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하다.
“절대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거리를 점령한 폭도들이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창문과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절대 안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한 달이 됐다. 태양빛을 못 본 것도, 똑 같은 방안 풍경만 수 십 시간째 보고 있는 것도 말 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는 건 당연지사.
팍~
이 기나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라면 한 봉지는 정확히 삼등분 한다. 아침, 점심, 저녁 끓는 물에 담가 말랑해진 면발이 아닌 바삭바삭한 라면 고유의 상태.
정부에서 말하길, 수돗물을 통해 전염 될 수도 있으니 절대 식수로 쓰지 말라고 했다.
‘어쩌라고...’
반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보름 전까지 TV를 통해 확인했던 바깥세상은 참담했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확인했다. 혹시나 눈이 나빠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 렌즈를 깔끔하게 세척한 후 코앞에서 봤다.
살아 있다고 믿기엔 너무나 썩어 들어간 피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폭도들. 그것은 분명 사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들은 몸에 얼마 남지도 않은 핏기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며 날 뛰고 있었다.
좀비.
영화를 통해 그것들을 간접경험한 사람들은 폭도들을 좀비라고 불렀다. 그것들이 서울시내에 출현한 건 떨어지는 낙엽 잎에 마음까지 씁쓸해지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 전염루트를 종잡을 수가 없다고만 했고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는 공기, 혹은 물에 의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절대 문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밖은 위험 하다고.
생활 반경이 좁아져서 였을까? 내 활동 범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침대 밖은 위험하다.'
정오의 시각.
“쿨럭 쿨렉 켁....켁...”
그 말을 실천하며 침대에 누워 점심을 먹던 나는 식도가 아닌 기도를 치고 들어 온 라면 부스래기에 정열적인 기침을 토해내고 말았다.
“켁...켁...아우 씨..쿨럭 쿨럭...”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워 침대 구석진 곳에 세워진 물병을 찾았다.
“휴.....”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고, 그 와 동시에 산더미 같은 걱정이 밀려왔다. 마지막 물이었다. 언제 진압될지도 모르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내 2리터짜리 생수 통에는 렌즈로 뻑뻑해진 눈을 적셔줄 그 한 방울의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아....큰일이군...오늘 치 약도 먹지 못했는데...'
라면으로 에너지를 채워 넣었음에도 몸에는 힘이 없다. 엉덩이는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끝없이 하강해서 바닥에 불시착 했고, 내 상체는 그대로 바닥과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 있던 신경 안정제를 꺼내 손에 쥔 채 천장을 본다.
“어쩌다가 이 사회가 이리 됐을까?”
분명히 행복했다. 힘들었지만 꿈이 있는 세상이었다. 좁아진 취업 턱에 전보다 몇 배는 극심해진 경쟁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고생 끝에 오는 낙이 라는 게 있었다. 나 역시 그 비좁아진 구멍을 뚫어 올해 하반기에 취업을 한 상태였다.
결혼도 꿈꿨다. 3년이라는 기나긴 취준생 기간을 기다려 준 예쁘지는 않지만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던 그녀와 지금의 이 원룸에서 신혼을 준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 역시 내 곁에 없다. 그러한 지옥 같은 현실이 나를 덮치며 이 약도 복용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우니까...
그렇게 생각에 생각의 끈을 이어가던 그 때 절로 몸이 일으켜 졌다.
‘설마?’
옛 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물이 떨어진 걸 자각했지만 극심한 탈수 증세를 호소하던 내 몸은 외양간 고칠 일이 생길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소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소 즉 라면은 완전히 잃은 상태가 아님이 분명하다.
싱크대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늘 빼곡하게 라면으로 채워져 있던 그곳.
“하나, 둘, 셋, 넷.....................다.....네 개 반.”
아직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남았다. 물 잃고 생수 통 못 채울 상황에 이어 곧 라면도 내 곁을 떠나갈 것 이다.
“크아...읍.”
이 엿 같은 현실에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를 뻔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오른 손이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밖은 위험하다. 라면 박스로 창문을 가려 안에 인기척이 없는 척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 그들이 내 존재를 눈치 채기라도 하는 날에는 난 그들의 고기 파티에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다.
침대로 돌아와 다시 눕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시간에 구애 없이 하루 24시간 어두운 방. 잠을 청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늘 부족하기만 하고 그립기만 했던 잠. 이제는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차라리 영원히 잠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양 한 마리로 시작해 그 수가 천 마리가 되어 갈 때까지 세어 나가는 삶의 연속.신경 안정제를 못 먹은 탓에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양을 천장에서 새어나가고 있다.
"양 삼천 삼백 삼십 삼..."
사천마리의 양을 향해 가던 그 때 거짓말처럼 찾아 온 잠의 정령은 잠깐 이나마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나를 꺼내준다.
쾅~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즉각 반응한다. 그리고 침대 곁에 숨겨둔 야구 배트로 내 오른 손을 빠르게 안내한다. 회사에 다닐 때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한 게 행운이라면 행운 일 상황이었다. 물론 강제 가입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가입하지 않았다면 나를 지켜 줄 무기 따윈 이 방에 없었을 것이다.
쾅~ 쾅~ 쾅~
또 다시 세 번 문을 두드리는 문 밖의 정체. 이불 속에 몸을 숨긴 채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침이 넘어간다.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넘어가는 그것과는 분명 다른 액체가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안에 계십니까!!!”
미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사람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어 또 다른 인간의 음성이 달팽이관을 때렸다.
“없나 본데? 문 따고 들어갈까?”
사람인지 좀비인지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존재들이 내 영역 안으로 들어서려 한다.
절체절명(絶體絶命)
등불로 태어난 이상 바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심지에 의존해 겨우 불타고 있던 나를 완전히 이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해 드디어 바람이 온 것이다.
‘투항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비운의 주인공 햄릿의 말처럼 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내 본능은 말했다. 아직은 살아야 한다고...
손에 쥔 야구 방망이에 혼신의 힘을 싣는다.
문 앞에서 딸그락 딸그락 대던 두 놈. 마침내 그 존재들이 철통같은 방어선을 유지하던 최후의 문턱을 넘어 들어선다.
“야이 개자식들아!!!”
선제공격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제공격을 가할 시에는 기합이 중요하다. 난 있는 힘껏 소리치며 달려들어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 들 중 하나의 머리통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하나는 나의 선제공격을 우습게 피해냈고 다른 편에 서 있던 또 다른 존재는 그대로 나를 붙잡아 바닥과 일체하게 만든다.
강력한 힘이다. 저항할 수가 없다. 라면만 먹은 탓인가 보다.
‘이대로 끝인가?’
난 이제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그 폭도. 인간의 오장육부를 갈아 먹는다는 그 무시무시한 존재들에게 뼈 속까지 발릴 상황에 놓였다.
“하....아저씨 아직도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방 빼라고 한지가 언젠데. 오늘 혹시나 하고 찾아 왔기에 망정이지.”
자신의 동료에게 짓눌린 나를 멀찌감치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오른쪽 귀에 자신의 입을 완전히 밀착한 또 다른 자가 혀를 차며 말한다.
“아저씨 오늘 우리가 찾아 온 거 천만다행인 줄 아세요. 안 그럼 아저씨도 이 빌라랑 같이 밀렸을 테니까...”
정부의 무차별 도시계발 프로젝트.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던 새터민인 내게 남한이 상상에서 그리던 유토피아가 아님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나같이 힘없는 사람들은 설 곳이 없음은 매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