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으로 조깅을 다녀 오던 중.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있던 떡볶이 포장마차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 전만해도 하루도 쉬지 않고, 열려 있던 이 곳.
이모라고 부르던 아주머니는 어느 덧 할머니가 되었고, 철없던 꼬맹이였던 저는 여전히 철 없는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 했지만, 그 대가로 젊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젊음과 함께 체력도 소진되신 할머니는 이제 리어카를 끄실 힘도 없으신 지 이렇게 문을 열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빈번 합니다.
몇일 째 이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이 곳. 혹시나 할머니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신 것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할머니가 이대로 돌아 오시지 못하시면 어쩌지?'
걱정과 함께 문득 겁이라는 감정이 몸 전체를 감싸 안았습니다. 굳게 닫힌 리어카가 문득 묘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리 속은 연관 검색어로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 리어카를 보면서 죽음 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 건 죽음은 곧 모든 활동의 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이었을 것 입니다. 묘지라는 곳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이 묻히고 보관 되는 곳. 살아 생전에 그 사람과의 추억이 있는 이 들이 찾아 오는 장소 이기도 합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길거리 떡볶이 집. 굳게 닫힌 이 곳을 지날 때 마다 지난 날의 향수에 사로 잡혀 떡볶이와 많은 추억들을 떠 올립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어 봤습니다.
"만약에 너가 갑작 스러운 사고로 죽어 묘지에 묻히게 된다면, 매일 같이 너를 추억하며 찾아 올 사람이 있니?"
사전적인 의미에서 죽음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지만 지금의 제 입장도, 사회적인 관점에서 지켜 봤을 때 죽은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태 입니다. 서로의 안부나 왕래가 뜸하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는 것이 인간 관계. 다른 것은 몰라도 친구 하나 만큼은 많다고 자부하던 나의 이십 대. 그리고 꿈 많았던 시절.
사회적인 활동이 정지 된 채 안으로 안으로 스스로를 감추고 문을 걸어 잠근 지금의 내 모습. 과연 이대로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때 그 시절,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그들 중 몇이나 나를 찾아 올까? 아니 몇이나 나를 추억할까? 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그 순간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처음 떡볶이 글을 시작할 때는 말 그대로 개똥철학. 가벼우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갈 생각이었는데 시작 한지 3회만에 이건 뭐,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역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말 입니다.
이래서 어른들은 아니 사람들은 말하나 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급 우울해졌던 내 감정이 뜻하지 않게 이 글에 대한 걱정으로 변하면서 글을 쓰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된 것 입니다.
오 십대가 지나 인생을 꽤나 경험해 보신 어른들 중 대다수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겪게되는 모든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다는 말 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소리냐구요?
제가 운이 좋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입니다. 비록 예기치 않은 곳에서 허탈한 웃음을 보인거긴 하지만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웃으면 복이 와요. 죽음으로 시작해서 계속해서 우울하게 글을 쓰다가 마지막 순간 허탈하지만 웃음을 보였고, 그 웃음은 결국 제게 복을 가져다 줄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 복을 생각하니 제 웃음은 함박웃음으로 완전히 탈 바꿈을 합니다.
어차피 인생사 우리가 생각하고 마음 먹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이게 무슨 뜻 밖의 글의 흐름이냐 하겠지만 그냥 글 보고 마지막에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