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네 번째 대학 입시 도전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 번째 수시 도전은 예비 2번이 전부인 결과로 돌아왔다. 그날 아내는 일을 하다가 아들이 걱정이 되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그 즈음 스몰 스텝 두 번째 책의 원고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아내가 집으로 급하더 돌아오던 그때 아들의 실패를 직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과연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지난 4년, 이나 기타를 처음 배우던 때로 돌아가면 최소한 10년 이상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노력해왔을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스몰 스텝의 힘을 자신있게 전파할 수 있을까? 그런 아들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친구는 30년 된 교회 친구였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친구였지만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성실함을 가진 친구였다. 그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이유에선지 나이 50을 넘긴 지금 그는 매출이 1조를 넘기는 회사의 상무 이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그랜저가 나오고 연봉은 1억을 훌쩍 넘긴다.
하지만 이 친구는 벌써 몇년 째 암 투병 중에 있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생명 연장의 통보를 받는다. 친구는 그때마다 절망에 몸서리치면서도 내색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 만큼 스몰 스텝으로 살아온 친구가 다시 있을까? 그런데 왜 신은 이 친구에게 그 성실함의 대가로 이런 병을 허락한 것일까?
이런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는 1년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학원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은 엉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깔끔한 성격이 못되는데다 3마리나 되는 고양이가 함께 사는 집은 하루만 치우지 않아도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기 시작한다. 이런 무질서가 사흘만 지속되도 감당하기 힘든 결과가 벌어진다. 설거지가 쌓인 씽크대에선 파리가 날아다니고, 어느 순간 부엌 구석에 조그만 거미줄이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기겁을 했다. 스몰 스텝은 잘 되는 곳에서도 작동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작동한다. 나는 두 번째 스몰 스텝에 관한 책을 쓰는 동안 이런 불신과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몰 스텝의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두 사람의 스몰 스텝 동료를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몰 스텝은 홀로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지쳐 있을 때 그들은 스몰 스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조용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내가 스몰 스텝에 대해 스스로 회의를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은 내게 자신들의 작은 성공담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몰 스텝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엇갈림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들은 지난 10여 년의 도전을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을까. 내 친구는 10여 년의 투병 생활에 지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붙태우며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스몰 스텝의 역설을 끌어 안고 두 번째 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바로 그런 실패와 회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몰 스텝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