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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Oct 14. 2021

다이어리 찾기 대탐험

예쁜 노트만 보면 손이 가요 손이 가

노트 쇼핑이 좋다. '노트'와 '쇼핑'이라는 단어 조합이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문방구를 방앗간처럼 드나들며 끝까지 다 쓰지도 못할 노트를 충동적으로 사들이고 죄책감 가지기를 반복하곤 했다. 바른손과 모닝글로리 뿐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개성 있는 브랜드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노트들을 구경하다 보면 표지 디자인부터 제본 방식도 천차만별이라 마치 온갖 취향의 전시관 같기도 하다.


한창 그림 연습에 몰두하던 시기에는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도 구멍이 뚫리지 않을 양질의 종이와 표지가 예쁜(어쩌면 종이보다 중요) 드로잉용 노트들을 사들였다. 여행지의 서점과 편집샵에 들를 때마다 그곳에서 파는 얇은 노트들은 메모할 일이 있겠지 싶어서 언젠가의 쓸모를 위해 늘 기념품처럼 가지고 돌아왔다.

이윽고 회사원이 되면서 주요 필기 수단은 종이가 아닌 노트북으로 자연스럽게 대체되었고, 회사에서 나눠주는 똑같은 검은색 표지의 사무용 수첩에 업무에 필요한 메모를 휘갈기게 되었다. 어느새 다이어리만이 내 취향이 담긴 유일한 노트로 남았다.


몇 년 전 치앙마이 <북스미스>에서 구입한 노트


삼 년째 다이어리는 'mossery (이하 모세리)'에서 구입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알 길이 없을 법한 먼 나라 말레이시아의 브랜드 모세리를 접하게 된 건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서였다. 썸네일들로 가득 차 어지러운 피드 구석에서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은 컬러풀한 색감에 꽂혀 한참 홈페이지를 뒤적이다가, 차분한 짙은 녹색에 불규칙한 패턴을 지닌 다이어리를 샀다. 마치 책의 제목처럼 금박으로 예쁘게 각인된 내 이름이 상단에 박힌 다이어리를 보며 매년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했던 게 어느새 연례행사처럼 굳어진 것이다.


그다음 해는 원래부터 좋아하던 아티스트 'heikala'와 협업을 했다는 소식에 고민도 없이 바로 작가님의 그림인 표지의 다이어리를 선택했으며, 2021년의 다이어리는 달의 모양을 한 존재들이 힘센 기운을 타고 어딘가로 빠르게 상승하는 이미지의 표지가 낙점되었다. 그간 침체된 일상을 보내다 보니, 마치 미신처럼 밝고 컬러풀한 표지의 다이어리를 사야 왠지 행운이 따라줄 것만 같은 마음에(올해를 되돌아보니, 미신은 그저 미신일 뿐인 것 같다).


모세리 다이어리


그렇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한다.

실컷 칭찬을 늘어놓고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간 아주 사소하게 불편하다 느꼈던 점이 이번에는 크게 거슬렸다. 종이를 실로 엮는 사철 제본에 풀을 바르는 방식인데, 접착된 면이 페이지를 약간씩 침범하는 바람에 일곱 장 단위마다 완벽한 180도가 아닌 비뚜름하게 펴지는 페이지를 써야 하는 게 계속 신경 쓰여왔다.


게다가 올해 제품은 다이어리 표지 안쪽의 수납 영역이 이전보다 늘어나서인지 하드커버 표지 끝부분이 바깥쪽으로 계속 둥그렇게 말리는 현상까지 생겨, 한동안 이를 평평하게 펴기 위해 무거운 책으로 눌러놔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접착면이 넓은 페이지를 펴다가 그만 아래쪽이 손아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렸다. 여러 해를 거쳐 슬금슬금 올라오던 짜증이 드디어 삼 년 만에 터지고 말았다.


이건 진짜 선 넘음


일 년에 고작 한 번 구입한다고 나한테 이러기야? 억울한 마음에 다음 해는 다른 다이어리를 쓰겠다고 다짐한 게 이번 대탐험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그 많은 다이어리 중에 내 취향에 맞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했던 건 나의 속단이었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고 했던가? 사람이야 겉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게 맞지만, 책은 커버를 보고 판단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표지가 예쁘다면 실용성은 못 본 척 넘어가 줄 용의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유니크한 디자인인데다 반짝거리는 비닐코팅도 아니고 촉감 좋은 무광의 하드커버 재질 모세리를 이길 다이어리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정신없이 수백 개의 제품을 들여다보았지만 속지도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이 제로에 수렴했다. 감정을 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 기록의 도구로서 일기를 쓰고 있다 보니 (실제로 일 년 전 날씨와 몸무게가 어땠는지 궁금할 때 들춰본 적도 있다) 일기라기보다 일지에 가깝고, 그날의 계획을 체크하는 플래너 기능이 있어야 한다.

모세리는 플래너와 저널의 기능을 동등하게 제공하고 있고, 컬러풀한 표지와 대비되게도 속지의 폰트와 라인은 톤 다운된 그린 / 레드 / 네이비 세 가지 색상으로만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른 제품들을 찬찬히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나 이런 거 좋아했네...

다꾸 스킬에 통달한 금손들에게만 허락된 광활한 공백은 너무 부담스럽고, 필요 이상으로 줄이 쫙쫙 그어져 있는 건 더 싫다. 나에게 너무 자율성을 주지도 말고, 내가 너무 의존을 하게 만들지도 마!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기록하면 되는 최소한의 섹션 구분을 원한다고!


엉뚱하게도 다이어리를 구경하는 와중에 눈에 띄는 노트를 발견하고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사기로 결정했다. 비록 마무리는 타이핑 작업으로 하더라도 글의 근본 뼈대는 무조건 손으로 끄적이면서 만든다, 라는 나름의 아날로그 스러운 글쓰기 규칙이 있기도 하고 소재가 떠오를 때 바로 옮겨 적을 노트가 필요했는데 [Personal writing]이라는 너무나 적합한 타이틀에 마음이 빼앗긴 것이다. 심플하면서 컬러풀한 색상 조합도 좋고, 두께는 두껍지만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에 무겁지 않아 휴대성이 좋다. 오랜만의 노트 쇼핑인데 마음에 드는 제품을 건져서 더욱 만족스럽다.


그래서 원하는 다이어리를 찾았냐 하면 아직이다. 기본적으로 심플하지만 또 너무 차분한 것보다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그려진 밝은 느낌이 좋고, 속지는 기능별로 양분되어야 하며 하드커버로 잘 휘어지는 재질이 아니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의 취향은 이렇게 까탈스럽다. 그런 면에서 이변이 있지 않는 한, 이번에도 모세리의 다이어리를 사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무서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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