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얼마 전까지 아이폰의 최신 모델인 15 프로를 잘 쓰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스피커에 불만인, 실용음악과 지망생인 아들에게 선물 주듯 14 프로를 내준 나는 그 날이 가기 전에 15 프로를 샀었다.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반이라면 새 모델에 대한 호기심이 그 절반 이상은 되었을 것이지만, 문제는 그 심정이 반 년을 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중국계 영국인이 만든 낫싱폰에 빠져 폰1, 폰2 모델을 연달아 샀는데, 아뿔싸 이 모델들이 가진 민낯을 알아차리는데는 채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폰 SE 2 모델과 삼성의 S23 FE 모델로 다시 갈아탔는데, 이쯤 되니 내가 왜 이렇게 기계 하나에 과몰입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더욱 허탈한 것은 내가 언젠가는 아이폰 15 프로, 혹은 그 다음 버전으로 갈아탈 확률이 거의 90% 이상이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2.
물론 스마트폰이 우리 시대에 차지하는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기존에 우리가 쓰던 10여 개 이상의 기기들, 즉 전화기와 TV는 물론 워크맨과 계산기, 메모장, 녹음기, 카메라 등 나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능들을 손바닥만한 기계 하나에 몰아넣었으니 우리가 이 기계에 하루 종일 매달리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2,3 세대가 지난 안드로이드폰을 쓰면서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거다. 그것도 새벽 배송으로 그 다음 날 기계를 받아보길 기다리며 잠자리에 드는데, 그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새벽 공기를 맡으며 진행되는 언박싱의 짜릿함에 중독이 되어 나는 자꾸만 자꾸만 이렇게 이 뻔한 기계를 자꾸만 자꾸만 바꾸고 있으니 말이다.
3.
하지만 뜻밖에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적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증상을 '기변'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아이패드를 사기 전에는 절대 치료하지 못한다는 '아이패드병'이 있다. 나 역시 아이패드를 종류와 버전 별로 거의 대부분 한 번씩 사용해 보았는데 그 결론은 다름아닌 '필요없음'이었다. 비싸게 사고 손해 보고 팔기를 거듭하던 나는 이 문명의 기기가 결코 노트북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해하기를 심지어 여러 번 반복했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중독'일텐데,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브랜드란 이렇듯 '필요'를 넘어선 인간의 어떤 '욕망'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4.
이 시대에 사람들에 '브랜드'란 말에 열광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들린다면 그것은 오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그 모양과 쓰임새를 달리 했을 뿐 언제나 브랜드는 우리 가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무렵, 우리가 살던 시대를 지배했던 말 중의 하나는 '메이커' 였다. 내가 그 시절 짝퉁이 아닌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의 가방 하나를 얼마나 열망했던지를 굳이 공을 들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다 비슷한 메이커 점퍼라도 입고 가면 눈치 빠른 친구들은 왜 내가 입은 옷이 가짜인지를 마치 명품 감별사처럼 요리조리 뜯어보며 놀리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메이커가 지금의 브랜드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 브랜드가 8,90년대에 등장한 것이었을까? 그럴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브랜드의 실체가 쓸모가 아닌 욕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5.
성경에는 아담을 속이고 먹음직스런 사과를 기어이 먹고야 마는 하와(이브)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와는 뱀의 꼬임의 빠져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선악과를 베어 물었다가 출산의 고통이라는 형벌을 받는다. 남편은 어부지리로 평생 땅을 일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의 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선명하다. 인간은 태초부터 금지된 것을 열망하는 욕구로 가득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에르메스라는, 롤렉스라는, 벤틀리라는 선악과의 모습을 한 욕망에 사로 잡힌다. 그 결과는 가성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비로 이어진다. 그러니 나의 이 이해할 수 없는 스마트폰을 향한 열망을 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와이프는 꾸짖을 수 없다. (무엇보다 와이프는 내가 바꾼 스마트폰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6.
나는 지금도 아이폰 3S를 처음 구매했던 그 날의 설레임과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미팅을 갔다가 서울역 화장실에 아이폰을 두고 왔던 쓰라린 경험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핸드폰을 소변기 위에 두고 온 그 짧은 5분 동안 아이폰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내 앞을 스쳐 지나간 노숙자를 포함한 대여섯 명 중 한 사람이 그 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의 이 이해할 수 없는 소비의 시작은 어쩌면 2009년 6월 9일 발매된 아이폰 3S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망령과도 같은 소비의 욕망을 이어가는 애플이라는 회사는 또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회사란 말인가.
7.
내 친구 중에는 페라리를 임대한 후 한 달에 한 번 타는 의사도 있고, 천 명이 넘는 원생을 가진 학원 원장이면서도 철 지난 겨울 옷을 90% 할인가로 사는 것을 무슨 원칙처럼 지키는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 눈에는 만날 때마다 핸드폰을 바꿔 들고 오는 내가 공감이 될 수도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욕망의 대상과 그것을 채우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한 줌 모래처럼 사라지고 말 정치 권력을 얻기 위해 양심과 신뢰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꽤 합리적인 인간 아닌가. 이런 소비의 경험이 더 나은 브랜드를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이런 이유로 나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이와 관련된 일로 밥법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일감이라는 구명 조끼를 운 좋게 걸치게 된 것이다.
8.
그렇다고 내가 한낱 스마트폰에 하나에 빠져 인생과 돈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바라보진 않길 바란다. 새로운 것의 매력이 탐닉하는 이 기질과 성향이 아니었다면 '브랜드'를 매개로 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교육을 하고, 컨설팅을 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움에 대한 욕망은 나이 50에 달리기를 시작하게 했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했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쓰게도 했다. 내게 브랜드란 누군가의 서재에 꽂힌 위대한 명저들처럼 가슴 떨리는 주제다. 그래서 한낱 기계 제품에 불과한 스마트폰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읽고,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논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브랜드를 이해함으로써 같은 제품과 서비스에 2배, 3배, 100배의 가치를 더하는 가성비 좋은 재주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알려졌으나 평가절하된 브랜드를, 이미 역사가 되었으나 스토리만큼은 살아 숨쉬는 브랜드 스토리에 열광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참 괜찮은 삶이라 생각하고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