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가 스스로를 세상과 고립시키고 14년 동안 '영혼을 끌어모아서' 집필했다는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여주 후지이 이즈키의 모습을 그려서 넣어둔 도서카드가 발견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인연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여주에게 와닿는다. 그때 처음 본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목 자체가 영화 <러브레터>가 전하는 메시지를 관통하고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그것은 오로지 영화에서 활용된 '소품'으로서의 너무나 적절한 역할 때문이었다.
영화를 처음 본 것이 1995년이었고 지금이 2022년이니 27년의 세월 동안 나는 그 책을 단 한 번도 읽고 싶다는 생각, 읽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는 어디에나 얼마 전 번역본이 완간된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이 함께 하는 중이다.
사실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7년이면 뭐 인생에서 결코 읽지 않을 책들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을 법한 책을 읽게 되는 정도의 변화도 있을 법한 세월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책일까?
27년의 세월 동안 이 책은 작가들도 읽기 어려운 책으로 널리 유명했다.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은 한번 시작된 문장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읽다 보면 내가 뭘 읽고 있는지 문장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는, 그런 문장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이어진다는 아주 길고 긴 문장이다. 알고 있는 것은 이름뿐인데 들리는 소문이 쉽지 않다고 하면 거기에서 더 알고 싶어지지 않아 질뿐더러 편견까지 생기기 마련인데. 이 책이 딱 그랬다.
그런데도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기 때문인 걸까. 올봄부터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이 내 눈에 부쩍 자주 띄었다. 올해 처음 출판사 북클럽에 두 군데나 가입했는데 그중 하나인 '민음사'에서 올해 북클럽 에디션 도서 6권 중에 '마르셀 프루스트 단편선'이 있었다. 북클럽 에디션 도서를 3권이나 선택할 수 있는데도 프루스트의 책을 고르지 않았다. 이미 편견이 가득했기에 제일 처음 걸러냈다. 그런데 북클럽 회원들의 후기를 보니 '의외로' 단편선이 재미있다는 글들이 꽤나 보였다. 역시나 뭐든지 직접 알고 봐야 하는 것일까. 내가 직접 접해보지 않은 사람도, 책도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되나 보다.
게다가 올해는 내게 공간이 절실했다. 현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칠 수 있는 공간. 평소 책을 좋아하는 내게 책은, 그것도 소설은 현실을 잠시 잊고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북클럽을 두 개나 가입하고, 문예지도 구독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 다음에 갈아탈 책을 끝없이 사들였다. 끝도 없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며 배고픈 허기를 달래듯 폭독(爆讀)의 욕구를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내용은 쉽게 읽히지 않으면 좋겠고, 등장인물도 많고 서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 나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준으로 골랐다. 그것은 밧줄을 고르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잡고 올라올 수 있는, 혹은 곁에 언제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 놓고 저 멀리까지 떠내려가 볼 수 있는 아주 굵고 강한 밧줄.
그래서 처음 고른 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쉽게 읽히지 않는, 등장인물도 많고 한 번 읽는 걸로는 무슨 내용인지 잘 알지 못할 쉽게 끊어지지 않을 그런 밧줄 느낌이 났다. 그런데 세 권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니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네가 이걸 몇 년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알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냐'는 내적 외침을 무시하고 더 긴 시리즈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고른 것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다. 이건 네 권짜리였다. 등장인물 많고 한 번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를 거고 쉽게 읽히지 않을 건 같은데 한 권이 더 많다. 네 권짜리도 뭔가 아쉬운데 싶은 마음에 한국 대하소설로 눈을 돌렸다. 후보는 최명희 <혼불>, 조정래 <아리랑>이 있었다. 그래 이 정도 느낌이어야 내가 고르려는 밧줄의 기준에 부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한 뉴스를 봤다.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완간되었다는, '프루스트 전문가'로 알려진 김희영 교수가 2012년부터 장장 10년에 걸쳐 '총 13권의 책으로 완역했다는 것과 더불어 프루스트는 14년에 걸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다는, 그리고 올해가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라는 뉴스였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다. 이 책이 바로 내가 찾는 그 '밧줄'이라는 강렬한 느낌이 왔다.
저자와 번역자가 '인생'을 걸고 창조해낸 글이 내게로 왔다. 그들의 '피, 땀, 눈물'이 담긴 글이 이제 나에게로 왔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도 전해지는 글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누군가의 인생과 함께 하며 창조된 글은 읽혀야 하고, 나는 그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 구입하면 끝까지 가보는 거야.'
'그래, 가보자고.'
깊은 골짜기의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내가 붙들고 있을 무언가가 생겼다.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만약 나도 전부를 읽고 나면(책의 의미도 알게 된다면) 내게도 '인생'의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기겠구나. 그래서 천천히 읽으면서 가보자는 생각으로 1권을 구입했다.
1권만 구입했다. 전권 세트가 예쁘게 나와있지만 내가 1권을 얼마나 오랫동안 읽게 될는지도 모르고. 책장에 꽂힌 나머지 12권을 바라보면서 내가 뭘 읽는지도 모르면서 조바심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 손에 들린 이 1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책인 것처럼 여기기로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대체'가 아니라 '어느새' 맞이한 끝으로 말미암아 2권을 구입하고 싶었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담은 책을 결제할 때 느끼는 기쁨을 12번이나 더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공간'도 되고, '밧줄'도 되고, '선물'도 되면서 '도전'도 되겠다. 장편소설 1권 겨우겨우 읽어내면서 13권짜리 대하소설을 펼쳐 들었으니. 하지만 저자가 14년 걸렸고 번역자가 10년 걸렸다고 했다. 그러면 읽는 것도 거기에 걸맞아야 하지 않을까.
프루스트의 동생이 한 말로 전해지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기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라고 말이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의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러고 보면 제대로 기회를 얻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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