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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Feb 04. 2019

우리 언제 한 번 보자

보자 놓고 진짜 보는 사람을 못 봄

언제 한 번 보자.

나에게 물어볼 게 있다며 오랜만에 메신저로 말을 건 선배는 간단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들은 후 이렇게 말했다. 언제 한 번? 그 언제가 언제인데요?라고 궁금한 듯 묻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깊숙이 언젠가는 점심이나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 하자는 연락이 오겠거니, 짐짓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선배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을 때는 이미 반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제야 바보 같은 나는 깨달았다. '그건 알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뿐인 빈말이었구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년생 때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빈말을 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정말 막역하게 친한 사람들보다는 전화로만 대화하다 처음 대면하는 자리 혹은 아예 처음 만나는 사람 등 회사 차원에서의 미팅 자리가 많아졌다. 서로 간의 히스토리가 현저히 적은 사이의 어색한 공기와 침묵을 때우려 우리는 이것저것 의미 없는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빈말이 빈번하게 오가는 또 다른 자리는 바로 명절 친척들이 한데 모인 큰집일 것이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취직은 언제 하니?' '결혼은 언제 하니?' 따위의 오지랖 넓은 질문들은 진심으로 듣는 이의 미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대화를 유지하기 위한 땔감 거리이니 나는 이것을 빈말이라고 부르겠다. 사실은 그들은 남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데 단 1분도 투자한 적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스트레스겠지만 나는 잠깐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요즘 어떻게 지내니? 와 같이 근황을 묻는 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단순한 질문만으로는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 또한 절친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알고는 있는 관계에서 우물쭈물하며 모두가 민망해지는 사태를 모면하고, 그날의 만남을 '잘' 끝맺음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그들 나름의 고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빈말이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친구나 선배의 지켜지지 않을 게 명확한 이 인사는 왜 아직까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당시에는 꽤 가깝다고, 친하다고 느꼈던 관계의 그들이 이제는 나를 위해 한 끼 식사정도의 짧은 시간조차 내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사살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러니, 다들 '언제 한번 보자'는 진심 없는 인사 대신 '건강해' 혹은 '잘 지내'라는 말로 대신하는 게 어떨까? 적어도 상대방이 건강하지 않거나 잘 지내지 않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그래도 이미 입에 착착 붙는 말버릇이 되어 버려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이라면 상대방이 진짜로 다음 주에 약속이라도 잡을 것처럼 언제 만날 지 되물을 때 흠칫 놀라지 않을 최소한의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놓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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