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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나 한 번 해볼까, 하는 당신에게

1.


흑석역 3번 출구를 따라 걸어가다보면 제법 가파른 계단 하나가 보인다. 그 계단은 고즈넉하고 오래된 시장 입구로 이어진다. 바로 그 계단 끝에 있는 카페가 하나 있다. 하지만 이곳은 평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 2층에 있는데다 여느 카페와 같은 커다란 간판도 없다. 주소를 알려주어도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이 태반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뚫고 계단을 올라서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 중 하나가 나를 반긴다. 카페 이름은 '리앤홍'이다.


2.


'스몰 브랜드 연대'가 인연이 되어 알게 된 이 카페를 주말에 시간이 되어 찾았다. 카페 주인은 내게 파나마산 게이샤 커피를 권해 주었다. 농장 이름도 알려주었는데 잊어버렸다. 캐나다 사람이 이주해 만든 이 농장에서 어느 날 풍미가 특별한 커피 나무를 발견해 옮겨 심은 커피라고 한다. 원두 가격만 무려 15만원, 요즘 유행하는 저가형 커피가 키로그램당 몇 천원 단위라고 하니 그 가격에서서부터 특별함이 느껴진다.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의 맛은 내 기호와 상관없이 확실히 달랐다. 여러가지 미묘하고 복잡한 허브향이 혀 끝에 남았다.


3.


카페 주인은 공기업의 직장인이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카페를 운영한지 벌써 8년 째를 맞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운영하는 카페이니 수익은 커녕 큰 손해만 보지 않아도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카페 주인은 커피와 와인과 공간을 사랑한다. 이 카페에선 평일에도 종종 커피와 와인 모임이 열린다. 음식 솜씨가 특출한 장모님이 준비하는 이른바 장모카세도 종종 열린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매일 올리는 밥상은 사위를 향한 장모님의 정성과 사랑을 보여준다. 일찌감치 부모님을 여읜 그에게 그 마음이 남다르게 다가오리란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


하지만 그는 아직 직장을 붙잡고 있다. 언젠가는 평일에도 카페를 열고 싶어하지만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8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준비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일이다. 그는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커피를 파는 일은 오히려 쉽다. 정성스럽게 고른 스페셜티 커피를 주문하고 10년 넘게 익힌 커피 내리는 솜씨를 발휘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카페가 어디 그렇게 만만한 곳인가. 우리나라에만 10만 여개의 카페가 있다. 8년을 준비하고도 선뜻 완전한 오픈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


나는 어떤 카페를 열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시간'을 파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한 커피 한 잔, 맛있는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팔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커피 클래스와 와인 모임을 연다. 그러나 아무나 초대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검증된 손님들만 받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6.


그렇다면 이 카페가 평일에도 문을 열기 위해 해야 하는 준비는 무엇일까. 그것도 눈에 띄지 않는 2층 카페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자신이 '매력있는' 사람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가 카페를 오픈한 이유, 커피와 와인을 사랑하는 이유, 때로는 장모님의 밥상을 대접하고 싶은 이유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유' 선명하면 산꼭대기에 있는, 멀리 바닷가에 있는 카페도 찾아간다. 단순한 커피가 아닌 그 공간과 시간과 이야기를 소비하기 위해서다.


7.


리앤홍 카페는 거대한 커피 머신으로 가로막힌 여느 카페와 달리 오픈형 바와 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멋드러진 수염으로 기억되는 카페 주인장 뒤에는 전 세계의 원두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머신이 아닌 핸드 드립으로 추출하는 커피는 정확한 무게를 측정하기 위한 저울 위에서 만들어진다. 마치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린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카페 주인장은 커피 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8년 간 카페 오픈을 준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8.


그와 나는 오랫동안 커피를 이야기하고, 브랜드를 이야기하고, 또 구본형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게 카페를 오픈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커피와 와인과 향수와 또한 카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한 분야의 깊은 지식보다는 넓고 얕은 제너럴리스트로 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것들의 목록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문득 이런 과정이 꼭 그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9.


나는 문득 20년 넘게 은행을 다니고 있는 동생을 떠올렸다. 그도 언젠가는 직장을 나와 카페든 식당이든 가게든 무언가를 오픈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동생에게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물론 업종을 고르고, 프랜차이즈를 알아보고, 어쩌면 메뉴와 상권을 분석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하나 동생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그 가게의 '매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힘든 창업과 지난한 운영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리앤홍 카페는 약 2년 정도의 준비를 더한 후에 완전한 오픈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 2년의 시간을 쪼개어 창업의 로드맵을 만들어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무려 13년의 시간을 준비해 이제 막 오픈한 어느 식당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걔중에는 목 디스크에 걸린 어느 주부가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안기 위해 만든 '코니 아기띠'라는 브랜드도 있다. 이 브랜드의 사이트에 가보면 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거친 지난한 시간의 기록들이 '제작노트'라는 이름으로 올려져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만의 매력을 스토리로 만들어 생존과 성장에 성공한 많은 브랜드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1.


카페 하나 열면서 무슨 그런 준비가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혹 있을 것이다. 저가형 커피 매장 하나 열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왜 나쁘겠는가. 어차피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들 아닌가. 하지만 걔중에는 리앤홍 카페 사장님처럼 제품이 아닌 경험과 지식, 스토리를 팔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손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가치를 커피란 이름으로 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작은 브랜드가 살아남는 '차별화'의 방법임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파하는 일이 보람되고 즐겁다. 주말의 황금 시간을 내어 리앤홍을 찾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코니 아기띠 탄생 스토리

https://konny.co.kr/board/story/read.html?no=190857&board_no=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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