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들이 즐비한 조용한 골목을 살짝 들어가면 한 벽면이 모두 유리일 정도로 넓게 트인 통창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두 명 남짓이 앉을 수 있는 바(bar) 자리가 바로 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채도가 낮은 조명등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짙은 고동색의 원목 책상, 의자에서 차분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마음에 드는 부동산 매물을 고르는 게 아니라, 내일 혼자 방문할 카페를 꼼꼼히 따져보며 고르고 있는 중이다.
혹시나 네 명 정도가 앉을 만한 큼직한 책상에 나 하나 편하겠다고 떡 하니 자리 잡느라 카페 사장님이 어쩔 수 없이 단체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불상사는 절대 없어야 하므로 조그마한 책상이나 일렬로 착석이 가능한 바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인테리어는 생각보다 꽤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허리를 깊이 숙여야만 손이 닿도록 설계된, 무릎 높이까지 간신히 오는 낮은 테이블과 엉덩이가 배길 정도의 딱딱한 철제 의자들은 부디 커피 한 잔과 함께 짧은 대화 정도만 나누고 일어나시라, 하는 무언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음을. 손님이 오래 머무르는 게 사절인 공간이라면 나 또한 굳이 찾아가서 객기 부리며 사장님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다.
지금은 사라진, 예전 홍대에 위치한 카페의 이름은 '오래있어도 괜찮아,'였다. 신촌의 카페는 메뉴를 주문하면 음료와 함께 '오랫동안 편하게 머물다 가셨으면 좋겠다' 문구가 적힌 종이를 넌지시 건네주시곤 했다 (잠깐 영업을 중단하셨다가 재개하셨는데, 지금도 주시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직접적인 메시지는 없어도 테이블 근처에 완비된 콘센트와 시선이 닿는 구석구석에 와이파이 표시가 있다면 이곳은 노트북을 사용해도 되는 분위기 이겠거니 하며 짐작해볼 뿐이다.
이렇게 먼저 말씀 주시면 감사하죠!
디저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카페 인스타그램의 메뉴판과 블로그 리뷰의 사진들을 뒤적여본다. 요즘에는 시즌에 따라 메뉴가 휙휙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시폰 케이크나 파운드케이크의 식감은 씹히는 맛이 적어 영 먹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잘 찾지 않는 메뉴다. 한창 유행하고 있는 크로플도 안타깝게 나의 취향과는 꽤 거리가 멀어서 카페 결정에 주효하지 않은 메뉴. 하지만 여기에 비스킷 가루가 촘촘하게 깔린 레어치즈케이크가 있다면? 이곳이 바로 내일 찾아갈 곳으로 낙점이다.
그저 조용히 즐길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사교성을 발휘해야 하는 취미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이전에 했던 여러 가지 운동들이 그러했다. 자세에 대해 조언을 하며 말을 걸어주는 분들에게 적절한 감사함을 표해야 하고, 회원들끼리 두루두루 친한 체육관의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맞춰야 할지, 다들 이미 친한데 굳이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그 애매한 느낌이 내향적인 나에게는 퍽 불편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은 소극적이어도 꽤 괜찮은 취미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으며 (기껏해야 의자 가져가도 될까요?) 아늑하지만 집구석처럼 늘어져 있을 정도로 아주 편한 건 아닌, 타인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정도의 적당한 긴장감이 좋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카페 주인의 취향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는 공간에 마치 초대받은 손님처럼 들어가서 가만히 머물다가 가는 것, 비치된 잡지를 읽거나 핸드폰을 하며 굳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그저 예쁜 장소에서 달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게 나의 사소한 행복이다. 달달한 디저트가 혀에 닿으며 분비되는 도파민을 몸소 느끼며 포크로 케이크를 작은 조각으로 베어내듯 스트레스를 조금씩 베어낸다.
나는 어른이 되면 깨닫게 될 줄 알았던 알코올의 맛을 충분히 어른이라 불릴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 또 흡연에 대한 호기심 조차 없었기에 술과 담배의 영향 없이 건강하게 살겠구나 했는데 설탕 범벅 케이크와 달달한 커피가 복병이라니. 아무래도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 몸을 파괴하고야 마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