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동화 속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한 도시.고대 로마시대의 송수로와 유럽의 마지막 고딕양식 건축물 대성당, 월드디즈니 애니메니션 백설공주 성..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고비아. 늘 사진으로만 접하던 고대도시 세고비아로 간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가려면 버스, 기차,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LENFE를 기대하는 아이를 위해 기차를 탔다. 숙소인 스페인 광장에서 차마르틴역까지 지하철 이동 후, 기차 타고 귀오마르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 세고비아 구도심으로 가는 복잡한 루트다. 차마르틴에서 귀오마르까지 기차로 단 27분 만에 갈 수 있어 스페인 고속열차가 궁금하다면 LENFE를 추천하지만, 비용이 버스의 두 배다.
시간과 비용이 비효율적일지라도, 신난 아이를 위해 그깟 돈 몇 유로가 무슨 대수겠는가.
마드리드 1월 날씨는 온화하지만 세고비아는 고도가 높아 춥다는 얘기를 듣고 중무장 후 출발했다.
유럽 도시 간 이동 시 기차를 자주 탔고, 예매는 Omio 어플을 이용했다.
** 마드리드> 세고비아 일반석 기준 인 당 편도 11유로 내외
7년 만에 타보는 LENFE 고속열차 Avant 여전히 쾌적하고 좋다. 귀오마르역에서 구도심으로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버스요금 2유로는 기사님께 현금으로 낼 수 있다. 보통 무료인 5살 어린이도 요금을 내야 한다. 15분간 달리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로마시대에 지어졌다는 '대수로교'가 펼쳐진다. 엄청난 규모에 몇 년 전까지 수로 (물이 지나는 길)를 사용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니, 고대 로마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세고비아는 중세 동화 속 마을을 옮겨놓은 것 같은 멋스러운 정취가 있는 도시다.
딱히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골목들..
세고비아 골목을 정처 없이 걷는다. 특유의 색감이 느껴지는 골목을 걷다가 파란 대문의 예쁜 서점을 만나기고, 조명장식으로 꾸며진 거리들을 걷는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흐린 하늘과 고대도시가 썩 닮아 보인다.
에스파냐 후기 1525~1527년에 지어진 세고비아 대성당은 세련된 모양 때문에 '대성당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대성당 주변을 걷기만 해도 운치가 넘친다. 골목골목 세고비아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성당 구경이 싫다고 필사적으로 외치는 아이를 위해 대성당 구경은 미루고, 월트디즈니 백설공주 성의 모티브 '알카사르'로 이동한다.
알카사르는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세고비아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 한 대형 철문을 지나면, 아름다운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출처 : 월트디즈니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세고비아 알카사르는 월트디즈니의 '백설공주 성'으로 유명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전략 상 요새가 있던 곳이며 16~18세기에는 감옥으로, 이후 기사 양성하는 장소로 쓰였다. 18세기 이후 기사들에게 대포 사용법을 가르쳤던 곳이라 당시 사용했던 무기, 갑옷, 가구를 볼 수 있다. 멋진 벽화와 가구들, 당시 사용했던 그림과 카펫, 커튼까지 500년 이상 된 물건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1862년 화재로 소실된 것은 복원했고,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부는 알람브라 궁전이나 스페인 다른 궁전에서 가져왔다. 스페인 제국 전성기 펠리페 2세 시절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결혼식 당시 사용했던 벽장식은 물론이고, 금으로 장식된 벽화와 멋진 그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좋아하는 루벤스와 벨라스케즈 등 유명 스페인 화가의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알카사르 실내에서도 세고비아의 멋진 뷰를 조망할 수 있는 방이 있어 한참을 머무르며 감상했다.
스페인 최고 전성기 시절에 부임한 펠리페 2세의 초상화
루벤스와 벨라스케스 등 유명화가들의 그림과 벽화
18세기 사용했던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 누구든 흥미롭게 구경할 것이다. 5살 꼬마도 즐겁다.
알카사르 루프탑에서 본 세고비아 전경, 맞은편에는 기품 있는 대성당이 보인다.
슬슬 한계에 다다른 아들이 바닥에 눕고 있다.
재미없어! 엄마. 다른 데로 가자!!
세고비아는 새끼 돼지 통 바비큐요리가 유명하다.
구글맵에서 평점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Bar Restaurant El Sitio>
새끼돼지 바베큐 전문점
날씨가 추워 따뜻한 물을 부탁하자, 뜨거운 주전자로 계속 가져다준다. 웨이터들이 매우 친절하다. 식전빵마저 따뜻하니 사소한 부분에 감동한다. 스페인 스파클링와인 'Cava'도 하프바틀로 주문했다. 청량한 온도를 위해 아이스버킷도 함께 제공된다. 새우 좋아하는 정우를 위해 그릴드 쉬림프, 바칼라(대구) 스테이크와 새끼돼지 통 바비큐 구이를 주문했다. 큼지막한 바비큐 두 조각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돼지고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영계 삼계탕 속 부드러운 다릿살을 먹는 느낌이랄까. 통돼지의 꼬리와 발톱까지 그대로 살려 통째로 구워냈다. 짭짤하고 촉촉한 소스가 곁들여져 환상적인 풍미를 낸다. 갓 튀겨낸 감자튀김과 함께 즐기니 훌륭한 식사다.
(남편의 일기에 세고비아 점심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감상을 남겼다.)
세고비아의 점심... 환상적인 점심... 다시 먹고 싶다. Cochinillo Asado의 정수를 보았다. 바삭한 아기돼지 껍질에 촉촉하고 야들야들 쫄깃한 돼지살. 아기 돼지를 먹는다는 죄책감을 잊었다. 그래도 미안하다. 그래도 맛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대성당계의 귀부인 세고비아 대성당으로 향한다. 위용 넘치는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나 17세기 이전의 가톨릭 관련 명화들을 볼 수 있는 작은 미술관까지 관람할 수 있으니, 가톨릭 신자라면 내부 입장을 추천한다.
좌 : Sagrada Familia 라는 제목의 그림
세고비아 대성당을 보고 나와서 그저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발길이 닿는 데로 정처 없이 걷는다. 고즈넉한 저녁의 세고비아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다. 아름다운 세고비아 구 도심 위로 붉게 물드는 선셋을 바라보며 사유에 잠겼다. 흐린 날씨임에도 아름다웠던 날이다. 그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세고비아 대수로교의 조명이 들어올 때쯤에서야 마드리드행 기차를 탔다. 오늘도 이만보를 걸으며, 열심히 돌아다녔던 하루다.
늘 미디어로만 접하던 곳들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며, 그곳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