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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샥과 롤렉스

브랜딩의 기쁨과 슬픔 - #05.

1.


남자들이, 그것도 중년의 남자가 브랜드로 자신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씩 빨간 바지를 멋드러지게 입는 분들도 만나지만 극소수다. 기껏해야 자동차나 시계 정도가 나를 표현하는 손 쉬운 수단이 아닐지. 그래서인지 나도 시계를 바라보는 눈이 각별하다. 다만 돈이 없어 표현을 못할 뿐이다. 내가 가진 시계는 대여섯 개 정도지만 대부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스마트 워치 몇 개, 페이스북에서 만난 노드그린이란 브랜드, 그리고 지샥이 전부다.


2.


양복이나 와이셔츠를 입을 때면 노드그린이나 스마트 워치를 찬다. 반면 운동을 하거나 캐주얼 복장을 할 때면 지샥이다. 지샥은 튼튼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도 멀쩡한 광고를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시계가 가진 매력은 스마트 워치와 아날로그 시계의 그 중간 어디메쯤에 위치하는 독특한 정체성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지샥은 바늘만 없을 뿐 (바늘 있는 시계도 많다) 스마트워치 보다는 아날로그에 가깝다. 따로 충전할 필요도 없고  막 다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할 때면 지샥을 찬다.


3.


하지만 나도 로망은 있다. 언젠가 큰 프로젝트를 하나 성사시키면 롤렉스 정도는 하나 가지고 싶다. 그렇다면 이 시계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1907년에 탄생한 이 브랜드는 사실 여타의 브랜드들에 비하면 역사가 짧은 편이다. 그래서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는데 그 중 하나가 '최초'를 단 기술력을 확보하는 거였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정확한 시계임을 인증하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손목 시계 최초로 받았다. 또한 1926년에는 세계 최초로 방수, 방진 시계를 개발한다. 이 시계가 바로 그 유명한 '오이스터'란 이름의 롤렉스다.


4.


또 하나는 다양한 스포츠 문화를 즐기는 영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롤렉스는 세계 최초로 도버 해협을 횡단한 메르세데스 글리츠라는 여성의 손목이 오이스터를 채웠다. 그렇게 그녀가 바다를 횡단하는 동안 롤렉스는 정확하게 작동했고 전 세계의 그녀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동안 시계 광고가 슬쩍 그 옆을 장식한다. 이런 전략은 요즘의 레드불 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튼 이런 몸부림 끝에 롤렉스는 후발 주자임에도 확실한 자기 시장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5.


지금의 시대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차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워치의 등장은 마치 TV가 등장한 후 몰락의 길을 걸었던 영화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영화도 살아났고 아날로그 시계 시장도 여전히 굳건한게 현실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검색된 럭셔리 시계 브랜드는 여전히 롤렉스다. 서브마리너, 데이토나, 데이저스트, 오이스터... 나는 언제쯤 이들 중 하나를 내 손목으로 모셔올 수 있게 될까?


6.


브랜드는 그 탄생과 생존과 성장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와 확실히 차별화된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라면 5천원 짜리 세이코 시계로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다. 그 정확함 때문에 수능 시계로도 팔리지 않는가. 하지만 롤렉스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샤넬이나 구찌, 에르메스 백을 가방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는 '인문학적'인 해석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가성비로 승부하는 시계들이 공존하는 것도 시장이다. 나는 이런 브랜드의 세계가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7.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평범한 제품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에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롤렉스를 오랫동안 차다가 아들이나 사위에게 물려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부터 그 시계는 단순한 롤렉스가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담는 특별한 유산이 된다. 그렇다면 애플 워치도 그 유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나는 힘들다고 본다. 해마다 프로그램이 바뀌는 스마트 워치는 '변함없음'이 핵심인 유산의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8.


마케팅이 제품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면 브랜드는 그 제품과 서비스를 '의미'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놓는다. 여기서 의미란 가치의 다른 말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끝없은 욕망을  상징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유산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러한 인간의 숨은 욕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그저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로 남을 뿐이다.


9.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그들이 차고 있는 시계를 슬쩍 바라보곤 한다. 하다 못해 유튜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손목을 유심히 보곤 한다. 그 사람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상상하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싼 시계를 찾다고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손석희 전 앵커는 값싼 세이코 전자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지금 차고 있는 노드그린이 북유럽의 실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좋아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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