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딸아이가 엄마에게 '반골'이 무슨 뜻이냐고 묻고 있었다. 와이프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문득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반골 기질이 강한 종종 일상의 권위와 종종 부딪히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출을 받으러 간 노란은행에서 주거래은행이니 잘 봐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담당자 뒤에 서 있던 간부로 보이는 지원이 '월급만 넣고 빼면서 무슨...'이라며 투덜대는게 아닌가. 뭐라 말은 못했지만 그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아직도 노란 은행 간판만 보면 기분이 나빠지곤 한다.
2.
한 번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갔다가 20여년 간 두어 번 보았을 이모부를 만났다. 그는 대뜸 나보고 뱃살을 빼라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 와이프에게 큰절을 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이 50을 넘긴 조카 며느리에게,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큰절을 요구하는 무례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근거없고 과도한 권위주의를 일상에서 자주 만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갑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때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세상에서 반골기질의 사람들은 피곤함을 두 배로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3.
그러던 어느 날 토스를 만났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사용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꿋꿋이 어려움을 견뎌낸 이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하면서 나도 우연히 토스 앱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은행 앱이 이렇게 '친절'할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은행앱을 쓰면서 입금이나 출금이라는 말을 어색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토스는 이 당연한 용어를 '꺼내기' 와 '채우기'란 말로 바꿔버렸다. 어디 이뿐인가. 대출을 알아보든, 신용정보를 확인하든, 카드 청구서를 확인하든 그 어디서도 '나, 은행인데'라는 권위주의를 찾아볼 수 없다. 이체나 계좌 송금이란 말을 권위주의 용어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금융 서비스 중에 가장 친절한 앱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4.
그렇다면 이런 서비스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토스는 금융권에서는 철저히 후발주자다. 게다가 단순한 송금 서비스로 시작했으니 자신들 역시 기존 금융권으로부터 숱한 무시를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이런 경험이 차곡 차곡 쌓여 지금의 토스가 만들어졌을 거라 상상해본다. 또한 이들은 후발주자로서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차별화'를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거대 은행이 아닌 자신들의 앱을 믿고 사용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처절한 고민이 당연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말을 누군가 꺼내지 않았을까? 안그래도 문해력 떨어지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입금이나 이체라는 말도 어려워요. 그냥 '꺼내기' '채우기'라고 쓰면 어떨까요?
5.
배민의 한명수 이사가 강연하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중적인 전달력이 가장 좋은 분으로 기억하는 이 분이 마케팅과 브랜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그는 마케팅이란 물건을 사게 하는 것이고, 브랜딩이란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 회사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애플을, 스타벅스를, 나이키를 좋아한다. 그래서 제품을 사는 것이다. 반대로 몇몇 브랜드는 그저 제품이 좋고 싸서 사는 것이지 그 브랜드까지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6.
썸을 타던 연인이 결국 사귀기로 마음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가 아닐까.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용어를 생각해보자. 딸바보인 아빠가 부르는 이름들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스마트폰에 담긴 아이들의 이름은 회사 동료들의 이름과는 따르게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지칭하는 용어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브랜드가 단순한 판매가 아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들간의 용어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7.
양재동에 있는 고깃집 '솥두껍'은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다. 이곳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소개하는데 활용하도록 MBTI가 적힌 일회용 앞치마를 제공한다.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 도구로 활용토록 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친절함은 과도한 인사나 식상한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은 고객을 향한 관심,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노력,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용기로 완성되는 법이다. 나는 처음부터 토스앱의 '꺼내기' '채우기'란 말이 환영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실천했고 이제는 그런 작은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냈다. 그들엑 '고객중심'은 단순한 구호나 수사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