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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Mar 14. 2017

(동경)

RAIN

(동경)     

rain     

“빨리!!! 빨리 들어와!!!”     

철판으로 둘러싸인 이글루 형태의 집. 은상은 그 안에서 검은 색 우비를 뒤집어 쓴 채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허억...허억...”     

집으로 달려오고 있는 남자의 숨은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다. 어디서부터  뛰어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입과 코로 향해 나오는 숨과 표정으로 말미암아 체력의 한계에 부딪쳤음이 분명했다.     

“다 왔어!!!이제 좀만 더!!!”     

 남자가 마침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은상은 서둘러 문을 닫고 천막을 쳤다. 그리고는 우비를 뒤집어 쓴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빨리 벗어!!!”     

은상의 고함과 동시에 남자는 서둘러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검은색 우비를 벗어 던지기 시작하고,     

철푸덕~     

그가 몸과 우비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마찰로 사방으로 우비에 묻어있던 빗물이 튀어 나갔다. 그 물은 투명하지 않은 검은 점액질 형태이다. 그 빗물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은상은 새삼 당연한 사실을 또 한 번 상기 시킨다.     

‘그랬지...우비가 검은 것이 아니었어...’     

검은 것은 우비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었다. 하늘에선 마치 오래된 하수구에 낀 오물처럼 더러운 그것들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남자가 우비를 거의 벗어 던져 그것으로부터 거의 탈출했을 무렵. 그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현민아!!! 야 윤현민 정신 차려!!!”     

은상이 서둘러 남자에게 다가와 쓰러진 남자를 부축했지만 이미 그의 의식은 어쩌면 요단강을 건너서고 있는지도 몰랐다.          

“으...”     

남자가 쓰러진지 12시간이 지났다. 어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겨우 폐로 숨을 들이쉬고 뱉어내던 그. 어쩌면 식물인간상태와 다름없던 검은 우비 속 남자가 서서히 입을 열어 신음을 내 뱉었다. 다행히도 요단강을 건넌 상태는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현민아! 정신이 들어? 괜찮냐?”     

남자가 천천히 눈을 뜨자 연민으로 도배한 자신의 친구 은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으...뭐...뭐야...내가 잠들었던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남자는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평소 주 손으로 사용하던 오른 손을 침대 받침에 대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분명히 이쯤이면 침대를 집고 일어서야 했을 몸이 그대로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조심해!!!”     

다행히 근처에 있던 은상이 다급하게 그를 붙잡아 침대 밑으로 떨어져 내릴 뻔한 남자를 붙잡았다.     

“이....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남자는 당황하며 천천히 자신의 오른 손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으아아악!!!”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정확히 팔꿈치 밑으로 자신의 신체 부위 중 일부가 사라져 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선을 이동해 밑을 보면 양쪽 다리 역시 조금은 길이의 차이가 있지만 종아리 밑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채 그곳에 붕대로 압박된 허벅지만이 남아 있었다.     

“산성도가 더욱 더 강해졌어...잘라내지 않았으면 아마 영영...깨어나지도 못했을 거야...”     

은상은 멘탈이 나가버린 침대 위의 남자에게 침울함을 가득 실은 어투로 설명을 부쳤다. 하지만 남자, 정확히 말해서 윤현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더 이상 현실에 흥분하지도, 날 뛰지도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천천히 침대로 자신의 몸을 눕히고는 은상을 바라봤다.     

“목숨을 건진 건만 해도 행운인건가? 너 덕분에 조금 더 살 수 있게 됐네...비록 팔 다리는 없어도...”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그들이 중학교 때 처음 친구로서 인연을 맺고 15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도 세상은 멀쩡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 하자면 멀쩡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지난 밤 강원 산간에 내린 비로 태백산맥 일대의 소나무가 푸른빛을 잃고 완전히 말라 버리는 믿지 못할...”     

처음에는 뉴스에서 한반도 곳곳에서 내린 산성비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 살고 있던 그들은 그 심각성을 깨닫지도, 피부로 실감하지도 못했다.      

“어차피 나한테 벌어진 일도 아니니까...”     

나만 아니면 된다 라는 생각.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듯 인지했던 것과 상관없이 대다수의 인간들은 사망했다.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검은 빛깔의 산성비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들 중에는 은상과 현민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집을 기준으로 반경 100KM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두 사람 뿐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가 될지도 몰랐다. 그 들 중 한 사람 역시 더 이상 생명연장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를 미지수에 상황이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와 혹시나 살아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현민이 예상치 못하게 더욱 강렬해진 산성비에 노출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하...은상아...나 담배 한 대만...”     

수족을 잃어버린 현민이 하루 사이에 몹시 수척해진 얼굴과 반점이 번진 피부를 한 채 은상을 불렀다.     

“현민아 아무래도...나 중독 된 것 같아. 이미 온 몸으로 퍼진 것 같다...”     

은상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현민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었다. 은상이 현민에게 말한 몸으로 퍼진 것 같다는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납이나 수은과 같은 중독성 강한 금속물질들을 말했다.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검은비의 정체는 산성비다. 보통 산성도를 볼 때 중성인 물이 7의 수치를 가지고 있다. 산성도가 0에 가까워질수록 매우 강한 산성을 띄게 되는데 지금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검은 비는 0에 가까운 강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검게 변해버린 빗줄기에는 수은, 납등의 물질과 원자력 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 플루토늄의 핵 분열 물질도 섞여 있다는 게 진짜 큰 문제였다.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 하늘에서 내린 산성비가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시설에 균열을 만들면서 그 강력한 중금속들을 외부로 유출시켜 물에 스며들었고 그 물이 기화되어 수증기를 떠돌다가 빗방울로 다시 지상으로 떨어진 결과였다.          

“하하하...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뭐하러 지금까지 개 고생해 가며 살아 왔을까...”     

담배 연기를 깊이 뿜어대던 현민이 담배를 입 밖으로 뱉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가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현민아 나 진짜 죽고 싶지 않아...진짜야...나 아직 인생을 끝내기엔 좀 이르지 않냐? 응?”     

“임마 마음 약해지는 소리 하지마. 죽긴 왜 죽어 새꺄...”     

그의 반응에 은상 역시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조용히 현민의 몸통으로 두 손을 올려놓았다.     

“하....진짜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 꼴이 났을까? 분명 우리 어렸을 때 비 맞으면서 공도 차고, 하늘에 대고 입 벌리고 빗물도 받아 마시기도 했었잖아. 그런데 어쩌다가 그 푸른 별.... 유일하게 생명체가 산다던 행성이 이 꼴이 된 걸까?”     

오열하며 은상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      

“쿨럭~쿨럭~~~”     

그 순간  현민이 강한 기침을 내 뱉으며 괴로워했고 그 강력한 공기압은 허공으로 붉은 방울들을 흩뿌렸다.     

“커어어......커억...”     

말 그대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빠른 반응만큼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건 산성비를 얻어맞은 현민의 몸 상태였다.     

“현민아!!! 윤현민!!!”     

다급해진 은상이 그의 뺨을 툭툭 치며 그의 의식을 확인했지만 이미 이마를 향해 뒤집어진 그의 눈은 은상에게 말 대신 그의 이사를 전하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     

그리고 허리를 활처럼 심하게 뒤로 젖힌 그는 몸을 뒤로 꺽은 채로 마지막 숨을 내뱉었고 잠시 후 신체활동을 완전히 멈추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렸다.     

“으아악!!! 윤현민!!!”     

은상은 차갑게 식어 버린 현민의 사체를 끌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젠장!!! 제기랄 말도 안 돼!!! 이런 개 같은...오...신이여...이런 신 개 자식아!!!! 으아악!!!”     

현민의 죽음에 흥분한 은상은 자신의 친구와 이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신을 향해 인간이 내 뱉을 수 있는 욕이라는 욕을 다 퍼부으며 저주했고 그의 손은 파괴자로 돌변해 손에 잡히는 어떤 물체든 작살을 내고 있었다.     

“들었으면 무슨 대답이라도 하란 말이야!!! 언제까지 침묵으로만 일관할 건데? 우리의 아버지라며!!!이 비겁한 신아!!! 전지전능 같은 소리 좋아하네! 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커...커어억...”     

하지만 은상 역시 얼마 못가 붉은 선혈을 토했다. 은상 역시 산성비 속에 포함되어 있던 방사능 물질에 그대로 노출된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현민이 그랬듯 바닥으로 엎어져서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어억...어어거거....”     

뒤틀리는 팔 다리. 빠징코 게임 속 화면처럼 뱅글뱅글 도는 그의 눈동자. 한 마디로 신체의 모든 신경이 곤두 선채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의 손등에 나 있는 솜털 마저 바짝 서 있는 걸 보면...     

“으..갸갸갸...갈갹라...”     

친구 현민이 그러했듯 그 역시도 곧 숨이 끊어질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 은상의 두 눈은 둥그런 벽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액자 속으로 향했다. 액자 속에는 어린 시절 자신과 현민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서 남긴 기념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파란 하늘, 환한 빛깔의 경치와 그 빛깔만큼 빛나는 아이들의 미소. 그것이 숨이 넘어가기 전은상의 동공에 비친 마지막 세상의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괴로움 속에서도 웃음이 지어지는 그였다. 추억이란 놈은 늘 그러했듯 현실 속의 내게 실없는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 땐 그랬었지...”     

활처럼 당겨지는 그의 척추...그리고 그는 그 상태로 마지막 신음을 토해낸다.     

“커...어...시...신이여...우....우리를..”     

 마지막으로 그가 내뱉은 말은 신이었다. 하지만 은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친구 현민이 떠난 저승길로 급하게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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