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른과 호선생 그리고 꼬마 바로의 세계여행. 어느덧 베트남 나트랑 > 호치민 > 싱가포르 > 발리다.
낮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저녁에 들어와서는 씻기고 재우고.. 보통은 피로에 지쳐 아이와 함께 쓰러져 잠들거나, 다음날 일정을 짜거나, 다음 행선지 숙소나 비행기 티켓 예약을 알아보느라.. 도통 글을 쓸 여력이 없다. 짧은 사진과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중이지만, 이렇게 400일 여행이 끝나면 정말이지 남는 게 없을 것 같아 잠이 안 오는 새벽에 글을 쓴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무려 17년 전, 첫 직장 신입 우수사원 표창으로 4박 5일 일정으로 다녀온 적 있어 나는 두 번째 방문이다. 4박 5일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고, 회사사람들과 함께 했음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과 특급 리조트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아름다운 발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하고, 구태여 유명 휴양지 발리를 우리 세계여행 일정에 무리해서 끼워 넣었다.
발리 하면 석양과 푸르른 바다, 우붓의 밀림 등 훌륭한 자연경관이 정말 아름다운 휴양지다. 하지만, 발리는 아이와 자유여행하기에 그리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일정 내내 리조트와 비치클럽에서만 시간을 보낼게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좁고 매연 가득한 도로엔 오토바이와 무질서한 운전자들이 뒤섞여 아이와 좁은 인도를 걸을 때마다 노심초사했고, 인도네시아 특유의 향신료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또한 공격적인 원숭이들의 테러로 여행 중 아이의 비명과 울음이 끊이지 않았던 슬픈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발리로 가는 젯스타 항공편은 잦은 지연과 결항이 있어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시간 지연되었다. 발리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고, 입국심사까지 약 2시간 반의 지루한 기다림. 느긋한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복잡한 입국심사 과정들.. 2022년 7월 당시 전 세계는 코로나와 원숭이 두창으로 난리였지만, 발리를 찾는 여행객이 여전히 정말 많았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2022년 7월의 발리공항, 도착비자와 입국심사를 받으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혹시나 싶어, 싱가포르에서 미리 예약해 둔 유심카드와 공항픽업 서비스 영업시간은 끝나가고 마음은 조급해져 간다. 더구나 공항 내 wifi까지 불통이다. 4시간의 기다림 끝에 만난 픽업기사 마데발리는 다행히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유심카드 담당자는 다음날 그랩을 통해 숙소까지 배달해 주었다. 여러모로 여행 초반부터 수월하지 않았으나, 다정하고 고마운 발리 현지인들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공항에서 대기하며 날려버렸다. 피곤에 찌든 몸을 씻기고 뉘어 푹 자고, 스미냑 근처 맛집에서 끼니를 해결했으니, 슬슬 스미냑 비치로 나가본다. 발리의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했는데,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석양마저도 좀 아쉬웠던 날이다.
신들의 나라, 발리.
별명처럼 여기저기 사원들이 즐비하다. 집집마다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매일 하루 세 번 신께 바치는 음식과 향을 피운다.
숙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찡코.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이 보이시나요? 발리에 도착해 스미냑에서 이틀 동안 푹 쉬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시간으로 정했다. 숙소 근처 비치와 식당가는 것 외엔 밀린 빨래도 하고, 푹 쉬며 사진정리와 다음 행선지인 오세아니아 여행일정을 준비했다. 그리고 우붓으로 넘어왔다. 우붓에서 첫 행선지는 폭포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발리폭포.
폭포라면 제주 한 달 살기 동안 여러 번 봤기에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풍부한 수량이며, 주변의 우거진 정글 같은 숲들과 자연이 만들어준 수영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신난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사진을 남겼다.
우붓 숙소는 우붓왕궁과 사라스와띠 사원 근처였는데, 마침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10일간 행사가 있는 명절이라서 밤새 북 치고 징 울리며 피리소리가 이어졌다. 매일 발리사람들의 행진행렬과 각종 공연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5일간 소음 때문에 밤마다 좀처럼 잠들기 힘들었다. 어디서나 잘 자는 아들을 제외하고, 우리 부부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잠을 뒤척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발리는 원숭이 사원이 많다.
원숭이를 좋아했던 꼬마는 원숭이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컸기에, 몽키포레스트에 방문했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라 머무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직접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아주 행복해했다.
우붓에 있는 아담한 크기의 pool bar. <Folk pool & gardens>
발리엔 유명한 비치클럽이 많지만, 비치가 없는 우붓에는 수영장이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제까지 머물렀던 모든 숙소에 멋진 수영장이 있어, 매일 오전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우붓 숙소의 수영장은 너무 협소해 일부러 방문했는데 아주 좋았다. 힙한 분위기와 깊이 1.2m의 대형 수영장으로 수영하기에도 음식을 즐기기에도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수영장 이용료 꼬마는 무료, 어른은 수영장 이용요금 75000 IDR. 두 사람이 넉넉하게 누울 수 있는 카바나 대여료가 250,000 IDR
예쁘게 치장한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은 셀카 찍느라 바쁜데, 물안경을 낀 채 수영에 몰입하는 우리 가족.
우리를 힘겹게 만들었던 명절 행사가 끝날까 싶지만, 여전히 이어진다. 새벽 5시까지 북소리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각종 공연과 행진도 많다. 덕분에 길거리 좌판도 많이 열리더라. 즉석에서 숯불로 구워주는 치킨/돼지 꼬치구이.. satay라 부르는데, 불향이 솔솔 번지며 정말 맛있다.
꼬치 10개에 20,000 IDR (한화 2천 원이 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다.)
인도네시아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주류가격이 비싸고, 판매시간도 엄격한 편이라 저 맛있는 사테와 맥주를 함께 즐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 나라의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우붓 하면 계단식 논과 발리 스윙을 빼놓을 수 없다. 초록초록한 배경을 벗 삼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혹자는 여기서 인생사진을 건져가더라. 아이가 있는 우리는 위험한 스윙대신 안전그네로 만족하기로.. 혹시 신혼여행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예쁜 롱 드레스는 필수.
서핑 천국 발리 해변 중에서 단 하나의 비치를 꼽으라고 한다면 짐바란 비치다.
해변의 모래도 곱고, 하얀 모래와 부서지는 파도가 멋진 곳이다. 파도가 아주 센 편이라, 꼬마들 물놀이하기엔 조금 버겁지만, 서핑하기엔 최상의 환경. 아마 부부만 왔었다면, 서핑스쿨에서 여정 내내 서핑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여정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을 바라보며, 짐바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9일 일정동안 유일하게 두 번 찾은 해변이며, 석양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발리를 여행하는 여성분들이라면 반드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서 인생사진을 찍기를 추천한다.
우붓 숙소 뒤편으로 논밭뷰를 바라보며 걷는 트래킹 코스가 있다. 할 일 없는 우리 가족은 우붓에 머무는 동안 두 번이나 이곳을 걸었다. 한국인들에겐 지방만 가도 널린 게 논밭이니 특별할 게 없지만, 외국인들에겐 얼마나 독특한 광경일까?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서양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더라. 이틀간 아시안은 거의 보지 못했다. 넓게 펼쳐진 논밭과 야자수와 바나나나무가 어우러져있는 모습이 나 또한 생경한 느낌이었다.
트래킹 코스 끝에 포토스폿이 있어 사진 한 장 남기려는데, 이탈리아 남자와 독일여자부부 가족을 만났다. 서로 가족사진을 남겨주고, 이런저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우리가 세계여행을 하고 있고 내년봄에 이탈리아와 독일을 방문할 계획이라 하니.. 놀라워하며 우리를 응원하며 현지인이 추천하는 비밀 여행지를 몇 곳 추천해 줬다. 이탈리아 남자분은 한국의 울산을 알고 있었고, 조선업 중개업을 하신다고.. 우리는 그곳에서 짧지만 인상적인 대화를 나눴고, 예쁜 딸과는 인스타그램 주소를 교환했다. 이렇게 독일 친구를 만들다니 ^^
내년 봄 유럽에서 시간이 된다면 이 가족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 그리하여 우리는 만났을까? 못 만났을까?
17년 전에도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 울루와뜨 절벽사원..
탁 트인 파란 바다와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으로,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단점이 있다면 울루와뜨 내 원숭이가 아주 많은데, 매우 공격적이므로 소지품 간수를 잘해야 한다.
귀걸이 선글라스를 모두 가방에 숨기고, 핸드폰은 줄에 매달아 옷 안쪽으로 매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번개처럼 다가와 핸드폰 쇠고리를 부서뜨리고 핸드폰을 훔쳐서 달아났다. 너무 놀란 꼬마는 대성통곡했고, 당황한 우리는 내내 어쩌면 좋나 발만 동동 굴렀다. 공항픽업부터 우리의 발이 되어준 Mr. 마데발리와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핸드폰을 되찾았다.
저 쇠고리를 손으로 부러뜨렸다. 괴력의 원숭이. 우리는 이때부터 원숭이가 두렵기 시작했다.
사진 한 장 겨우 남기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울루와뜨. 우야든동 울루와뜨 절벽사원은 정말 멋졌다.
발리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여행코스에 넣어도 좋을 곳이다. 다만, 원숭이 조심!!
좋아하는 줄리아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촬영지. 빠당빠당비치.
대체 이 영화를 몇 번 봤는지 모르겠다. 빠당빠당 비치를 찾기 전 다시 한번 영화를 복습하고 갔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한참 내려가다 보면 낙원 같은 느낌으로 나타나는 빠당빠당 비치. 깨끗한 해변과 너무도 아름다운 석양, 숲과 나무와 파란 바다가 어우러지는 발리 최고의 비치 중 하나.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우리는 해가 완전히 바닷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머물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컬러를 보며, 아이와 바위틈 사이에 숨어있는 거미불가사리를 관찰하며,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 그저 비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충만해졌다.
9일 발리 일정 중 마지막 숙소만큼은 신경 써서 예약했다. 5일간 소음에 시달렸던 우붓 숙소에서 벗어나, 송중기-송혜교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해진 발리 남부 멜라스티 해변의 조용한 풀빌라에 묵기로 했다. 아늑한 인테리어의 숙소는 완벽한 주방과 포레스트뷰의 pool까지 구비되어 너무너무 행복했던 첫 하루다.
로컬 과일가게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망고 8개를 야외 수영장 가든에 놔두고 후숙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망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담겨있던 비닐봉지만이 나를 반기더라. 그리고 수영장과 주변 이곳저곳에 잔뜩 싸놓은 똥무더기...
그렇다. 이곳은 원숭이가 득실거리는 숲에 있는 풀빌라였던 것이다. 악! 악! 악!
원숭이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 음식을 모두 숨겨둔 채 아이와 수영하는데......
왔다. 원숭이들이 대체 몇 마리가 몰려오는 건지. 족히 7마리의 원숭이가 우리 풀빌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간밤에 우리의 망고를 싹 훔쳐간 것도 모자라서.. 다른 음식이 있는지 우리 집을 또 털어먹으려고 하는 원숭이 도적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전날 공격적인 울루와뜨의 원숭이 때문에 너무나 놀랐던 꼬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가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면, 원숭이를 자극할 수밖에 없으므로......
으악!! 우리 풀빌라 수영장 난간에 매달려있는 원숭이도적단, 저 녀석말고도 족히 여섯마리가 더 달려오고 있다. 저렇게 예쁜 풀빌라를 두고 우리는 외출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원숭이 도적단이 숙소 내부로 들어오지 않도록 모든 방문과 베란다문을 꼭꼭 잠갔다. 나서기 전까지 몇 번이나 문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멜라스티 해변으로 향했다.
곱고 하얀 백사장과 에머럴드 빛 바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바다였다. 그래 내가 원하던 바다가 이거였어..
그럼 바다에나 올 것이지, 비싼 풀빌라는 왜 예약했을까?
남편과 눈이 마주치며, 폭소가 터진 우리는 대환장파티의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오전엔 잠잠하던 멜라스티 해변의 파도는 오후가 될수록 거세다. 꼬마가 수영하기엔 위험하다 판단 후 멜라스티 해변에서 핫하다는 비치클럽에 들렀다. 그런데, 이곳은 천국인가?
파란 하늘과 에머럴드색 바다와 야자수와 카바나.. 멋진 음악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이 있는 곳.
그렇게 밤이 늦도록 멜라스티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원숭이가 무서워서 풀빌라에 들어갈 수 없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결론은 아주 즐거웠던 날.
드디어 발리 9일 일정의 마지막 날.
더 이상의 아무런 계획도 없었던 터라, Mr. 마데발리에게 아무 곳에나 힐링할 수 있는 곳에 데려달라고 했다.
누사두아 지역의 워터밤을 보러 갔다. 탁 트인 바다와 검은색의 바위들을 보고 있자니, 여정 시작 전 한 달간의 제주살이가 떠오른다.
바람과 파도, 바위가 만나 또 하나의 장관을 만든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물방울과 끝없이 부서지는 하얗고 날카로운 파도의 끝자락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리 덥지도 않고, 상쾌했던 날씨까지 더해져 그간 원숭이 때문에 속상했던 발리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발리에서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찾아간 짐바란 비치.
꼬마와 함께 주웠던 하트모양 돌멩이들..
함께 길을 걷다가 예쁜 꽃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엄마 선물이에요. 하고 가져다주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짐바란의 석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공항으로 간다.
9일간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우리의 기사가 되어주었던 친절한 Mr. 마데발리와 함께 찰칵.
꼬마 바로는 마데삼촌과 정이 흠뻑 들어서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 케언즈에 도착해서도 삼촌이 보고 싶다며 한참을 울었다. 꼬마의 예쁜 마음이 이대로 잘 자라기를..
정말 쉽지 않았던 9일간의 발리 여정이었다.
어쩌면 온갖 고생과 기행을 다 겪었던 여행이었지만, 결국엔 남은 건 사람이더라. 감사한 인연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다음 여정을 기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