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앱에 들어와 봅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뭔가를 하기 위한 에너지를 아무리 쥐어짜 내려고 해도 쉽지 않았거든요.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 뭔가를 입에 넣고 일터에 나가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 재우고 같이 잠드는 나날을 반복했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해야만 하는 일에 에너지를 우선 써야 하니
그 외의 움직임에는 마음이 도통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 뭔가가 뭔지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뭔가를 하려고 애써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어서
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으로 쥐고 있던 것들을 놔버리기고 했어요.
저는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브런치가 이번 달 들어서 생각이 났어요.
요즘 읽고 있는 책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동생이 떠나고 나서 마구 사서 책장에 모아두던 책들에는
소설도 있고, 자기 계발, 역사, 에세이, 미술, 우주 등 주제가 다양한데요.
그중에는 자살, 자살생존자, 사별, 상실과 관련된 책들도 있었어요.
그 책들은 책장 제일 높은 칸, 제일 구석에다가 책 제목이 보이지 않게 꽂아두고 있습니다.
동생이 떠난 해의 어느 날, <너의 안부>라는 책을 펼쳐 들었다가 처음 몇 장을 읽고 덮어버렸습니다.
향년 5세 아들을 애도하며 쓴 엄마의 글인데요.
그때의 제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1월까지 <너의 안부>와 다른 몇 권의 책이 꽂혀있는 책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살아내며 흘러오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 1위 국가라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로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있었고 계속 생겨나는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고 싶어 졌습니다.
어쩌면 그건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튼 저의 다짐 때문 일 겁니다.
그 모든 일들이 지나고 지금까지도 저는 살아있으니까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그 책장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한 권 한 권 읽고 있는 중입니다.
몇 장 훑어보고 덮어버렸던 <너의 안부>를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펼친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아이를 보낸 엄마의 자리에서 우리 엄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사람의 자리에서 저,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너의 안부>를 읽기 시작할 때 중간에 책장을 덮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맞이한 상황을 제대로 바라봐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요.
살아나가려면 제대로 마주하고 겪을 것들을 모두 겪어야 한다고.
이건 끝이 나지 않는 것이니까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내니 쥐어짜려고 해도 없던 에너지가 몸속에서 아주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너의 안부>를 읽은 후 저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사람들, '자살 생존자'라고 불린다고 해요.
그분들이 쓰신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문장 하나하나가
지난 시간 동안 제 안에서 고이고 엉켜서 손댈 수 없었던 마음들을
하나하나 비추어주고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게 위로인 거겠죠.
그분들의 글을 읽고 저의 이야기를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가장 우선은 저를 위한 것이고요.
그다음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라도 마음을 비추고 어루만져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