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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브랜딩한다는 것은, 내인생치과 이야기

1.


나는 막내 삼촌을 좋아했다. 뭐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조카들을 이뻐했고 선물도 듬뿍 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막내 삼촌이 암에 걸려 얼마 남지 않은 투병 생활을 이어갈 때였다. 작은 어머니의 소개로 교회 목사가 병 문안을 왔다. 여러 명의 권사님들을 이끌로 보무도 당당하게 병실에 들어선 그 목사는 다짜고짜 막내 삼촌을 꾸짖기 시작했다. 예수 안 믿어서 이 상황이 되었다는 협박 비슷한 설교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분노와 함께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목사는 과연 병 든 예수님의 말씀을 단 한 번이라도 곱씹어 읽은 적이 있었을까?


2.


어느 병원 실장님을 인터뷰했다. 원래 전업 주부였던 그녀는 지금의 병원에서 일하는데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두 분 원장님이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환자를 대하는 3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따. 그것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겁주지 않는다 그리고 비난하지 않는다, 였다. 나는 그 중에서도 마지막 원칙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실장님은 그 어떤 환자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대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실패로, 어떤 사람은 우울증으로, 어떤 사람은 치과 공포증으로 병원을 어렵게 찾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비난하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앞서 소개한 목사보다도 십만 배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3.


치과는 치아만 잘 치료하면 된다고 믿는 병원이나 원장, 실장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하수다. 전문가일지는 모르나 좋은 치과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사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치아가 망가져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정과 이유와 사연이 있다. 그들이라고 해서 치아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사업에 실패하고 당뇨와 흡연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치아가 우선 순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치과가 두려운 어떤 환자는 치약을 물에 타서 머금는 것으로 통증을 참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을 고압적인 자세로 꾸짖는 의사들이 있다. 심지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서 왔냐고 인턴들이 줄지어 선 병원에서 실제로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 환자는 그 상황이 모멸스러워 병원 화장실에서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과연 그 의사에겐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4.


병원 브랜딩을 다시 생각해 본다. 병원 브랜딩의 기본은 환자와 원장, 직원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치료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2인3각 경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사람이 바로 병원의 실장이다. 단순히 환자를 유치하고 설득하는 존재로만 생각하면 절대 이런 생각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좋은 병원은 이런 실장을, 직원을 뽑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훌륭한 실장은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 어울리는 직원들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앞서 소개한 치과의 경우는 치료 이상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병원이다. 이런 병원은 구성원 모두가 소위 '심리적 안정감'을 공유하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실장이, 직원의 마음이 행복한데 환자들을 겁 줄리 없다. 나는 이것이 병원이 지향해야 할 진짜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5.


결과적으로 이 치과는 환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수많은 환자들이 이곳에 와서 '정착'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80세의 환자는 버스와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고 이 병원을 찾는다. 다래끼 수술을 하면서도 전신마취를 해야 했던 공포증 환자가 태연하게 병원을 찾아 임플란트 시술을 한다. 그러니 병원 브랜딩을 블로그 마케팅이나 고객 DB 확보 같은 기술적인 면으로만 바라보지 말자. 어쩌면 병원에 가장 필요한 브랜딩은 내부 브랜딩, 즉 원장과 직원이 공유할 수 있는 나름이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놀라운 것은 이런 철학이 병원 내에 문화로 자리잡으면 그에 어울리는 환자와 직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교대역 근처에 있는 이 병원 '내인생치과'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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