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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Jun 29. 2016

떡볶이 한 접시 속 개똥철학.

떡볶이와 오뎅 같은 사이.


점심도 못 먹고, 돈은 까먹고,

(참고로 저는 개인 투자를 하는 개미 임) 스트레스가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 까지 껏...먹고 죽자.

서둘러 근처 분식점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까지는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

떡볶이를 포장해 부랴 부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진공 포장을 뜯고.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겠다 

마음 먹고 포크를 든 순간.


화가 폭발 하더군요.

동서남북 어디를 뒤져도 어느 방향으로 눈을 굴려도....

혹시 떡 국물 속에 숨어 있나? 포크를 이리저리 휘적 거리며 들쑤셔 봤지만 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뎅...


분명히 똑똑히 자세히 보았습니다. 분식점에서 포장 할 때 오뎅이 있는 것을... 그런데 왜!!!

정작 내 위장에서 최후를 맞이 할 이 포장 용기 속 떡볶이에는 오뎅이 단 한 점도 없단 말이오?

떡볶이만 가득한 그릇...

머리 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매매로 인해 스트레스가 폭발한 날에는 이상하리 만침 별 것도 아닌 일에 분노 게이지가 차 오르곤 하죠.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떡볶이 속에 오뎅이 있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평상시 떡볶이를 먹을 때 당연히 오뎅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래...뭐 별것도 아닌 일로 제 명 깎아 먹지 말고 릴렐스 하자. 후우 후우.."


화를 가라 앉히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 뱉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고추장 양념이 가득 베인 떡을 입 안에 밀어 넣습니다.


이상 합니다. 오늘 따라...

떡볶이를 먹으면 이 지독한 스트레스가 펜스 넘어 날아 장외 홈런이 되면서 엔돌핀이 솟구쳐 올라야 하는 데...

아무래도...


오뎅이 부재가 너무 크게 느껴져!!!


불과 3일 전 떡볶이를 먹을 때만 해도 오뎅을 먹었는지, 오뎅이 있었는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말 입니다. 그 때 식탁 옆에 놓아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었습니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로 부터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 였습니다.

형식적인 안부를 서로 주고 받다가 친구가 넌지시 질문을 던집니다.


"넌 그나저나 또 떡볶이 먹고 있냐? 아...그나저나 여친이랑 다 같이 봐야지?"


오랜만에 나타난 친구의 입장에서 알고 있는 나에 대한 당연한 사실 두 가지.


첫째, 너는 오뎅이 들어간 떡볶이를 오늘도 먹고 있겠지.

둘쨰, 너는 여전히 그 여자친구랑 교제 중 이다.


그 순간 오늘 따라 내가 왜 그렇게도 오뎅에 집착 했는지...왜 그렇게 착잡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유를 발견 했습니다.


권태기


이 녀석은 연인 사이에 최대 훼방꾼이자 게임 케릭터 속 끝판왕 급 강적 입니다. 교제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당연하게 찾아오는 이 감정. 떡볶이 속에 당연히 오뎅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 그 동안의 경험. 굳이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내 옆에 항상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익숙해진 내 연인.


제가 무딘 것 일까요? 헤어진지 꽤 됐지만 여전히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한 그 익숙함. 그 익숙함으로 인해 솟아난 소홀함.


"아주머니 떡볶이에 오뎅 많이 넣어 주세요."


이 한마디로 신경만 썼다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떡볶이를 먹으며 화가 나지도 않았을 텐데...


"이 손 꼭 붙잡아. 우리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게..."


손 잡는 게 너무 당연해 지고 더 이상 둘 사이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 다는 이유. 그 이유만 아니었다면 꼭 잡은 이 손을 놓지 않았겠죠.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고 여성화 된다고 하죠?  서른 네 살이 된 지금. 말랑말랑한 떡볶이를 쩝쩝이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식탁 유리 위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도 처량 합니다.


왜 갑자기 눈물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뜻대로 풀리지 않은 내 인생에 대한 서러움이었는지, 떡볶이 옆에서 늘 그 맛을 보필하는 오뎅. 그 오뎅 같은 존재였던 제 옆 사람을 잃은 슬픔 탓인지...


옆 자리 옆 사람, 그리고 내 사람.

꼭 그 존재가 이성친구에 국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태어남 과 동시에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 봐 주는 부모님. 철없던 어린시절을 거쳐 철 없는 어른이 된 지금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결속되어 있는 우리.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엔 오뎅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 집니다.

그들에게 한 시라도 빨리 안부를 물어야 겠습니다. 언제 그들이 제 곁을 떠날 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말해야 겠습니다.


"사랑 한다. 그리고 고맙다."


ps_ 그 와중에 떡볶이를 다 먹고 국물에 밥까지 비벼 먹는 저도 참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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