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08 : 시베리아횡단열차, 장보고 탑승하기까지
20170202, 클레버하우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트로 향했다. 몇 시간 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게 되는데, 타는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열차에 식당칸이 있기는 했지만,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고, 2박 3일간의 모든 식사를 거기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직접 식량을 싸들고 기차에 탑승하는 편이었다. 기차역에도 매점이 있고 객차 안에서도 컵라면 정도는 팔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지는 알 수 없으니 어느 정도는 미리 사서 가려고 했다.
그 근방에서는 클레버 하우스의 지하가 가장 규모가 큰 곳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큰 건물인 데다 큰 간판이 있어 찾는데 어렵지는 않았으나, 그 앞 사거리의 교통량이 상당하고, 특히 건물 바로 앞으로 난 도로는 횡단보도 등 체계가 잘 없는 데다 버스 등이 잔뜩 정차하고 출발해서 복잡했다.
건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마트가 보였는데, 한국의 대형마트와 같은 크기는 아니었고 백화점 식품관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그러나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신기했다. 특히 내 취향의 물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풍부한 종류의 육류, 가공육, 치즈, 가공된 생선 등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런 건 한국에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구할 수 있더라도 가격이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심으로 그 마트의 일부분이라도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입맛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만, 기차여행에 알맞지 않아서 구경만 하고 그만두었다. 대부분 요리를 해야 하거나, 냉장보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먹을만한 것들을 찾았는데, 훈제 처리가 되어 며칠 정도는 실온에 놔둬도 될 것 같은 이름 모를 생선과, 노란빛의 건포도와 각종 과일 등을 샀다. 사실 식량은 그렇게 많이 사지를 않았는데, 생소한 것들이 많은 터라 뭘 사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점이나 역내 노점에서 종종 사서 해결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대신 마실 것을 많이 샀는데, 일단 물은 필수적이므로 샀고, 나 같은 경우에는 과일 주스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샀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맥주와 보드카도 샀다. 물은 탄산수와 생수의 구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미리 조사를 해서 제대로 생수를 샀다. 예전에 유럽에서 탄산수를 샀다가 탄산은 둘째치고 미네랄 함량이 너무 많아 일상적인 음용수로 마시기에는 부적합하여 고생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에는 확실히 했다. 주스는 종류가 엄청 다양했고, 한국처럼 페트병으로 파는 것보다는 종이팩에 담겨 있는 것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부피를 줄여야 하는 여행에 유리한 형태라 마음에 들었다.
주류 코너의 라인업은 정말 대단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보드카의 종류가 정말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만 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보드카들이 나오고 있었고, 진심으로 하나씩 다 비교시음해보고 싶었다. 그 외 다른 국가의 다양한 증류주들도 전시되어 있었고, 와인도 다양했으며, 맥주는 살짝 빈약하긴 했지만, 한국의 보통 마트에 비하면 훨씬 괜찮았다. 탭이 있어 거기에서 맥주를 뽑아 테이크 아웃할 수도 있었지만, 특별한 맥주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이점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RTD가 다양한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한국도 소주에 합성착향료를 타서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게 유행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계산대로 오니 생각보다 산 것이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는 열심히 살펴본 것 같은데, 언어의 장벽도 있는 데다 뭐가 필요한 지 확실히 알지 못하니 주저해서 사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이때는 부족할 것 같아 좀 걱정을 하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적당히 알맞게 샀다고 생각한다.
장을 다 본 뒤 호텔로 향해 맡겨놓은 캐리어를 돌려받고, 대부분을 캐리어에 넣어 짐을 간소화하였다. 기차 안 환경이 캐리어를 자주 여닫기 힘들기는 하지만, 객차에 들어가서 바로 꺼내면 상관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준비를 모두 마치니 약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기차역으로 이동해 기다리기로 했다.
기차역도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엑스레이와 금속탐지기 검사를 하고 있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니까 불가피하기도 하고 어느 측면으로는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세상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하니 착잡하기도 하다. 그런데 해가 지기 시작해서 바깥이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조명을 거의 켜지 않아 살짝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탑승구 쪽에 위치한 모니터에서 현황을 알려주고는 있었지만, 러시아어로만 나왔다. 그래도 복잡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이해하긴 쉬웠지만, 변경 사항이 있어 공지할 때는 알아볼 수 없으니 위험할 것 같기도 하다.
출발시간까지 긴 시간이 남았기에 대합실의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였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온 이후로 점심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걷다시피 하였으니 모두 조금 지쳐있었기에 기꺼이 쉬었다.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계속 들어왔는데, 한국인들이 제법 많았다. 외국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제일 많은 것 같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와 한국이 가까워 그런 것 같다. 아메리카나 유럽 사람들은 보통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외 중국인도 몇 명 보였다.
한국인들도 다양한 그룹이 있었는데, 패키지여행으로 오신 어르신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동성의 또래끼리 왔더라. 그걸 보며 든 생각이, 내가 그런 경우를 잘 못 봐서 그런 건지, 한국 사람들은 이성 친구들끼리 섞여서 여행 다니는 것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서양인들이야 흔하다 치더라도, 중국인들도 그렇게 다니는 그룹이 종종 보이던데,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다니는 건 여행지에서 서로 친해져서 같이 섞여 다니는 경우 외에는 본 적이 없다. 애초에 혼자 다니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추측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면 할 말 없지만.
출발 20여분을 앞두고 플랫폼으로 미리 내려갔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역이 기점인 만큼 열차는 진작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듯 하나,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라 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크게 춥지 않아서 그럭저럭 기다릴만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객차장이 나와 표와 여권을 확인하고 승객들을 입장시켰다. 생각보다 탑승객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중간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홈페이지 상으로는 빈자리가 별로 없었던 듯하다.
타게 된 기차는 005번으로, 등급은 3등석인 오픈된 쿠셋(Плацкартный, 플라츠카르트니, 3-сlass open sleeping)을 좌석으로 정했었다. 6인실이라고도 부르며, 한 칸에 2개의 2층 침대가 있고, 복도 쪽에도 1개의 2층 침대가 있는 구조이다. 원래는 2등석도 고려하긴 하였으나, 2등석은 객실마다 문 때문에 독립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있어서, 횡단 열차의 민낯을 제대로 알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3등석으로 하였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그렇게 개방적이지도 않았고, 지낼만해 보였다.
객차의 폭은 생각보다 넓었고, 구형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깔끔해 보였다. 예전에 탔던 침대열차인 텔로(Thello)보다 훨씬 더 괜찮았다. 침대도 더 튼튼해 보였고, 전반적으로 공간에 여유가 더 있었다. 그런 걸 보니 러시아의 침대칸은 탈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로는 진짜 답답하고 낡고 더럽고 시설도 좋지 않은 데다, 동승객이 진짜 개망나니 같은 사람이라서 엄청 고생했기 때문에 침대객차에 대한 인식이 엄청 안 좋았는데, 이번 기회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각 침대의 1층은 전부 비어 있었고, 그 2층에 매트리스 및 이불과 베개가 2세트씩 있었다. 그러나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베거나 누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위를 시트로 덮어야 했는데, 표를 끊을 때 시트를 신청할 수 있어서 신청했었다. 그러나 탑승하자마자 주지는 않아서, 매트리스를 그대로 두고 캐리어를 열어 장본 것과 열차 안에서 사용할 짐을 꺼내며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되자 기차는 바로 출발했다. 이제 4일 동안 수천 km를 달리게 된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