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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텝의 역설, 두 번째 이야기

30년 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누가 물어도 베프라고 자신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항상 내가 가장 힘들 때 함께해주던 친구였다. 대학 시절에는 그 친구 방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달리기며, 자전거며, 골프 따위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아낌없이 내가 가진 것들을 선물하곤 했다. 친구 딸에겐 아이패드를 선물했고, 친구 아들에겐 시계를 선물했다. 친구 와이프에게 중고지만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그리고 친구에겐 틈틈히 비싼 소고기를 대접했다. 왜냐하면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와의 30년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야기의 발단은 어이없게도 친구에게 선물한 스마트폰이 원인이 되었다. 친구는 사진을 찍어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리길 좋아했다. 그러면서 더 좋은 화질로 찍지 못하는 상황을 속상해하곤 했다. 헤질대로 헤어진 스마트폰 케이스가 말해주듯 그의 폰은 오래된 모델이었고 따라서 화질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산 나의 스마트폰을 고민 끝에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가 좋아하는 케이스까지 함께 말이다. 이 핸드폰으로 우리들의 추억을 멋지게 계속 담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는 그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두어 주가 지난 후에야 와이프에게 그 핸드폰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늦은 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이번엔 네가 실수한 것 같다."


진심이었다. 그 만큼 실망도 컸다. 이미 한 번 비슷한 일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충격은 컸다. 예전에 선물한 스마트폰도 친구는 와이프에게 큰 고민없이 주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슬픈 예감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그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친구는 긴 말 없이 '그러자'고만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한 친구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화가 난다며 스크린 골프장에 가서 골프채를 휘둔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바다 수영을 하고 와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적 이슈를 단톡방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 즘은 와이프는 머리가 아파 병원을 들른 적이 있었다. 병원에선 혹시 뇌종양일지도 모르니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아들은 4수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고민과 걱정들을 그 친구와 함께 하는 단톡방에 올리곤 했다. 그러나 친구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와이프의 검사가 끝이 나도, 아들의 시험 시간이 지나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어 결국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의 와이프에게서 핸드폰을 다시 돌려다라고 해야 했던 자기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일은 '선을 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바라는게 많으냐는 말도 했다. 마음 한 쪽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소주 2명을 마시고 단톡방을 나왔다.


물론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내가 한 행동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굳이 한 번 준 선물을 돌려받아야 했을까. 그 단톡방을 굳이 나와야 했을까. 지난 30년 간 함께 쌓아온 좋은 추억들이 매일 매일 떠올라 괴로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런 의문도 함께 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그 친구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까. 내가 준 선물들을 정말 소중하게 받아주었을까. 함께 웃고 떠드는 순간 만큼이나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있어줄 수 있는 관계일까. 그러고보니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장인 어른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장인 어른과 같은 도시에 살던 친구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친구가 사는 부산에 갔을 때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던 친구였다. 그런 섭섭한 일들이 하나 둘 떠올리는 내가 싫었다. 그러나 함께 쌓아온 우정에 시실금이 가고, 그 금이 커지고, 이윽고 마음 속에 무너지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관계의 스몰 스텝은 아슬아슬하다. 다산 정약용은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하나 둘 떠나가는게 당연하다는 말도 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스몰 스텝을 주장하던 나는 이 관계의 굳건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더 나이가 들면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지난 4년 간 함께 공동 명의에 통장에 곗돈을 붇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차곡 차곡 쌓아왔던 관계들이 하나 둘씩 허물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정확히 스몰 스텝에 반하는 결과들인다. 그럼에도 나는 스몰 스텝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10년 간 계속해온 관계의 스몰 스텝의 탑을 계속 쌓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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