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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화 Feb 05. 2023

엄마(2)

마음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봐요, 엄마.

엄마는 작년 8월 항암치료를 그만두셨다. 1년 가까이 유지하던 표적항암제 단독요법에서 항암제가 추가된 레지멘을 네 번 정도하고 나서였다.


바뀐 레지멘 첫 사이클을 마치고 10일 만에 엄마 머리카락의 80퍼센트 정도가 우수수 빠졌다. 엄마 뒤에 있으면 흘러내리듯 빠지는 머리카락이 엄마 어깨로 바닥으로 수북이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피가 훤히 드러나도록 심해지는 탈모와 정상적인 식사가 도저히 불가능한 오심과 구토, 몇 걸음만 걸어도 어지러운 컨디션과 점막이라는 점막은 다 헐어서 음식을 먹고 삼키는 일이 어려운 상태가 겨우겨우 가라앉을라치면 다음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 날이 코 앞에 와있었다.


엄마는 작년 8월 어느 날 내게 말씀하셨다.

"나 이제 항암 안 하려고 한다."


엄마는 표적항암제만으로도 1년 가까이 잘 지내오셨는데 동생 일 이후 마음의 면역력이 무너지면서 몸도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변경된 항암 레지멘은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엄마를 무너지게 했다. 엄마는 이렇게 항암치료를 받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다. 이 결정은 포기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내리는 결정이라고. 엄마를 믿고 응원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결정에 그 어떤 이견도 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자연치유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엄마를 그저 응원하고 티끌만큼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엄마를 향해 보태고 싶지 않았다. 더 먹거리에 신경 쓰고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의 진단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지지적으로 뒤에서 지켜봐 주시는 종양내과 교수님은 엄마의 결정을 지지해 주시면서 2개월마다 검사를 하면서 지내자고 하셨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엄마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는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서 깊어지는 우울감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가면으로 덮어두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러고 있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가면을 쓰고 우리의 역할을 겨우겨우 해내가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안다. 그것은 살아야겠다는 다짐에서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떠밀려 흘러가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나는 매일 운다. 마음속으로 나는 매일 운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어도 내 속에서는 펑펑 울고 있는 진짜 내가 있다.


늘 웃으면서 씩씩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그리고 매일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지난 월요일 오전 내내 인터넷 검색창에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입력했다.


누구와 있어도 어디에 있어도 울고 있는 진짜 나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씩씩하게 운동하고 웃으면서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엄마의 속에 있는 진짜 엄마를 돌보지 않는 이상 마음속에서 곪고 있는 이 슬픔과 우울이 엄마를 삼켜버리고 나를 삼켜버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울고 있는 나를 달래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세상에 소환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그리고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을 고민했다. 엄마에게 뭐라고 화제를 꺼내야 할지.

나도 나지만 집에서 누구 한 명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혼자 지내는 엄마에게 '심리상담'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그러다 어제 아침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심리상담 좀 받아 볼래요? 우리 지금 가면 쓰고 살잖아."


좀 전에 엄마는 얼굴이었는데 말이 끝나고 나니 엄마는 오열하고 계셨다.

방금 웃다가도 눈물이 난다. 엄마에게 다 이야기했다. 나는 일기도 쓰고 글도 쓴다고. 그런데 엄마는 그런 감정 해소 통로가 하나도 없지 않냐고. 나도 치료받을 건데 엄마도 받자고.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지금 예약할 거라고. 우리 살려면 우리 마음부터 돌봐야 한다고.


엄마는 나부터 치료받으라고 하셨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겠지. 나도 받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바로 심리상담 예약을 했다.

저녁에 상담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엄마랑 상담예약과 관련된 통화도 했다. 상담 예약금도 입금하고 일정도 잡았다.

마음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동생 사망 후 방문한 경찰서에서 형사가 물었다.


"동생이 이전에도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네... 2015년에요."


한 번 자살시도를 한 사람은 다시 시도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형사가 다시 질문했다.


"동생이 우울증을 진단받은 적이 있습니까?"


동생은 우울증을 진단받은 적이 없다. 진단받으러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으니.


"아니요.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요."


라고 대답하고 나는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까불고 자신만만하고 순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던 동생의 속마음을 오랫동안 놓쳤다. 보이는 대로 믿었다. 2015년 한 번 죽으려고 했던 아이를 말렸던 날 이후 내가 알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던 동생의 가면을 믿었다.


작년 4월 떠나기 전 날 저녁 통화에서도 '괜찮다, 잘 지낸다'던 말을 그래도 믿어버렸다. 그걸 믿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놓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쩌면 너는 누군가 네 마음속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너만 아는 모습을 누군가 알아보고 손잡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덜 지쳤을까.


또 부질없는 질문들이 쌓인다.


동생을 돌보지 못했던 수많은 날들을 이제 와서 뒤돌아보면서 지금 내 곁에서 혹시나 가면을 쓰고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나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꽉 껴안아준다. 그래 울어. 마음껏 울어. 슬프면 울어. 괜찮아질 때까지 울어. 이 울음이 언제 끝날런지는 모르겠지만 슬픔에 미안함에 울고 있는 울음을 다 울고 나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쓰지 않고 내 진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지. 그때까지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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