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일 어떤 이유로 마지막 한끼의 식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당신이라면 어떤 메뉴를 주문할 것 같은가. 적어도 나는 오래 고민할 것 같지 않다. 나는 분당 서현역 로데오 골목에 있는 '병천순대'의 순대국밥을 고를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가게를 오랫동안 알아온 것도 아니다.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다. 원래 순대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가게를 처음 간 순간 알았다. 아, 이 순대국밥은 내 영혼의 한 끼, 소울 푸드가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2.
나이 들수록 국밥이나 찌개 같은 음식이 좋아지긴 했다. 세상에서 못 먹을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선호하는 음식이 바뀌긴 한다. 예전에는 치킨이나 피자가 정말 좋았다. 지금도 있으면 먹지만 찾아먹진 않는다. 아무튼 그런 시기에 나는 병천순대를 만났고 시간과 조건이 맞으면 이 가게를 찾는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순대국이란게 사실 거기서 거기지 않은가. 게다가 이 국밥집의 인테리어는, 뭐 말할게 없다. 바닥은 기름으로 미끄럽고, 좁고, 불편하다. 특별히 주인이 친절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밥을 먹고 나오면 왠지 모르게 영혼이 치유받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말이다.
3.
이렇게 느낌과 이유가 모호할 때면 비교 대상이 있으면 좋다. 이 가게에서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더진국'이라는 현대식 국밥집이 있다. 이 가게는 1,000원 비싼 대신 세련된 식당이다. 바닥도 말끔하고 테이블 식탁이며 메뉴판, 음식의 비주얼까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맛도 평균 이상은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집은 발길이 가지 않는다. 가격 때문이 아니다. 소울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춤을 잘 추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데 기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이쁘고 잘 생긴 얼굴인데 정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설 불가다. 그러나 그 느낌적인 느낌을 우리는 모두 다 안다.
4.
한 번은 같은 교회를 다니던 후배가 허름한 떡볶이집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좋아해요. 그런데 이성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흥분해서 일단 한 번 사귀어보자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우리가 이성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나이 들어 이 얘기를 회사 후배에게 했더니 '최악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건 안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나쁜거라 했다. 그런건가. 아무튼 소울이 없다는 건 이런거다. 괜찮은데, 나쁘지 않은데, 좋아도 하는데, 끌리지는 않는 것이다. 이성과 음식을 이렇게 함부로 비교해도 되는 것일까?
5.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다보면 '아,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조건이나 감정적인 설렘 때문이 아니다. 그냥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편안한 느낌이다. 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겠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겠다는 편안함이 밀려드는 경우가 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겐 병천순대가, 25시간 하는 이 가게 그렇게 편안하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이 가게에 가면 나는 무장 해제가 된다. 그 빈 곳을 따뜻하고 지난 순대국물이 채운다.
6.
그렇다고 내가 오래된 노포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을 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나는 화장실이 깨끗한 식당이 좋다. 이곳이 깨끗하면 다른 곳은 보지 않아도 깔끔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새것을 좋아한다. 책도 오래된 책 보다 새 책을 좋아한다. 가게도 기왕이면 세련된 인테리어를 선호한다. 각잡인 테이블과 깔끔한 음식을 보면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다행히도 요즘 식당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병천순대는 그런 이유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7.
부글 부글 끓는 순댓국밥이 상 위에 올라온다. 나는 기본 세팅 외에 좋아하는 쌈장과 양파 조각, 고추를 몇 개 추가해서 가져온다. 깍뚜기는 선호하지 않는다. 처음엔 밥을 반만 만다. 국물이 너무 걸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반쯤 먹었을 때 아직 탱탱한 느낌의 나머지 밥알을 추가해 먹는다. 충만한 포만감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렇듯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한 공간, 사람, 음식이 있다. 그것은 어떤 마케팅 전략이나 브랜딩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 소울 푸드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이 가게의 컨셉이자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그저 오래도록 이 가게가 그 자리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주 우울할 때나, 너무 행복할 때, 나 홀로 이 가게에서, 나만 아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