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과일 가게의 해답을 동네 카페에서 찾았다

1.


동전은 반드시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마케팅의, 브랜딩의, 경영의 답은 그렇지 않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기도 한다. 며칠 전 있었던 '스브연 핫 브랜드 투어'가 그랬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단골 카페로 7명의 스몰 브랜더들이 모였다. 멤버 중엔 치과 원장님도, 제품 소싱 전문가도, 유머 코치도, MD 출신 예비 창업가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1년 간 스브연을 함께 해온 과일 가게 대표님도 계셨다.


2.


이름도 연배도 비슷한 이 대표님을 좋아한다. 작년부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힘들어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 모임에서 이 대표님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어떤 때보다 말을 많이 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업종은 전혀 다르지만 아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카페 주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굳이 두 대표님을 비교하자면 나이와 외모 업종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도 많았다.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 일하는데 능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기 고집'이 있다.


3.


컨설팅을 하다 보면 평소의 나보다 좀 더 단정적으로 세게 말할 때가 있다. 나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대표님들이 생각보다 잘 안변하기 때문이다. 면전에선 이해한 듯 하고 고개도 끄덕이지만 막상 돌아서면 도루묵일 때가 많다. 과일 가게 대표님도 그랬다. 여러가지 조언을 드렸으나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 날 모임에서 그 이유를 알았다. 그건 바로 그런 변화가 '자기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계셨다. 뜻밖의 장소에서 '아군'을 만났기 때문이다.


4.


'앱스트랙'은 동네 카페다. 간판도 없고 입지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코로나를 포함한 지난 6년을 견딘 힘은 '자기 색깔'이다. 이 대표님은 음악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앨범과 CD, 포스터로 카페를 채우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기 위한 스피커만 해도 여러 대다. 그 뿐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향수, 신발, 옷 등이 곳곳에 진열돼 있다. 컨셉을 고민하고 브랜딩을 잘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카페를 채웠을 뿐이다. 그런데 카페 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뚜렷하니 카페도 그렇게 됐다. 그 뿐이다.


5.


앞서 말한 과일 가게의 이름은 '스위트리'다. 송파의 어느 동네 골목에 위치해 있다. 이 가게의 대표님도 음악을 좋아한다. 그림과 책도 좋아한다. 시도 좋아해서 날마다 가게 앞에 좋아하는 싯구를 적어두신다. 그대신 이 가게는 활기가 부족하다. 총각네 야채가게 같은 생동감이 없다. 나는 그것이 이 가게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스위트리는 총각네 야채가게처럼 될 수 없다. 대표님이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앱스트랙' 카페도 동네 카페의 해답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답들 중 하나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작은 브랜드일 수록 주인장의 취향과 개성이 컬러가 분명할 수록 유리하다는 점이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은 그것으로 가게와 식당의 컨셉을 잡으면 된다. 나라면 온 카페를 하루키의 책으로 채울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음반과 술과 작가들로 채울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하루+key)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다. 만일 상표 등록이 안되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부를 것이다. 하루키가 처음으로 쓴 소설의 제목이니까.


7.


경기는 앞으로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작은 브랜드들에겐 더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스몰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슷한 처지의 비슷한 철학을 가진 동료와 동지,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 사람이 버티고 있다면 나도 가능하다는 용기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앱스트랙'이 자기 색깔로 6년을 버텨냈듯이 '스위트리'도 자기답게 지난 6년을 꿋꿋이 버티어 왔다. 그건 좀 더 깊숙한 골목으로 옮겨가는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응원이 아닐지.


8.


작은 브랜드들에게 현란한 마케팅 지식과 어마어마한 브랜딩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연대'의 힘일지 모른다. 나만 홀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것, 아니 때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 그런 끈끈한 협업의 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앱스트랙과 스위트리의 대표가 서로 만나 나름의 용기와 확신을 얻었던 것 처럼 말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스몰 브랜드 연대'라는 모임을 이어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저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니타스브랜드'라는 매거진을 혹시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