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참기름
참기름을 파는 한 사람이 있었다. 17년 이상 전통 기름을 만들어온 탓에 로스팅과 착유기술에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진짜’ 참기름을 판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참기름은 통참깨가 아닌 참깨분말로 만들어진다. 분말 형태의 참깨는 더 쉽게 많이 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벤조피렌이란 발암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 게다가 기름을 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깻묵은 수거 업자에 의해 가짜 참기름 회사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그는 통참깨로 만든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참기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이름 모를 작은 회사가 만든 그의 제품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미수금은 늘어나고 원료를 구입할 돈은 없어 기계가 노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자신을 몹시 따르던 아이들에 ‘아빠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무심코 물었다. 남매인 두 아이가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양심이 있잖아요"
그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참기름’이 아니었다. ‘양심’을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보다 더 좋은 기름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입 참깨분말이나 식용유를 섞은 가짜 참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참기름을 자신의 ‘양심’을 걸고 만들고 있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생각과 스토리를 담아 ‘와디즈’라는 사이트를 통해 펀딩을 결심한다. 500만 원이라는 소박한 금액이었지만 당시엔 너무나도 절실한 자금이었다. 문제는 이런 자신과 제품의 ‘남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는가가 문제였다. 아이들도 인정하는, 자신의 ‘양심’을 어떻게 하면 제품에 담아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그 답을 찾았다. 바로 ‘깻묵(참깨박)’이었다.
진짜 참기름 대신 양심을 팔다
그는 펀딩 사이트에 올린 제품에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함께 포장했다. 깻묵으로 만들고 있는 요리는 물론 다른 활용법도 함께 동봉했다. 전문가라면 깻묵만으로도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펀딩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와디즈' 대표는 펀딩에 성공한 수많은 브랜드들 중에서도 ‘정준호참기름’의 사례를 인터뷰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규모는 작지만 진정성 넘치는 스토리의 힘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3년 전 처음 만나 '정준호참기름'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이라는 가치를 선명하게 보여준 그의 스토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브랜드를 어렵게 생각한다. 엄청난 자본과 대단한 지식이 필요할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브랜드를 사치, 혹은 포장으로 여긴다. 당장의 매출에 대한 압박과 생존에 대한 염려가 단기적인 프로모션이나 이벤트, 마케팅 방법을 골몰하게 한다. 그러나 ‘정준호참기름’은 그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자신이 가진 ‘양심’이라는 가치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정직하고 고집스럽게 일하고자 하는 자신의 가치를 보이는 ‘제품’의 모습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에겐 브랜드 아이덴티티나 컨셉 따위를 골몰할 시간적인 여유도,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본질’에 집중했고 펀딩 사이트의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고객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 회사의 대표를 만났다. 그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정직’이라고 말했다. 모호하게 들렸다.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회사는 국내의 유명한 음원 회사에 두 개의 프로그램을 납품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하나의 프로그램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담당자가 바뀌고 새로운 계약을 갱신하는 날이 왔다. 계약은 무난히 연장되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연매출이 약속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표는 이 계약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한 ‘정직’이라는 약속을 어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자금 사정이 극도로 나쁠 때였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그 프로그램의 계약은 없던 일이 되었다.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 회사의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훨씬 더 큰 계약을 맡기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직원들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회사 내에서 일어났다. 대표의 결정에 의아심을 가지던 직원들의 ‘정직’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 회사는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속도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정직’이라는 가치를 그때만큼 선명하게 깨달은 적이 없었다. 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확신으로 바뀌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가치’는 보여져야 한다, 전해져야 한다
보여져야 한다.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경쟁 제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선택받을만한 선명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저성장, 고불황이 고착화된 이 시대의 소비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작지만 독특한’ 제품과 서비스를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은 인스타에 사진 한 장만 올릴 수 있다면 기꺼이 골목 깊숙히 숨은 이름 없는 가게도 찾아올 수 있는 고객들이다. 문제는 그렇게 드러낼 자신의 ‘개성과 가치’가 있느냐의 여부다. 그 가치를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그 가치를 ‘컨셉’과 ‘스토리’, ‘비주얼’로 보여줄 수 있는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 방법은 오직 그 브랜드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임으로 ‘정답’은 없다. ‘정준호참기름’은 그것을 ‘양심’에서 찾았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내 주변의 사람들도 인정할 만한 우리 브랜드의 차별화된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만들어 전달할 것인가. 브랜딩은 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참고로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아본 '정준호참기름'은 대형마트에 입점했음은 물론 최근에는 홈쇼핑에서 완판 기록을 세우고 있다. 미슐랭가이드에 오른 비빔밥집 '목멱산방'에 쓰이는 참기름이기도 하다. 그들의 '양심'은 여전히 절찬 판매되고 있는 중이다.
Written by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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