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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Sep 25. 2018

카페에서 노닥노닥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

안락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 밖을 지나가는 다른 이들의 일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듣는다. 이따금씩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머신의 소음과 대화 소리가 더해지지만 잔잔한 노래와 거슬리지 않게 이질감없이 섞인다. 넓게 트인 창으로 따뜻한 햇빛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있다. 가끔 흐린 날 빗줄기가 창을 타고 내려오곤 하지만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는 빗소리도 좋다. 바닥에 가라앉은 초콜릿 시럽에 진한 우유와 에스프레소를 넣고 단단한 휘핑크림이 위에 올려진 카페모카가 나왔다. 고소한 휘핑크림을 떠먹고 달콤한 모카를 한 모금 마시니 아까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커피가 물릴 때는 폭신한 우유거품이 올려진 밀크티를 대신 마실 때도 있다. 가끔씩 진열대에 놓인 예쁜 디저트가 눈에 들어오면 알록달록한 마카롱이나 스콘, 티라미수를 같이 먹기도 했지만 역시 제일 좋아하는 건 뉴욕 치즈케이크이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친구와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 어머니가 공부하면서 마시라며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한 잔 사다 주셨다. 자판기에서 뽑은 500원짜리 캔커피만 홀짝홀짝 들이마시던 나에게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3-4천 원'씩이나'하는 커피를 처음 맛본 건 그때가 처음. 지금은 거리마다 즐비한 카페들이 익숙한 풍경이나 다름없지만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카페들은 그 이후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는 용돈 사정이 괜찮은 날 다음 용돈 날까지 남은 날짜를 헤아려가며 카페에 드나들곤 했다.



취미 (趣味) [취ː미]의 사전적인 의미를 검색하면 가장 첫 번째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카페를 자주 찾는다 하면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원두 맛을 모두 구별할 정도의 지식이 있거나 하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우유가 들어간 모카나 라떼를 마시기 때문에 블렌드가 어떻고, 싱글 오리진이 어떻고 원두의 맛을 논하는 건 어려울 뿐이다. 집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상상할 때 그냥저냥 시큰둥한 느낌인 것을 보면, 분명히 커피보단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저 아늑하고 잘 정돈된 공간에서 편안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카페를 찾는 게 예전부터 간직해온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다.


각각의 공간에는 주인들의 취향들이 녹아있다. 주문을 마친 뒤 자리에 앉아 의자와 테이블 같은 가구, 책장에 꽂은 도서와 벽에 비스듬히 기대 놓은 액자의 그림을 눈으로 찬찬히 살펴본다. 때로는 아기자기하거나 때로는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을 가늠해보며 마치 조금은 큰 응접실에 초대받은 손님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는 그대로 커피를 제조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바꾸고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을 때 나는 책을 읽거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노트북을 한다. 아무런 긴장 없이 그저 하릴없이 멍을 때려도 그만이다.



오늘의 날씨는 구름이 흐릿흐릿하게 퍼진 약간은 흐린 날씨. 이따금씩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주변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들이 많기에 귀여운 강아지들이 산책하는 모습도 간간히 구경할 수 있다. 다른 손님들은 혼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친구와 함께 웃으며 그동안의 근황을 나눈다. 잔잔한 노래는 소음들과 한데 합쳐져 한 곡처럼 조화를 이룬다. 널찍한 목재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내가 선호하는 메뉴가 시그니처인 이곳의 주인은 나와 취향이 닮았다. 카페에서 보내는 이 시간은 변함없이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사랑하는 시간으로,  앞으로도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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