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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시베리아를 가로지른다는 건
By yarukinasy . Apr 16. 2017

열차 안에서 사는 것도 하루 만에 적응이 되더라

러시아 _ 10 : 시베리아횡단열차, 첫날 보내기

20170203, №007H, 3등석(6인실) 구형 객차, 첫 경험 일기




잠자리는 생각보다 편했다. 우선 내 키가 크지 않아서 다리를 완전히 뻗어도 밖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며, 침대의 폭은 좁았지만 살짝 몸을 돌린다고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기차가 운행하며 생기는 적절한 덜컹거림은 마치 흔들리는 요람처럼 잠을 잘 오게 해주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는데, 그렇게 잠들다 밝은 빛에 서서히 깨어보니 하바롭스크를 지나가고 있었다.


첫 잠에서 깨자마자 창밖을 보고 찍은 사진. 하바롭스크 시내. ⓒ


하바롭스크는 처음으로 30분간 정차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살짝 내려서 바깥공기도 쐬고 살짝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깨어났을 때는 이미 통과한 상태라 다음 정차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더니 아직 도심이라서 화장실이 잠겨있었는데, 구형 객차의 최대 단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신형 객차는 Bio Toilet이라서 기차의 정차 여부와 상관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지만, 구형 객차는 변을 그냥 선로에 내다 버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도심을 지나가는 경우에는 출입을 통제한다. 최대 정차 전후로 약 30분간 통제를 하게 되는데, 정차시간까지 포함하면 최장 90분간 잠겨있기도 하다. 진짜 급하면 정차했을 화장실을 가도 되지만, 유료인 데다가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시간 내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큰일 나므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치가 되자 드디어 화장실을 열어주었다. ⓒ




부모님께서도 비슷하게 일어나셨고, 모두 정신을 천천히 다 차렸을 무렵 열차 안에서 첫 번째 식사를 하였다. 열차 안에는 조리 도구가 없고 제공되는 것은 편의점 온수의 온도를 상회하는 엄청 뜨거운 물밖에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리가 필요 없거나 다 된 음식, 아니면 간편식 정도만 먹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대비해 한국에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간편조리식품들을 어느 정도 챙겨 왔었다. 컵라면도 챙겼지만, 동결건조된 국이나 밥도 챙겼다. 아직 현지에서 적절한 식량을 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가진 것들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곤드레비빔밥 두 개와 된장국 두 블럭에 누룽지라는 엄청나게 한국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평소에 쌀밥과 된장국을 거의 안 먹는 나로서는 오히려 신기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도 잘 안 먹던 한국적인 식사를 먼 이국땅에서 하게 되었다. 조리법대로 따라 하니 금방 괜찮은 밥과 국이 완성되었는데, 문제는 밥 하나를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하다 보니 지퍼백 채로 뜯어버린 데다가, 뜨거운 물을 넣기 전에 스프부터 먼저 넣어버렸는데, 그렇게 만드니까 밥이 제대로 불지를 않았고 맛도 밍밍한 게 이상했다. 역시 설명서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잘 모르는 것을 할 때는 설명서를 제발 좀 읽었으면 좋겠다.


기차 안에서 먹는 첫번째 식사. 거의 다 먹고 찍었다. 한국적 느낌이 엄청 난다. ⓒ


식사는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설명서대로 만든 밥은 비록 쌀의 질감에 한계는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최상의 비빔밥이었다. 특히 참기름이 좋은 포인트가 되어주었고, 맛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아서 큰 부담이 없었다. 국은 조미가 다소 강하긴 했지만 그런 편이 오히려 좋았고, 물을 조금 더 부으니 된장 맛이 그렇게 약해지지도 않으면서 간이 조금 묽어져 먹기 편해졌다. 거기에 개별 포장된 누룽지를 한 팩 넣었더니 잘 어울려서 좋았다.


그런데 이런 식사를 하면서, 한국 사람이야 된장 향에 그래도 좀 익숙하니까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현지인들은 냄새가 불쾌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먹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된장은 향이 진짜 강한 식재료로, 그 향에 익숙지 않다면 거부감이 들기 좋은 냄새이기에, 그런 냄새를 객차에 풍기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렇게 된장 향이 쌘 편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겠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했는데, 당연하지만 물을 풍부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므로 일단 헹궈내고 닦은 뒤 마무리로 뜨거운 물로 헹구는 정도만 했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생각보다 엄청 깨끗해진다. 수도시설이 없는 곳에서 캠핑을 할 때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썼기 때문에 괜히 그 기억이 떠올랐다. 베이킹소다 같은 것을 챙겼다면 훨씬 깨끗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괜히 마약 같은 걸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식사 후 티타임. ⓒ


정리가 다 끝난 후 티타임을 가졌는데, 이를 위해 한국에서 여러 티백을 들고 갔다. 사실 열차 안에서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차(茶)나 마시면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현지의 차((茶)를 살 능력도 안 될 것 같고, 그 맛이나 향이 익숙하지 않아 고생할 수도 있으니 미리 사서 간 것이다. 사실 나는 차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막상 수 시간 객차 안에 있으니 차라도 마시는 편이 낫더라.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 객차 안을 다니며 음식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승무원이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해서 파는 것이라고 하더라. 러시아 느낌이 강한 샐러드와 소가 들어있는 빵 등을 팔고 있었는데, 샐러드는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서로 언어가 안 통하니까 빵 안에 뭐가 들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당기지 않았고, 이미 식사를 거의 마치는 중이었기 때문에 사지 않았다.


차나 마시면서 바깥 구경 하는거지 뭐. ⓒ




그렇게 몇 시간 여유롭게 있으니 장시간 동안 정차하는 역에 6시간 만에 서게 되었다. 그래 봤자 15분밖에 안 되지만, 열차로 들어온 뒤로 밖으로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나가고자 하였다. 바깥에 처음 나가는 것이라 어떤 복장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는데, 어차피 잠시 동안 나가는 것이고 추우면 다시 들어오면 된다는 생각에,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반팔 반바지 위에 패딩만 입은 채로 나갔다.


Облучье역. 처음으로 내려본 정차역이다. ⓒ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맑고 바닥은 전부 눈으로 덮여있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그런 차림으로도 있을만했다.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와 공기를 들이마시니 왠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다만 여러 철도 차량에 가려져서 바깥 경치가 제대로 안 보이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밖으로 나오니까 참 좋다. 그렇게 나 자신을 환기하며 역내 매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려 했으나, 눈에 닿는 곳에는 매점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걸어 다녀보기도 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으며, 멀리 가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던 터라 다른 역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관두었다.


정차 시간 동안 열차를 정비하는 모습이다. 고드름을 깨고 있다. ⓒ


정차하는 동안 승무원들과 엔지니어는 간단한 차량 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열차 아래쪽의 고드름을 깨는 작업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위치는 뜨거운 물이 있는 보일러 쪽이었다. 아마 보일러에서 물을 받는 사람들이 물을 흘리면, 바닥의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고드름을 형성하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니 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나와서 몸도 풀고 바깥 구경도 하였으며, 객차 내에는 금연이기 때문에 짧은 틈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흡연자들은 기차를 타는 게 참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장시간 정차할 때만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도중에도 피울 사람들은 몰래 피우기도 하지만, 걸리면 벌금이나 뇌물 등을 줘야 하는 등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는 하지 못 한다.


그러다 보니 15분은 금방 다 지나가버렸고, 다시 기차로 올라타야만 했다. 이제 다시 내리려면 5시간은 꼬박 더 가야만 한다. 그래도 그다지 막막하지는 않았는데, 기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름 할만했기 때문이다. 경치도 괜찮은 데다, 어느 정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전부 탑승한 후, 열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근데 사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할만한 건 진짜 아무것도 없다. 바깥 경치를 보는 것도 잠시 동안이나 할만하지, 결국 비슷비슷한 경치의 연속이라 항상 보고 있기에도 질린다. 가족끼리 평소 못 했던 얘기를 한다던가 그런 거도 안 되고, 객차 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야 하지, 전부 조용히 자기 갈 길만 가는 분위기인 데다, 부모님이나 나나 굳이 나서서 친구 만드는 성격도 아니라서 조용히 갔다. 책을 하나 들고 오기는 했는데 금방 다 읽어버렸고, 대신 수년 전에 사서 열심히 듣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안 쓰기 시작하게 된 MP3플레이어에 요즘 듣기 시작한 음악들을 담아왔는데, 그걸 열심히 들으니 시간이 잘 갔다.


오랜만에 쓰게 된 나와 아주 긴 시간을 보냈던 MP3P. 아직 현역이다. ⓒ


음악을 열심히 듣는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분석해가며 듣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들으면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어도 금방 질리지 않는다. 물론 음악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기 때문에 멋대로 분석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음악을 잘 안 듣는 성격이지만 그런 식으로 무의미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는 종종 듣는 편인데, 대부분 교통을 이용할 때 데이터 이용이 힘든 경우나 멀미가 나는 경우에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보통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서 일부러 MP3P를 들고 갔다. 스마트폰으로 재생할 경우 배터리가 금방 소모되고, 상황에 따라 소모된 배터리를 객차 내에서 충전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MP3P는 충전이 완료되면 이틀 이상 연속으로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배터리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오랜만에 MP3P를 쓰려다 보니 음악도 오랜만에 정리하게 되었는데, 평소에는 앱을 이용하다가 직접 파일을 사고 다운받아서 넣으려니 귀찮았다. 게다가 파일 형태로 가지고 있는 음악들의 대부분에 질렸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을 찾는다고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 듣는 음악들은 한국에 정식 판매가 안 되는 음악들이 많아서, 합법적인 구매 방법을 찾는다고 고생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찾을 수 없거나 너무 번거로워서 포기했었기 때문에 결국 원하는 곡은 그다지 넣지 못했다. 그래도 그 곡들이라도 있으니 훨씬 나았다. 약 8시간 재생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버린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지만, 새로 넣은 곡들이 워낙 괜찮아서 여러 번 들을만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누구는 그런 긴 시간 동안 과거를 되돌아본다거나 미래를 설계한다던가 기타 발전적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도 아닌 데다가 건실한 사람도 아니라서 그런 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는 강제적으로 수시로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있고, 게다가 회의적인 성격이라 미래에 대한 기대도 그다지 없어서 더욱 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할 것이 쌓여있는데 일상이 너무 번잡해 잠시 탈출해서 생각해보고 싶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 내 장기간의 여유로운 시간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소일거리라도 챙겨 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렇게 회의적인 생각을 하며 수시간 음악을 들으니 점심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버렸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두뇌를 열심히 쓰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배가 고파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워낙 지난 터라 식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땅한 식량은 한국에서 가져온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식당칸 체험도 할 겸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칸으로 가기 전에 그것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므로 승무원에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영어가 안 통해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구글 번역기 오프라인을 통해 겨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었기에 정말 한참 동안 걸어가야 했는데, 기분 상으로는 8칸 전후 정도 이동한 것 같다. 게다가 추위에 견디기 위해서인지 객차 사이에 두꺼운 문이 많았는데, 그걸 하나하나 열어가며 이동하는 것도 고생이었다.


식당칸. 한켠에 공간이 구분된 주방이 작게 있다. 좌석은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다. ⓒ


그렇게 한참을 걸어 식당칸에 도착하니, 식사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손님이 테이블 있었는데, 테이블은 어떤 러시아 여성 혼자서 술에 엄청 취한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태였고, 다른 테이블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할 봤던 패키지여행으로 탑승하신 어르신들이었다. 우리는 사이 적당한 어딘가에 앉아 메뉴판을 요청했는데, 다행히도 영어 메뉴판이 있어 주문이 용이하기는 했지만, 글자체가 쓸데없이 화려해서 가독성이 많이 떨어졌기에 시간이 다소 걸렸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식 요리를 판매하고 있었으며, 공간이 공간인지라 엄청 제대로 된 요리는 기대하기 힘들고, 간단한 요리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류는 맥주와 와인 정도 있었는데, 가격이 전반적으로 엄청 비쌌으며 그 종류 또한 상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 외에 컵라면 도시락(Доширак)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사는 것보다는 혹시 객차에서 팔고 있거든 그걸 사거나, 정차했을 때 역내 매점에 가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왼쪽은 소고기 요리, 오른쪽은 돼지고기 요리다. 돼지고기 요리 쪽을 추천. ⓒ


주문은 적당한 고기 요리 둘에 사이드를 주문했는데, 비주얼은 조금 괴상하긴 했지만 맛은 제법 좋았다. 섬세한 맛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묵직하게 맛있는 느낌으로, 특별한 향신료가 없는데다 소금 위주로 간을 했기 때문에 샤프한 짭짤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짜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건 여기서 먹는 것보다는 나가서 먹는 게 가성비로서는 더 낫다. 그리고 카드 계산이 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카드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카드 계산이 된다고 하더라도 종업원이 거부하거나 다른 핑계를 대고 현금 계산을 강요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원래 있던 객차로 돌아가니, 몇시간 후면 30분간 정차하는 벨로고르스크(Белого́рск)역에 도착할 쯤이었다. 이번에는 뭘 사더라도 사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대로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차 내에서 파는 것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 데다 가격 또한 비쌌기 때문이다. 밖에서 컵라면이라도 사서 와야 했는데, 아직까지 역내 매점을 본 적도 없고, 노점상을 본 적도 없었으며, 바깥에 자유롭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불안했다.


그런 불안감을 가진 채로 나갈 준비를 마치니, 바깥이 완전히 깜깜해질 무렵 열차가 정차했고, 바로 문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있었는데, 탑승하는 사람이 제법 되는 것 같았고,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도 많았으며, 나와 부모님처럼 무언가를 사기 위해 밖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우선 나오자마자 역내 매점이 보이기는 했으나, 그 규모가 워낙 작은 데다가 복잡하고 줄이 길어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더라. 마음까지 촉박하니 더욱 그러했다.


여기는 다른 곳이지만, 이런 분위기인데 더 어둡고 앞에 사람이 여럿 있다보니 처음에 파악하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익숙해졌지만. ⓒ


그래서 혹시 다른 매점이 없는지 스캔하던 와중, 다른 곳을 찾음과 동시에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어떤 행렬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역을 따라 설치된 울타리가 부분적으로 개방이 되어 있어 거기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던데, 그 바로 밖에는 노점이 있었고 더 멀리에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래서 답도 안 보이는 매점에서 깔짝거리는 것보다는 슈퍼마켓에 가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였는데, 이게 마음대로 나가도 되는지와, 다시 들어올 때 아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단서가 보이지를 않아서 잠시 주저했지만, 딱히 통제하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워낙 자유분방하게 다녀서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고 나갔다.


멀리서 보이던 슈퍼마켓의 모습. 키릴문자를 어설프게나마 읽을 수 있던 게 다행이었다. ⓒ


노점에서는 러시아식 빵이나 가공된 생선 등을 팔고 있었는데, 사람도 많고 어두운데 불빛도 거의 없어서 잘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규모가 좀 있는 곳이라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었는데, 거기서 주스, 물, 소세지, 컵라면, 맥주 등을 샀다. 주스와 물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예비 차원에서 샀고, 소세지는 가진 식량 중에 단백질 공급원이 없어서 큰 것 한 팩을 샀다. 종류가 엄청 많았는데, 다 어떤 소세지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감을 믿고 하나를 골랐고, 다행히 독특하면서도 상당히 괜찮았다. 컵라면은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팔도 도시락(Доширак)을 몇 종류 샀고, 맥주는 아무래도 처음에 몇 병 산 걸로는 모자라서 500ml 캔 한 팩을 샀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던 곳 : 구글 스트리트 뷰 (포크레인 들어가는 곳)
갔던 슈퍼마켓 : 건물 좌표(구글), 구글 스트리트 뷰


그렇게 다 사고 나오니 시간은 약 15분 정도 흘러있었는데, 시간이 빠듯하다고 생각하여 급하게 움직인 덕에 금방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상당히 큰 것을 이룬 기분이었는데, 재도전이 불가능한 시간제한이 걸린 고난도 퀘스트를 클리어한 기분이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상태에서 멀리 있던 슈퍼마켓까지 발견해 풍족하게 장을 봐온 것이 신기했다. 기차에 돌아와서야 긴장감이 해소되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장할 일도 아닌데도 역시 내가 겁이 많아서 그렇게 긴장을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 부담이었는데, 기차를 놓치는 순간 모든 짐과 이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짜 걱정할게 그다지 없어졌다. 러시아에서 장보는 게 말이 안 통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도 체험하게 되었고, 물자도 충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고, 정말 아무런 걱정이 없이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소동을 마치고 나니 이제 완전히 늦은 밤이 되었으며, 역시 마땅히 것도 없고 객차 내도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맥주 잔을 하며 자잘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쉬다가 천천히 잠이 들었다.




자기 전 어느 역을 지나칠 때 찍은 사진. ⓒ


전날은 늦은 시각에 탄 데다가 짐 정리하고 잘 공간을 마련하고 나니 이미 밤이 되어버려서 사실상 아무 일이 없었고, 이날이 사실상 기차여행의 첫날이었다. 한나절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일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첫날에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해냈기에 앞으로 기차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릴 때까지 계속 비슷하게 지냈다. 자고, 밥 먹고, 누워 있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잠시 복도도 걷고, 정차하면 바깥 구경 잠시 하다가 장도 보고, 자주 잠기는 화장실 때문에 고생하기도 하며 그냥저냥 보냈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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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글 잘 못 쓰는거 압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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