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 정국을 맞이하면서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금기어로 자리잡았다. 정치권은 유세 전략을 구체화해야 하므로 소구 집단을 명확히 분류한다. 이전엔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지역 구분에 따라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눴고, 이들에 대해 명확히 상반되는 전략을 이용했다. 이제 정치권의 전장은 젠더 이슈로 전이됐다. 유권자 집단이 페미니즘에 동의하는지 여부로 나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의 경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안티 페미니스트들을 배척하게 되는 흑백 논리 속에서 대선 후보들이 페미니즘을 내세우길 꺼려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의 개론서와도 같은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전국민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페미니즘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차별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드물리라 생각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페미니스트다. 다만 페미니즘 안에서도 성평등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현재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자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안티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해서 극단적이라 생각하고, 페미니스트는 안티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의 내용을 몰라서 무지하다고 혀를 찬다. 조금 아쉬운 점은 안티 페미니스트 못지 않게 페미니스트 또한 상대를 배척하는 언어를 많이 사용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공부하세요"를 말하기 전에 문제집을 쥐어줄 필요가 있다.
"공부하고 와라" 페미니스트들이 안티 페미니스트들에게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나 또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성차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피곤함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합니다'라는 책을 읽었고, 기형적 구조와 이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게으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정상화하려는 사람들만애쓰고 있는 상황의 모순을 깨달았다. 아마 비슷한 생각으로 다른 페미니스트들도 "나를 설득해보라"는 무례한 태도의 성차별주의자들에게 "너 또한 스스로 공부해서 깨달을 필요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공부하고 와라"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해왔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나를 지키는 대화의 전략이 될 수는 있어도 페미니즘의 대중화에는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대학 시절 과외를 정말 많이 했다. 과외 학생이 공부를 하려면 우선 문제집을 추천해줘야 한다. 알아서 성적을 올려서 오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오히려 과외 학생은 공부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공부할 서적을 쥐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할 문제집을 틈날 때마다 브런치에 올려볼까 한다. 바로 '해외 논문 번역본'이다. 해외 논문을 소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의 다채로움을 알리고 싶어서다. 현재 한국에선 그간 인터넷상에 올라왔던 극단적인 주장들이 페미니즘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페미니즘 또한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유연한 학문이다. 페미니즘의 한 가지 면모만 보고 등을 돌리기보단,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내가 지지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일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자웅을 겨루는 유능한 학자들의 논쟁을 따라가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안티 페미니스트들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 또한 유연한 사고를 기르는 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는 다채로운 학문이다.
나는 현재 영국에서 석사 과정으로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은 이론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영어 논문이 극히 드물어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제개발 수업에서 다루는 비교적 최신 젠더 논문들을 번역해서 올리려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에 기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