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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컨버스(Con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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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스 몇 켤레 있어요?"


이전 회사의 대표는 막 입사한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는 먼저 컨버스를 아느냐고 내게 묻지 않았다.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몇 켤레나 있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그 질문에는 소위 브랜드 전문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컨버스도 모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책망, 당신이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 브랜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 여부를 판단하는 평가의 뜻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내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모멸감으로 다가왔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후로도 수 년간 브랜드 전문지에 내 글을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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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려 1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컨버스와 같은 스니커즈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딸과 함께 '반스' 매장을 찾아 좋아하는 모델을 골라준 적은 있었다. 그대신 나는 나이키, 아디다스 그리고 호카를 신는다. 호카(HOKA)는 프랑스에서 설립된 신발 브랜이다. 특히 런닝과 트레일 러닝용 신발로 유명하다. 2009년 프랑스에서 탄생한 이 브랜드는 2013년에 미국 회사에 인수된 이후 트레일 러닝, 하이킹, 로드 러닝, 일상용 신발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출시하며 브랜드를 확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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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클라이언트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신발은 두꺼운 중창을 통한 뛰어난 쿠셔닝이 유명하다. 이는 장거리 러닝이나 트레일 러닝 시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여 발과 다리의 피로를 줄여준다. 나중에서야 우리나라에서 달리기 좀 한다는 사람들이 죄다 신는 신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신발을 신고 2,3일에 한 번씩은 집 근처 공원을 달린다. 채 5분을 달리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이 신발을 신고 5km 정도는 쉽게 달린다. 호카 신발은 넓은 밑창과 구조적인 디자인을 통해 뛰어난 안정성을 제공한다. 이 신발을 신고 달리다 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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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란 무엇일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어디 가서 아는체 하기 딱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요즘 이 브랜드가 핫하던데요' 라고 말하면 십중 팔구 눈을 빛내며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흔히 아는 브랜드의 역사를 마치 천기누설하듯이 이야기하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사람들은 '하겐다즈'가 미국 브랜드라고 하면 하나 같이 놀란다. 발음 때문에라도 유럽 브랜드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발뮤다'란 브랜드가 알고 보면 아무런 의미없는, 그저 발음이 멋있어서 만들어진 네이밍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아일랜드의 자랑, 흑맥주의 살아있는 역사인 '기네스'가 사실 철천지 원수인 잉글랜드 출신의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무시당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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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브랜드가 '허세'의 상징이 아닌 '실용'의 상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판교에 있는 식당에서 홀 매니저로 일하는 와이프와도 요즘 부쩍 브랜드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마케팅은 쉽게 말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 촉진을 위한 일련의 모든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브랜딩은 그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를 좋아하거나, 심지어 추앙하고 숭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마케팅과 구별된다. 그런 점에서 브랜딩은 마케팅보다 그 범위가 훨씬 넓다. 이전 회사의 대표는 컨버스를 좋아할 뿐 아니라 흠모하고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컨버스의 국내 마케팅을 담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컨버스란 브랜드 자체를 모르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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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랜드가 누군가의 지식과 부와 상식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서의 역할은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장의 욕망을 먼저 읽어내고 효과적인 마케팅을 수행하기 위한 아주 실용적인 지식이자 지혜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화되었다. 커피 하나만 해도 스타벅스 같은 전국민의 브랜드보다는 블루보틀과 프릳츠, 컴포즈와 메가 커피 등으로 그 취향과 효용의 층위가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그 사람이 어떤 커피를 선호하느냐로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 철학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여기에 엄청나게 대단한 이유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살만해졌기 때문이고, 커피 한 잔을 소비하면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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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브랜드가 너무 어렵게도, 또한 너무 쉽고 가볍게 다뤄지는 것도 불편한 사람이다. 브랜딩이 마치 쓰러져가는 한 회사를 살리기 위한 놀라운 포장술처럼 여겨지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조금 유명해졌다고 해서 스스로를 '브랜드가 되었다'고 말하는 일부 인플루언서의 주장이 선뜻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누구나 브랜드를 알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에는 대충 맛을 낼 줄 알고 종업원만 잘 부려도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는 것이 식당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소문이 나면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에 있는 식당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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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차를 몰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유튜브를 본다. 전국 어디에 있어도 못 찾아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식당 주인들 역시 너도 나도 브랜딩을 입에 올린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차별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있어뵈는 지식이나 과시로서의 브랜딩이 아닌 생존의 이유 때문에 브랜드를 고민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매우 반갑다. 내 밥벌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강원도 원주의 어느 피아노 학원 원장, 경기도 시흥에 있는 고로케 가게 대표의 의뢰를 받고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이미 우리의 삶, 시장, 세상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브랜드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9.


불과 15년 전만 해도 브랜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새롭고 흥미롭고 놀라운 지식이었다. 그때 우리는 티파니와 에르메스와 볼보와 에비앙을 가지고 브랜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걔중에는 컨버스와 같은 스니커즈 브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로봇이 붕어빵을 만드는 '현대 붕어빵', 천연 재료로만 만들었다는 '사과 떡볶이', 강원도 춘천의 '감자빵', 제주도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무' 같은 아주 작은, 동네와 로컬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들이 각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듯 브랜드는 이제 대중의 것이 되었고 과시나 허세가 아닌 실용적인 지식으로 요구받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배운 브랜드 지식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써보기로 했다.


10.


15년 전의 나는 '컨버스'의 컨 자도 모르는 브랜드 문맹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브랜드를 매개로 밥벌이를 하는 살아있는 생계형 브랜드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절실하게 이 브랜드를 쉽고 친절하게, 그러나 쓸모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전파할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일환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매개로 한 글을 연재해보기로 한 것이다. 마치 페이스북 친구인 편성준 작가가 '읽는 기쁨'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서재의 책들을 소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이제 컨버스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이 세계의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소비하게 되었는지를 적어볼 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아주 소소한 기쁨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연재글이 브랜드의 효용성과 지식에 목마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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