반인과 스스로를 구분 짓는다. 일종의 '차별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차별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사람들은 이렇게 '구별되어진' 전문가를 통해 위안과 신뢰를 얻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의사를 만나는 순간 '플라시보' 효과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의사들이 스스로를 '구분짓는' 것이 꼭 나쁘다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의 의사들이 라틴어를 쓰는 이유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많은 브랜드 컨설턴트들이 어려운 용어를 즐겨 쓴다. 의사가 쓰는 '라틴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4P, 유도 전략, 브랜드 에쿼티(equity)... 수많은 브랜드와 마케팅 관련 용어들이 숨쉬는 것처럼 쉽게 쓰인다. 하지만 그러한 용어를 10년 넘게 들어온 나로써는 이런 의문이 들곤 한 것도 사실이다. 꼭 그렇게 어려운 말을 써야만 문제를 해결하고 컨설팅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쉽게 얘기하면 클라이언트들이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글을 쓰고 때로는 컨설팅을 했다. 답답한 건 둘째 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쉽게' 말하고 싶었다. '브랜드'와 '브랜딩'이 가진 단어의 참 뜻을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


브랜딩은 한 마디로 자신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가 가진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그 '가치'는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는 과정을 통해 전달된다.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이렇게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을 해소해주는 문제해결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봐도 여전히 모호하다. 대체 '가치'란 무엇인가? 필요와 욕망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질문, 그것이 매달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작은 기업들에게 왜 그토록 필요하단 말인가? 이런 질문에 한 번쯤은 쉽게 답하고 싶었다. 그것이 여타의 뛰어난 브랜드 전문가들과 나를 '구분짓는' 차별화 요소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타다’는 사람들의 어떤 필요와 욕망을 채워주는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필요는 택시를 잡기 힘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 '운송'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일반 택시나 다른 대중교통 수단과 차별화하기 힘들 것이다. 굳이 타다가 택시 서비스를 새로이 만들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어느 회사의 여직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의 번호판을 동료가 대신 확인하는 수고를 매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토록 험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아무 택시나 타는 일은 언제나 마음 불편한 일일 것이다. 타다는 바로 그런 불특정 소수를 위해 '안심'이라는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함으로 차별화될 수 있었다. 기사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가는 경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서비스의 질을 평가까지 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다.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의 이동은 물론 기사가 틀어놓은 시끄러운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지 않아도 된다. 불쾌하게 만드는 기사의 질문도 없다. 이것은 기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을 평가해 원치 않는 소비자들을 가리고 배제할 수도 있다. 타다는 단순한 '운송'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심'이라는 숨은 욕망을 채워주는 서비스인 것이다.


젊은 여성들은 왜 타다를 탈까? 


티파니의 가치를 '은'의 가치로만 따지면 그 가격을 이해할 수 없다. 롤렉스 시계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만 사는 사람은 없다. 티파니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고백'이라는 가치를 담아 수십 만원의 가격에 지금도 거래되고 있다. 남자에게 롤렉스란 '성공'의 상징이다. 이 상징 때문에 그것이 가진 원래의 필요를 넘어서는 '가치'를 담아 수백 만원의 가격을 받고 팔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꼭 고가의 제품과 서비스에만 이러한 '가치'가 담기란 법은 없다. 동네 빵집도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던져야 한다.


"우리 빵집은 단순히 '빵'이 아닌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그 빵집을 특별하게 만든다. 차별화한다. 이것을 조금 유식한 말로 '업의 본질'이라고 표현한다. 진정한 차별화는 How나 What의 영역이 아닌 'Why'의 영역에서 시작된다. 빵을 만드는 기술(How)이나 빵의 종류(What)만으로 남달라지기엔 제빵의 수준이 너무 상향 평준화되었다. 동네 빵집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재료나 뒤떨어진 기계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가게일수록 적은 종류의 빵을 더욱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크고 작은 빵집 중에서 독특해지는 것이다. 그 유니크(unique)함은 곧 생존과 직결되기에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진정한 차별화는 결국 그 빵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통해 가장 남달라진다. 빵을 만드는 이유, 제빵을 대하는 자세, 그 일을 시작한 이유가 그 빵집을 가장 남다르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브랜드가 좀 더 쉬운 말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브랜딩이 쉬워질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일부 대기업의 호사스런 포장처럼 읽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동네에 개성 넘치는 작은 가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남이 하는 치킨집을 너도나도 같이 해서, 결국엔 함께 망하는 시장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작지만 강한 브랜드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 브랜드 스토리텔링 문의

작지만 강한 브랜드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그런 브랜드를 알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 E-mail:  hiclean@gmail.com

> Mobile: 010-2252-9506

> Site : www.beaver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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