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인생에도 웃음이 있다.
저런 곳에도 과연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사는 낙이라는 게 있을까 싶은 그런 곳에도 희망이 있고 낙도 있고 웃음도 있구나.
지난주 엄마를 모시고 춘천에 다녀왔다. 춘천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 열리는 동생의 상속재산 파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은 개인파산을 준비한다고 했다. 신용불량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시간이 가고 또 가면 개인파산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했다. 이미 엄마에게 들어서 동생이 개인파산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동생이 떠나고 남긴 채무를 정리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되고 나서야 인터넷 검색창에 '개인 파산'을 두드려봤고,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게 되었다. 동생의 개인파산은 그때 내게 '남의 일'이었다는 걸 알았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상속재산 파산 준비를 하면서 동생이 몰던 화물차 지입회사와 차량 캐피털 회사 담당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받았다. 엄마가 상속인이 많은 채무 관련 독촉장들이 집으로 날아왔다. 한정승인을 준비하던 첫 단계에서부터 변호사가 채무 관련 독촉장이 오더라도 불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었고, 일이 이렇게 저렇게 진행될 거라고 충분한 정보를 주었음에도 막상 독촉장이 밀려오고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 상황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너도 이런 압박감을 느꼈겠지. 개인파산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이런 압박감을 견디고 버티고 뚫고 나가야 하는 거였구나.
우리가 안내받은 오전 11시 10분 OO호 법정 출석을 위해 30분 일찍 도착해서 법정이 있는 층, 복도, 아주 좁은 복도로 들어가니 대략 봐도 3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뭐지. 우리 앞 사건 관련된 사람들인가. 이 사람들 가고 나면 우리가 들어가는 건가.
몰랐다. 파산 관련 사건들 20-30건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선고한다는 걸. 복도 앞에서 큰 목소리로 안내하는 직원의 말을 듣고 나서 알았다. 그 복도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엄마와 나와 같이 오전 11시 10분 파산 선고 기일 출석을 위해 모여있었다는 것을.
법정 입구 옆 게시판에 붙어있는 사건 안내문에는 시간마다 배정된 파산선고 사건 번호와 해당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대부분은 그냥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고, 간혹 가다 이름 앞에 '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우리처럼 사망한 가족의 상속재산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들이다.
30분 정도 기다리면서 그 복도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동안 '개인 파산'이라는 단어에게 가졌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기에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11시 10분이 되고 그 시각 해당 사건인들이 법정으로 들어가고 판사가 이름을 전부 호명하면서 출석 여부를 확인한 후 파산 선고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짧았다. 판사가 '파산 선고'를 하자 파산이 된 거라고 했다.
판사가 법정을 떠나고 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 '우리의' 파산관재인이 자기소개를 하고, 앞으로 진행 일정에 대해 설명해준다고 했다. 그는 그에 앞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이제 파산선고받으셨습니다. 좋으십니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감출 수 없는 웃음. 안도의 웃음. 기다렸던 일이 드디어 성사되고 나서의 후련함에서 비롯되는 웃음소리였다. 신용불량자에서 더 나아가 이제 불량할 신용조차 없는 파산자가 된 거라고 별로 좋아할 일 아니라는 파산관재인의 말이 뒤따랐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아까 복도에서 내가 긴가민가했던 그 분위기가 맞았다. 복도에서는 그래도 감추고 있었지만 파산선고를 받고 나서 이제는 감출 수 없는 것.
파산했는데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짧았지만 채무로 인한 압박감이 뭔지 느껴봤기에 그 후련함이 이해됐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엄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엄마도 그랬을 거다. 그 웃음소리가 부러웠다. 그 웃음소리에서 느껴지는 후련함이 부러웠다. 이름 앞에 '망'이 붙지 않고 그냥 니 이름 석자로 이곳에 앉아있었다면 너도 웃을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각자의 인생으로 사연으로 어쩌다 보니 그곳까지 왔겠구나 싶었다. 개인 파산하려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 잘 살아보려고 각자의 방식으로 애썼을 텐데. 잘 살아보려고 희망차게 내디딘 발걸음이었는데 갈수록 길이 미끄럽고 헛디디고 넘어지고 때로는 누군가 발을 걸고 주저앉게 되고 자꾸 자빠지고... 그러다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 같으면 어떨 때는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 그래도 버티고 버티다가 이렇게 파산 선고받으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왔구나. 그 웃음의 의미가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졌다. 빚을 탕감받고 언젠가 신용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와 안도감. 그곳에서 피어나는 그 긍정의 기운을 느끼면서 동생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꾸만 생각하게 됐다.
한 달 전쯤, 어느 블로그에서 나이 40이 가까워지도록 자기 소유의 집, 자동차, 어느 수준의 재산이 없는 인생은 '망한' 인생이라는 글을 봤다. 날카로운 사포 위에서 온 마음이 갈린 느낌이었다. '망한'이라고 작은따옴표가 되어있었는데 그것은 글쓴이가 그 글의 타깃층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강조 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또는 세상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세상을 사는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 사람한테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고 빚만 가득하고 파산자라면 그게 '망한'게 아니고 뭘까.
동생이 개인파산하려 한다고 내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어서 제로로 만들어서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나는 누나가 돼서는 동생한테 네 상황이 '제로'보다도 못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어서 제로로 만들라니. 너 지금 한참 마이너스됐으니 제로가 되자는 소리를 했다. 내 마음이 사포로 갈린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내가 내 동생의 인생을 '망한' 인생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적나라하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너 네 동생 망했다고 생각했잖아.'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지언데 동생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고자 했던 길과 너무 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길을 완전히 잃은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내게 동생의 일은 완전히 '남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생 동생에게 미안하겠지만 동생이 망했다고 생각한 건 결코 내가 날 용서할 수 없을 거다.
버틸 힘만 있다면 그래서 버티기만 한다면 망하지 않는다는 걸 동생이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힘을 낼 수 있도록 옆에 있어줬어야 하는데 너무 혼자 있게 내버려 뒀다.
누가 망했는데? 뭐가 망했는데? 그런 게 어딨는데?
그날 그 복도에서 파산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파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뒤의 절차를 위해 파산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은행, 보험사, 구청, 주민센터를 돌아다니다 보니 세상이 마치 '파산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파산하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어도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기도 하다. '파산의 세계' 속에 들어와서 보니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희망은 기대를 낳고 그건 감출 수 없는 웃음을 짓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갈 힘이 있다는 뜻이다. 바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망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로보다도 못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응하고 희망을 발견하고 웃을 수 있는 삶. 그날 그 복도와 법정 안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누가 봐도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 웃을 일 없어 보이는데 장 봐서 삼시세끼 밥 해 먹고, 재벌집 막내아들 시간 맞춰서 본방송으로 챙겨보고, 아이랑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커피도 뻥튀기도 사 먹고 그러는 나처럼.
돌아와서 나에게 계속 질문하고 있다.
망한다는 게 뭔데.
사람이 그 나이 즈음에 가져야 할 재산이 없으면, 억대의 빚을 떠안으면 망한 건가? 잘 나가다가 일이 잘 안 풀려서 꼬이고 주저앉게 되면 그게 망한 건가? 망한 것 같아 보이는데 희망이 있어 보이고 웃고 있는 사람은 뭔데. 망했다고 하기엔 좀 이른 거 아닌가. 아니 근데 망한 게 뭔데. 흔히 '죽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살아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은 그땐 망한 건가. 그건 좀 망한 것 같기도 하네. 회복할 길이 없으니까.
살아있다면 버틸 힘이 남아있다면, 심지어 웃을 수 있다면 '망했다'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상이 뭐라고 하건, 누가 나를 망했다고 하거나 말거나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동생을 생각하면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도 '살아만 있다면'이라는 말도 해당이 되지 않아서 동생을, 나와 엄마를 위로할 문장도 찾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 '망했다'라고 여겼을지 모르는, 더는 일어설 힘이 남아있지 않고 이젠 너무 지쳤다고, 모든 걸 포기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을 테니 생전에 그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떠나버린 넋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야 위로가 되고 용기가 날까.
동생이 떠나고 나서 곳곳에 남은 흔적들을 살피고 정리하면서, 잘 살아보려고 참 많이 애쓰면서 살아왔던 부지런한 발자취들을 더듬어보고, 동생이 남기고 간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고 모으면서 동생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부지런했던 너의 모든 발자취들을 잘 마무리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부질없지만 가끔은 살아서 결국 버텨낸 동생이 그날 법정에 앉아서 후련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파산 선고를 받는 동생의 모습을 이렇게나 간절하게 바라게 될 줄은 몰랐다. 너도 몰랐을 거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희망을 담고 있는 일인지. 미안해. 네가 있을 때 그러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