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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rukinasy Apr 15. 2017

4일간 기차를 타는 것은 우리 모두 처음이라

러시아 _ 09 : 시베리아횡단열차, 처음 잠들기까지

20170202, №007H, 3등석(6인실) 구형 객차




드디어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열차에 탑승했다. 탑승한 기차는 정확히 말하자면 시베리아 전체를 횡단하는 열차는 아니고, 블라디보스토크(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가는 기차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기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달리는 기차는 001, 002, 099, 100번뿐이고, 그마저도 격일마다 한 번쯤 운행한다. 한 번에 끝내고 싶으면 위 4개의 기차를 타야겠지만, 끊어서 탈 것이라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의 1차 목적지는 이르쿠츠크였기에, 거기까지 가는 열차를 타면 되었으므로 007번을 이용하게 되었다.


구형 객차의 내부 모습.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지낼만해보였다.


기차는 구형 객차였는데, 신형인지 구형인지는 홈페이지 상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무조건 신형 객차인 경우에는 별도로 표기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확실히 알기 힘들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운이 안 좋았던 것이기도 한데(옆옆칸은 신형 객차였다), 그래도 꽤 탈만했다. 앉는 곳은 인조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시트를 덮은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자면 된다. 그런데 시트를 바로 주지 않아서 일단 기차에서 쓸 물건들을 캐리어에서 다 꺼내기 시작했고, 그즈음 열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트에서 장본 것들은 전부 다 꺼냈다. 물과 음료수는 밖으로 꺼내놨고, 먹을 것과 주류는 비닐봉지에 넣어 구석에 놓아두었다. 주류를 숨긴 이유는 주류가 금지가 되었다는 얘기를 어디서 봤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만 마신다는 얘기도 있어서 일단 분위기를 살펴본 다음에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꺼냈는데, 기차 안은 따뜻한 데다가 좁기 때문에, 바깥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계속 있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슬리퍼까지 꺼냈는데, 기차 안에서 침대 위주로 계속 생활하면서 평범한 신발을 계속 신고 다니는 것은 엄청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리 꺼내기 좋게 캐리어를 싸놓은 게 아니라서 모든 캐리어를 다 열어서 확인하며 찾아 꺼내야 했다. 내 짐은 그나마 모듈화가 되어 조금 편하기는 했지만, 두 캐리어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찾는데 고생을 좀 하였고, 부모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미리 한 캐리어에 몰아넣는다거나, 꺼내기 쉬운 위치에 다 진열해놨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렇게 일차적인 짐들을 다 꺼내고 캐리어를 닫을 때쯤 차장이 와서 시트 주문 여부를 체크하고 시트 세트를 주었다. 구성물은 큰 시트 두 장과 베개용 주머니형 시트 하나와 수건이었다. 모두 상당히 깨끗한 상태였으며 품질도 우수한 편이었지만, 먼지가 다소 있었기 때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한 번 털고 쓰는 것을 추천한다.


시트도 받았으니 이제 매트리스에 씌워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열차 내에 전등을 안 켠다. 이미 출발할 때 해가 거의 다 진 상태였는데 캐리어를 정리하는 동안 거의 완전히 깜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안 켜서 원래 안 켜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폰의 플래시에 의지해서 하려고 할 때쯤 되어서야 천장의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서 쾌적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너무 어두워서 폰의 플래시에 의지하여 짐을 정리했었다. ⓒ


드디어 씌우는 작업을 하는데, 너무 공간이 복잡하고 정신이 없어서 나는 약간 어리벙벙하게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런 일에 익숙하셔서 엄청 신속하면서도 깔끔하게 작업을 진행하셨는데,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돕고 싶긴 했지만 어설프게 도왔다가는 오히려 방해인 게 분명했고, 또 워낙 좁아서 혼자 작업하는 편이 낫기 때문에 사실상 간단한 보조작업 외에는 아버지께 다 맡겼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다.


이불도 있어서 거기에도 시트를 씌워야 하는데, 객차 내 기온을 보니 이불까지는 덮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시트가 충분히 넓지 않은데다 주머니형도 아니라서 이불을 완전히 덮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부분이 노출되므로 그냥 이불을 쓰지 않고 시트만 덮기로 했다. 이 판단은 상당히 괜찮은 판단이었는데, 안 그래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기 때문에 이불까지 놓은 채로 생활하기에는 다소 번잡했으며, 시트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기 때문이다. 대신 안 쓰는 이불은 비어있는 짐칸으로 올렸는데,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현지인들도 똑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작업이 끝나니까 겨우 사람 몸 하나 뉘일 공간이 생겼다. ⓒ


마지막으로 베개에 시트를 씌우는 작업까지 마무리하니, 이미 시간은 상당히 지나있었고 나는 기진맥진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께서도 지치신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제 옷을 갈아입고 씻고 쉬려고 하니 처음 캐리어 정리를 할 때 세면도구를 다 안 꺼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의자 밑에 넣어놨던 캐리어를 꺼내기 위해 다시 의자를 매트리스와 함께 들어 올린 뒤, 나머지 세면도구와 함께 미처 꺼내지 못한 다른 물건들까지 다 꺼냈다.


그리고 컵을 빌리려고 했는데(탑승객이면 누구나 빌릴 수 있음), 차장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컵이라는 단어와 빌린다는 의사를 전달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미리 준비한 구글 번역기의 오프라인 모드를 이용했지만, 왠지 소통이 안 된다. 게다가 나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울렁증이 있으며, 그게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면 몇 제곱이 되는 터라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로 임했고, 그래서 더욱 빌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결국 나중에 아버지께서 컵을 빌리는 데 성공하셨는데, 나중에 복기를 해보니 구어체 문장으로 번역을 시도해서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문장 성분을 확 줄여서 엄청 간단하게 적으니 뜻이 금방 통했다.


받침대가 달린 이 잔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필수품이다. ⓒ




그제야 비로소 4일 동안 기차에서 지낼 준비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지만, 너무 오래 걸린 터라 벌써 슬슬 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이다 보니 객차의 전등은 꺼졌고, 대신 살짝 노란빛인 미등의 불만 들어와 있었다. 아직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점심을 엄청 늦은 시간에 왕창 먹은 터라 모두 다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기에 저녁을 먹는 수고는 덜었다. 대신 한국에서 가져온 간단한 주전부리와 마트에서 산 건포도와 맥주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이날의 맥주는 그날 밤의 마침표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경험이 많으면 미리 준비도 잘 하고 깔끔하게 금방 다 했을 텐데, 처음이니 정신도 없고 진행도 더디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기 싫고 힘들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사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 두려워하기도 한다.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이며 개척적인 성격과,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이 서로 충돌한 결과이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기 때문에, 보통은 결국 하지 않게 되고 그 하지 않음으로 인한 아쉬움까지 안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렇게 시베리아 횡단 여정에 같이 나서게 됨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어서 처음 잠들 때 기분이 살짝 좋았다. 경험을 하기 전과 처음 할 때가 힘들 뿐이다.


잠들기 직전 정차한 작은 역. 작아서 그런지 스마트폰의 데이터 통신이 불가능 했다. ⓒ




기차 안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은 되었지만, 생각 외로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적응되었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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