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해지려 할 때면 청소를 한다

1.


나는 조금 우울해지려고 할 때면 청소를 한다. 어제도 글쓰기 수업을 가기 전 3시간 동안 집안 곳곳을 쓸고 닦았다. 고양이가 토한 자국을 치우고, 모래를 갈아주고, 소파 뒤에는 패드를 새로 깔아 주었다. 설거지를 하고, 종이와 비닐과 플라스틱을 종류대로 정리해 집 밖으로 꺼내 놓았다. 화장실 머리카락을 치우고 새로 산 돌돌이(고양이 털을 없앨 수 있는)를 비치해 두었다. 고장난 체중계와 쓸모 없는 짐들은 다용도실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2.


나는 남들보다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조금만 야단을 맞아도 쉽게 주눅이 든다. 내가 그토록 자기다운 삶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한 것도 그런 삶을 살기엔 다소 취약한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도 클라이언트의 냉정한 평가를 받고 일주일 내내 우울했다. 이럴 때면 달리 방법이 없다. 끝없이 고쳐 쓰고 달리 쓰고 재평가를 받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럴 때면 나는 청소를 하고, 글을 쓰고, 공원으로 나가 달리곤 한다. 흔히들 멘탈 관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노력이 결국은 삶의 의욕을 관리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3.


나는 어제 글쓰기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의욕이 넘치는' 삶이다. 사람은 뭔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 때 가장 행복해지는 법이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리는 가장 의욕적인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장소에 가고 싶어하는지 알기 위해 혈안?이 된다. 누군가를 알기 위한 의욕으로 가득찬 그 사람의 눈빛과 행동을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에너제틱하고 아름다운가 말이다.


4.


노안은 나이가 들면 찾아오지만 노인은 그저 나이 먹는 것으로 규정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아도 삶의 의욕으로 가득한 사람은 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젊어도 삶의 의욕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진짜 젊음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회사 출근이 싫어서 이른 아침 세면대에 설 때마다 우울해지는 이가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 누군가는 출근 후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이도 있다. 과연 누가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될까. 물론 일은 일이고 힘들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나 좋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더 자주 의욕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5.


그렇다면 이런 삶의 의욕은 어디서 얻어지는 것일까?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유시민씨가 소개하는 책 소개 유튜브를 들었다. 그 날은 마침 '총,균,쇠'란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프리카나 남미보다 유럽에서 세상을 바꾼 문화를 꽃 피운 이유는 다름 아닌 '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유전자가 우월하기 때문에 지금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제러미 다이아몬드는 유럽인들이 마침 그 때 그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지금의 문화를 꽃 피운 것이며, 그때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이 그 땅에 있었다면 그들이 똑같은 결과를 이뤄냈을 거라고 말한다. 즉 유전자가 아닌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총,균,쇠'라는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6.


그렇다면 이 이론을 한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전 회사에서 전형적인 루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쓴 글도, 내가 한 일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내게는 어려운 이론을 쉽게 글로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회사를 나와 7년 째 브랜드와 글쓰기에 관한 '쉬운' 글을 쓰면서 밥벌이도 하고 나름의 인정도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내가 월급 때문에 그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여전히 변변찮은 연봉을 받으며 우울한 회사 생활을 이어갔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자 나를 향한 시선과 대우도 달라졌다.


7.


그러니 삶의 의욕을 다시 찾고 싶다면 나의 노오력을 탓하기보다 일하는 환경을 바꿔보자. 내가 맞는 생태학적 최적의 장소가 따로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노력하지 않는한 아무리 환경을 바꾸어도 좋은 결과는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회사를 바꾸어도 보고, 때로는 혼자 일하는 도전을 해볼 필요도 있다. 진짜 이유가 나의 능력이 아닌 환경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좋은 환경은 나에게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건설적인 비평을 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곳이다. 나는 이런 의욕을 '드라이빙 포스driving force'라고 부른다. 내가 스몰 스텝이란 책을 쓴 것도, 삼십 대 중반에 회사를 옮긴 것도, 나이 50에 영어 공부와 달리기를 새로 시작한 것도 모두 나만의 드라이빙 포스를 찾기 위해서였다. 내 삶에 소풍 전날의 설렘과 같은 의욕을 불러오기 위함이었다.


8.


그래서 나는 우울해질 때면 청소를 한다. 내 마음 속 우울의 찌거기와 쓰레기들을 쓸어내기 위해 설거지를 한다. 힘든 노동 끝에 말끔해진 집안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때 쯤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나곤 한다. 글도 쓰고 싶고, 새로운 글쓰기 과정도 만들고 싶고, 브랜드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도 싶고, 밀린 보고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 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만사를 제쳐 두고 늘 가던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일에 몰입하면 서너 시간이 훌쩍 흐르곤 한다. 그렇게 몇 개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바라보는 카페 밖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니 우울할 때는 청소를 하자. 부디 당신의 삶에 포스가 함께 하기를. may the (driving)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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