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전개가 이상했다. 여느 맛집을 탐방하는 프로그램과 많이 달랐다. 당황한 PD의 카메라가 살짝 흔들렸다. 주인 아주머니가 만 김밥은 옆구리가 터졌다. 주 메뉴인 우동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다시마 4장이라고 했다. 뭐가 더 있겠지 기대하는 카메라 옆에서 주인의 아들은 육수의 염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주인 아줌마가 끓이는 우동의 맛이 늘 달라서라고 했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도 가게 안은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10년 된 단골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20년 이상 된 단골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당연하게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를 따랐다. 이 집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유명한 우동가게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충주에 위치한 이 우동 가게는 새벽 늦게서야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근처 유흥가에서 1,2차를 마친 손님들이 속풀이를 위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사연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찾았다. 다른 가게와 다른 점은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화답한다. 그 시간에 술을 마시는 많은 이들에게는 ‘사연’이란게 있기 마련이었다. 주인 아주머는 몇 시간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었다. 그리고 그 대화가 끝날 무렵 아주머니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신이 이야기를 짧은 글로 남기게 한 것이다. 이름과 사인으로 마무리된 이 종이는 그 손님이 앉은 자리 근처에 본드로 붙여졌다. 언제라도 다시 찾아와 그 사연을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종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게 벽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중엔 천장에 붙였다. 그래도 자리가 없자 이중으로 붙여졌다. 그 종이는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점에는 4,000여 장으로 늘어 있었다.
그 많은 종이의 숫자를 다 센 PD의 얼굴에선 땀이 흘렀다. 내 마음의 눈에선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그제서야 수십 년 된 단골들이 이 우동가게를 찾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주인 아주머니는 들어주고 있었다. 우동은 맛은 염도의 차이에 있지 않았다. 공감의 크기에 있었다.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소통만 가능하다면 말이다. 노랗게 색이 바랜 종이들이 이 집의 존재 이유를 웅변하고 있었다. 4,000여 명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4,000여 개의 사연을 이 우동가게에 남기고 갔다. 그들이 이야기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 이 집을 ‘브랜딩’하고 있었다. 4,000여 개의 스토리를 만날 수 있는 우동가게는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에 다시 없을 것이다. 이 우동하게는 그렇게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있었다.
모든 장사가 끝난 뒤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노트를 펴들었다.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제서야 이미 몇 권의 책을 써낸 저자임을 알 수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노름으로 재산을 날린 남편 때문에 시작한 우동가게였다. 곱디 곱게 부잣집에서 자란 아주머니는 그렇게 오랫동안 사연 많은 우동가게를 운영해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얘기 같아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누군가가 맛으로 승부를 걸고 있을 때, 인테리어에 힘을 쏟고 있을 때, 뻔한 스토리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우동가게의 아주머니는 김밥 옆구리를 터뜨리고, 다시마 4장으로 우동의 맛을 우려가면서, 그렇게 자신의 가게에 스토리를 덧입히고 있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이자, 브랜딩의 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이 우동가게의 가치를 한 마디로 뭐라 말할 수있을까? 어쩌면 한 마디로 ‘공감’, 혹은 ‘소통’이라고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단어로만 존재할 때는 한없이 흔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남는다. 그러나 그 ‘가치’가 이야기를 만나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비로소 ‘브랜딩’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이 우동가게의 아이덴티티는 선명한 이미지로 뇌리에 새겨진다. 쉽게 이해되고 쉽게 전달된다. 비로소 이 가게가 말하는 공감과 소통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치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BI나 CI와 같은 값비싼 포장재가 아니다.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선명한 ‘메시지’다. 아름답고 솔직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브랜딩은 쉬울 수 있다. 아니 쉬워야 한다. 꼭 큰 돈을 들여야하는 커다란 작업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전제가 한 가지 있다. 다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가치’를 좇아 지금의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마지막 질문 한 가지.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보여주고 자 하는, 그 가치는 ‘진짜’인가? 그렇다면 의외로 브랜딩의 과정은 좀 더 쉬워질지 모른다. 아니, 이미 브랜딩이 끝나있을지 모른다. 이 '행복한 우동 가게'가 그러했듯이.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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