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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동네 식당이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 법

1.


천안에 있는 '육화미'는 삼성 출신의 부부가 만든 고깃집 브랜드이다. 벌써 7년차를 맞은 이 브랜드는 코로나라는 혹독한 위기를 견디고 살아남아 직영점만 4개, 연 매출 80억을 올리는 탄탄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정직원만 40명, 파트 타임도 40명이나 되는 결코 작지 않은 조직이다. 사원에서 주임, 프로를 거쳐 점장이 되는 데만 10여 개의 직급을 거쳐야 한다. 직급별로 해야 할 일과 목표도 분명해서 마치 대기업처럼 촘촘한 월급 테이블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식당 브랜드의 시스템과 마케팅을 꼼꼼히 살피는 글을 쓰는 중이다.


2.


그러니까 어제, 나는 이 식당 대표가 진행하는 교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일단 그 내용의 디테일에 깜짝 놀랐다. 오전 오후 6시간에 걸쳐 진행된 교육은 대부분 '매뉴얼'에 관한 것이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오픈, 미들, 마감 세 타임으로 나눠진 타임 테이블은 A4 용지에 두 장의 체크리스트를 만들만큼 꼼꼼했다. 명찰의 위치부터 샐러바의 음식 교체 시기까지 놀랍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샐러드바의 그릇이 놓인 곳엔 손님이 잘 볼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어서 그에 맞게 그릇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3.


나는 이 교육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질문 내용이었다. 의정부에서 칼국수 가게를 하는 부부가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들이 궁금해하는건 대단한 마케팅 전략이나 이론적인 브랜드 지식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식당 사모님은 브레이크 타임에 찾아오는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지, 두 명이 찾아와서 네 명의 테이블을 차지하는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지를 물었다. 언뜻 보면 간단한 문제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팡이를 짚고 한 번만 해달라는 어르신을 매몰차게 물리칠 주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이 날의 '매뉴얼' 수업이 더 피부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4.


나는 항상 브랜딩의 쓸모에 대해 고민해왔었다. 더 정확히는 이론적인 브랜드 지식이 동네 식당에서 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오랫동안 던져왔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식당들에 필요한 마케팅 지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컨셉 보다는 당장의 진상 손님, 책임감 없는 직원을 다루는 기술이 아닐까. 특히 식당없은 경험하면 할수록 '교육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외식업 종사자들은 특히 다루기 어렵다.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앞치마를 풀고 식당을 나가 버린다. 점장 같은 책임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매뉴얼이다. 매뉴얼을 따르면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나는 이들이 대기업 출신이기에 그 시스템을 식당에 적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큰 회사를 나와 치킨집을 하는 사장님들이 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수업을 들은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히는 데만 4년이 걸렸다고 했다.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서 소속감 없는 직원들이 충실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년에 걸친 치열한 밀고 당김의 결과다. 가랑비에 옷 젓듯이, 이런 변화가 자신들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직원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걸 브랜드 용어로 기업 문화, 내부 브랜딩, 심지어 '브랜드십'으로 부르기도 한다.


6.


예를 들어 '브랜드십'이라는 말은 무척 멋있다. 브랜드 전문지에서 두어 번에 걸쳐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매력있는 주제다. 그런데 이때 등장하는 브랜드은 모두 글로벌 기업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시스템을 직원에게 요구할 충분한 명분과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100년 넘은 해외 기업이 지독할 정도로 디테일한 매뉴얼을 요구한다고 해서 저항할 신입 사원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교육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동네 식당은 출근 시간 하나를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가서 일할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7.


그럼에도 나는 동네 식당에도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성공하는, 그것도 오래 가는 식당에는 항상 개인을 넘어선 그 가게의 시스템이 있었다. 우리나라 외식업의 음식은 이미 정점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주면 웬만한 음식의 레시피는 쉽게 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음식의 콸러티와 서비스의 수준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 특별한 맛이 아님에도 오래 사랑받는, 이를테면 '고기리 막국수' 같은 식당의 이면을 살펴 보라. 거의 모든 것이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네 식당에 있어 내부 브랜딩은 필수적이다.


8.


만일 내 동생이 은행을 나와 식당을 한다면 탄탄한 프랜차이즈를 추천하겠다. 베스킨라빈스나 맥도날드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동네 식당은 그 모든 걸 백지에서부터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는 식당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천안의 '육화미'는 그 운영 매뉴얼을 너무도 세세하게 전수하고 있었다. 그러니 식당을 시작한다면 입지와 메뉴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런 시스템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매일 지각하는 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도 정시 출근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배운 '내부 브랜딩'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 내용을 여러 번의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게 바로 동네 식당, 가게, 학원, 병원의 진짜 브랜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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