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8일~29일. 세석 대피소 1박으로 진행된 지리산 46k 대화종주를 완주했다.
지리산 대화 종주를 준비하면서 평소 안 사던 장비도 많이 구매하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종주를 앞두고 러닝도 꾸준히 하고 산행도 쉬지 않고 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의 체력을 과신하기도 했다.
막상 종주를 해보니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첫날에는 천왕봉 1915미터라는 높은 고도와 씨름을 해야 했고, 둘째 날에는 30k 거리의 거대한 벽 앞에서 스피드와 씨름을 해야 했다. 첫날 산행이 끝나고 라면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랜 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핸드폰도 쳐다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피소는 예상외로 너무 따뜻해서 나중에는 침낭을 치울 정도였다. 온몸은 쑤시고 피곤하고 덥고 졸렸다.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새벽 산행을 할 때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이러다가 중탈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온갖 잡생각들이 들었다. 내 인생의 과거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 상황 속에서 이러면 안 됐었는데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당시 진심으로 종주를 한 것을 후회했다. 선두는 저 멀리서 정신없이 가고 있는지 도무지 선두가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사진을 남길 여유조차 나에겐 사치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일행과 같이 산행하며 '이제야 완주가 가능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46k 대화 종주를 시간 내에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지리산의 풍경은 너무 좋았다. 한 산에서 이렇게 사계절이 잘 녹아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다양했다. 새벽 등산에서 보이는 빛나는 달과 별. 낮 등산에서 보이는 장엄한 풍경이 나를 압도했다. 마치 자연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힘든 구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잘 닦여있어서 등산을 하기에 적합했다. 등산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 주면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면서 등산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알게 모르게 같이 산행했던 산행 멤버들의 선행이 모여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준비성이 철저해 물수건과 먹을 것을 기꺼이 나눠준 친구. 이동 시에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을 우려해 수면제와 기타 상비약을 챙겨준 친구. 속도가 느려질 것을 우려해 응원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 친구. 다들 힘든 와중에 시간을 줄이고자 미리미리 라면을 끓이고 나눠주느라 분주하게 준비한 친구. 정말 힘든 와중에 불안한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뒤따라온 친구. 바쁜 와중에 혹시라도 누가 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자리 하나하나 살펴봐준 친구. 그런 친구들이 있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정신적인 여유가 나지 않아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많은 반성과 아쉬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무엇보다도 컸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