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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Oct 17. 2017

꿀벌축구 보러가다

도르트문트 여행기(?)

연고전 5대빵 이후 매우 흥분한 이 군과의 카톡. ㄹ

여행의 시작 혹은 발단은 이 카톡에서 시작됐다. 랄랄라 시스붐바 축구부 활동을 같이 했던 이 군은 연고전 축구중계를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군입대를 하는 줄 알았으나 입대 이전 유럽 여행을 하러 온다는 솔깃한 이야기를 던졌다.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서로 좋아하는 형태,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둘다 축구를 서로 너무 좋아하는 걸 알기에 저때도 살짝 직감했었다. '어딘진 모르겠지만 경기를 보러가긴 하겠군'


근데 솔직히 말하면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더 컸다. 이 군은 이 군 나름대로 여행 스케줄이 있을 것이고 내가 있는 함부르크는 축구가 노잼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노잼이 아니라 너무 노잼이다. 한 때는 챔스를 호령하던 눈부신 과거가 있는 팀이지만 지금은 그냥 너무 노잼이다. 강등을 겨우겨우 면하고 있는 처지의 함부르크 축구를 보자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됐다. (그 재미없는 축구를 함께 봐준 고등학교 친구 조 군이 참 고맙다)


아무튼 그렇게 '그래 볼 수 있으면 보자'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별 생각없이 일하고, 집에 와서 쉬고 하면서 평소대로 지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당돌한 이 군의 제안

근데 이 놈이 훅 들어왔다. 아, 이 군이 훅 들어왔다. 첫 연락 때 나는 경기 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는데, 이 군의 제안에서 '도르트문트'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도르트문트... 돌문... 돌문이라니...' 사실 독일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축구 직관이었다. 한국에서 유럽의 4대 리그(EPL,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의 경기를 매주까진 아니더라도 꽤나 자주 보러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꽤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여기서 살아보니 그 또한 굉장한 노력(왔다갔다하며 쌓이는 피곤함과 여행 일정을 짜야하는 귀찮음)을 해야하다보니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적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그 한 번도 그나마 함부르크 (HSV) 경기를 보러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 혹은 다른 국가로 직관을 보러 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도르트문트는 뭔가 가보고 싶었다. 위닝이나 피파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도르트문트의 홈 경기장은 제법 상징적이다. 또한 그들의 서포터들의 응원 또한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구단이기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홈 구장이기도 하다.


경기를 보는 중간 중간 너무 위닝에 나오는 화면 같았다.

그의 제안을 받고 조금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보기로 했던 이 군과 나는, 드레스덴의 UN 산하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박 양(前 랄랄라 시스붐바 아이스하키부 부장, 콥)에게 컨택을 해서 3인 축구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티켓 검색을 하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좌절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표를 구매해본 경험이 거의 다였던 우리는 도르트문트 공식 홈페이지에 '0 Vacant Seat' 이라는 텍스트를 경기장 전 구역에서 볼 수 있었고 그 순간 모두 벙쪘었다. 아무리 독일이 축구에 미친 나라라고 하지만 경기장 정원이 8만명인데 자리가 하나도 없나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우울해졌다. 그랬다. (독일 분데스리가 전 구단이 이렇진 않다고 알고 있다. 함부르크 경기도 비교적 쉽게 표를 구매했다.) 도르트문트 티켓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 다음 차선책으로 찾아본 것이 'viagogo'라는 사이트다. 이 곳은 해당 구단의 시즌권을 보유한 사람이나, 일반 티켓을 보유한 사람이 경기일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정 값을 받고 표를 양도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쉽게 말하면 경기장 표 중고나라다. 이 곳에는 표가 꽤 있었다. 근데 좀.. 꽤 많이? 비싸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표를 구매하면 가격대의 범위가 최대 79유로까지라고 나와있는데 이 곳은 가격의 상한선이 없어보였다. 가격대에 부담을 느꼈던 우리는 순간 우유부단해질 수밖에 없었고 우선 각자 기차표만 끊어놓기로 얘기를 하고 여행일까지 시간이 지났다. 

빅 게임의 경우 가격대가 상당하다. 11월에 있는 돌문 vs 뮌헨의 경기장 티켓은 가장 싼 가격이 200유로다.


새벽 기차를 타고 9시 반쯤 도착한 나는 도르트문트에서 축구를 안 보면 할 게 없다라는 걸 직감했다. 도시의 중앙역을 보면 대개 그 사이즈가 나오는데 도르트문트의 중앙역은 한국의 상봉 역과 느낌이 비슷했다. 쉽게 말하면 축구 말고 아무것도 할게 없어보였다. 축구말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축구마저 못 보면 너무 우울해지겠다 생각이 든 나는 중앙역 옆의 맥도날드에서 티켓 충동구매를 감행했다. 인당 87유로..여도 비싼데 viagogo의 독특한 판매방식 때문에 30유로의 fee가 더 붙어서 약 120유로에 표를 샀다. (이 표가 어떤 표였는지는 더 뒤에 얘기하겠다...) viagogo의 판매방식은 처음 경험해본 나로선 너무 신기했다. 표를 구매하자 메일이 왔고 이 메일에는 지정된 장소, 시간이 기재되어 있었다. 속으로 계속 '사기면 어떡하지.. 갔는데 칼빵 맞고 돈은 돈대로 잃고 경기 못 보는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막상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택시에서 수도 없이 내렸다. 찾아간 곳은 대학교 강의실 같은 공간이었고 그 안에는 3명의 직원들이 이름과 ID를 확인하고 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표를 손에 들고 나서야 안도감과 함께 경기를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봐도 눈물이 난다..... 표가 참 이쁘다... 고생해서 그런지..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입장을 했는데 우리가 선택한 좌석은 원정팀 서포터즈 석이었다. 사실 유럽의 훌리건들을 매체로 접해보기만 했지 실제로 어느정도지라는 생각을 평소에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내 바로 옆, 앞, 뒤에 있었다. 라이프치히 원정팬들의 열기(좋게 말하면 열기, 안좋게 말하면 광기)는 감당이 안될 정도였는데, 1-1을 만드는 동점골이 들어갔을 때 들고 있는 500ml 플라스틱 맥주잔을 그냥 앞에 던져버리면서 좋아했다. 그 덕에 나와 박 양은 맥주로 머리결을 강화하는데 성공했고 이 군은 양 옆의 거대한 게르만인들에게 이리 저리 치이면서 경기를 관람하게 됐다. 이 군은 심지어 경기전 팬샵에서 오바메양의 유니폼을 마킹해서 입고 들어왔는데 겉에 검은 맨투맨을 입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경기장에서 살아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득점 이후 오바메양 콜을 하는 장내 아나운서와 홈팬들


사실 경기장과 거의 비슷한 높이에서 경기를 봤기 때문에 경기 전체를 온전하게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잃는게 있으면 또 얻는게 있다. 코너 플래그 근처로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다가올 때 중계화면에서나 보던 그들의 생김새를 너무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8만명의 관중이 내는 야유, 응원 이 모든 것들이 축구짬찌인 나를 계속해서 소름돋게 만들었고 이 정도의 분위기라면 정말 매 라운드마다 찾아오고 싶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경기장 가는 길. 부부, 친구, 가족 등 함께 하는 형태는 너무 다양하다.

우리나라 K리그는 관중들이 오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반해 이 곳은 팬이 아닌 사람도 팬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 그리고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아주 옛날 버전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향하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축구 변방국 출신인 내게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면서까지 이런 문화를 자연스레 체득했을 것이다. 전체 인구가 60만명인 작은 도시에서 8만명의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힘을 갖추는 데까지는 그들도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이 쌓아온 경험과 시간은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기에 부러움과 동시에 한 편으론 조금 슬프기도 했다. 부지런히 세계 수준에 따라가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형국에 각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2년 이후로 조금씩 곪아왔던 것들이 15년이 지난 지금에서 고름이 되어 터져나오는 듯하다. 


아무튼 여행기를 쓰기로 했으니 너무 무거운 주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련다.(말할수록 슬퍼진다 ㅠㅠ) 도르트문트에 가기로 했을 때 네이버에 '도르트문트 여행' 이라고 검색해봤는데 글이 거의 나오질 않았다.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는 건 도르트문트 경기장과 독일 축구 박물관 정도.. 도르트문트를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르트문트 경기를 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걸 추천한다. 이상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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