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12 : 이르쿠츠크, 기차역, 트램, 앙가라 호텔 등
20170205→0206, 스탠더드 트윈(Standard Twin)룸, 3명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오랜 여정을 잠시 쉬고, 이르쿠츠크 역에서 내렸다. 바이칼 호(湖)를 방문하기 위한 것으로, 이 도시를 통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베리아 중부의 제일 큰 도시라서 그런지, 우리 말고도 내리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플랫폼은 매우 혼잡했고,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봤던 한국인들이 내리는 모습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통해 철길을 건너가야 했다. 다행히도 사람이 다니는 곳은 눈이 잘 치워져 있었기 때문에 미끄러질 걱정은 없었다. 다만 순간적인 인구 포화에 비해 통로의 폭이 좁아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하가 그다지 밝지 않으므로, 일행과 자칫하면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역 앞은 마중 나온 사람들과 호객하려는 택시기사들이 섞여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역 앞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서 더욱 혼란스러웠는데, 인도는 구분이 되어 있었지만 주차장과 버스/트램 정류장과 도로가 서로 명확한 구분이 없이 한 데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아무런 표시가 없이 밋밋하게 아스팔트만 칠해져 있을 뿐인 땅을 잘 구분해서 쓰고 있었다. 다만 버스와 트램 정류장이 도로와 주차장 사이에 있어 도로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 앞 구글 스트리트 뷰(링크) _ 주차장과 버스 정류장과 트램 정류장이 마구 섞여있음을 알 수 있다.
버스가 조금 더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지만, 트램을 타보고 싶어서 굳이 트램을 선택했다. 평소에 타기 힘든 것을 일부러 체험해본다는 것도 있었지만, 버스보다는 확실히 정해진 길이 있는 기차와 유사한 종류를 선호하는 내 성격도 반영되어 있었다. 트램 정류장의 표식이 높은 허공의 줄에 매달린 작은 판 하나라는 글을 보고 찾기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눈에 잘 띄어서 괜찮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한복판에 서있으려니 다소 위험한 느낌이다. 게다가 4차선 도로인데 트램은 중앙의 두 차선으로 다니므로, 타기 위해 도로를 건너야만 하는 구조는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트램이 정차하면 다니는 차들이 멈춰주었기에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트램은 굉음을 내며 도착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시대를 거슬러온 것 같았다. 상당히 낡아서 현역으로 운행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는데, 그나마 내부는 좀 괜찮았다. 탑승해서 앉아있으니 어느 여성분께서 차례대로 운임을 걷으러 다녔다. 이쪽 차례가 되어서 내가 3명이라고 손짓하니 전방에 있는 요금이 적힌 판을 가리킨다. 러시아어는 잘 몰랐지만, 15руб라고 적혀 있기에 눈치껏 45루블을 내니 넘어간다. 짐 요금이 따로 있다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지만, 언어가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 그런지 그냥 넘어갔다. 내부에는 러시아어밖에 없었지만, 구글 맵이 몇 정류장 뒤 내리면 되는지 알려주기도 했고, GPS로 내 위치가 잘 잡히기도 해서, 내리는 곳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트램에서 내린 뒤 몇 분 걸으니 키로프 광장(сквера кирова, Kirov Square)이 나왔고, 그 옆에 앙가라 호텔(Гостиница «Ангара», Angara Hotel)이 있었다. 다소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멀쩡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회전문을 통과하자 다소 한산해 보이기는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로비가 나왔고, 바로 리셉션으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내가 갔을 때 있던 직원은 영어를 잘 하긴 했지만, 러시아 억양이 다소 강한 편이었다. 예약은 스탠더드 트윈룸으로 했었는데, 상위 등급과의 차이점은 헤어드라이어와 냉장고의 유무 정도인데다 면적은 같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방으로 하였다.
이곳은 사전 결제할 때 침대 추가 비용이 계산되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했다. 그런데 얘기하는 걸 보니 나는 3명이라고 예약했지만 호텔 리셉션 쪽에서는 3명이라는 정보 자체가 가지 않은 것 같다. 대행 사이트(호텔스닷컴)의 문제인지, 호텔 측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호텔에서는 같은 사이트로 예매했음에도 3명이라고 잘 전달받았던 사실을 비추어 볼 때, 호텔 측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런 터라 엑스트라 베드의 준비 및 추가 인원에 대한 어메니티 지급이 상당히 늦어졌고, 게다가 추가 침대는 펴주지 않았으며 알아서 펴라는 식으로 건네주고 가기만 했다.
키는 카드키였으며, 한 사람당 하나씩 주었다. 방은 그런대로 깔끔해 보이기는 했으나 여기저기 낡은 흔적들이 많이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문틀이 비틀어져있어 내부의 콘크리트가 보이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객실이 좁은 편이었는데, 싱글 침대 두 개 사이에 엑스트라 베드를 펼치니 여유 공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격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괜찮기는 했다.
화장실은 양호한 편이었고, 수압도 괜찮았으며 온수도 충분히 나왔다. TV는 벽에 작은 게 달려 있었는데 화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볼 일이 없었기에 상관없었다. 창문 밖으로는 키로프 광장이 보여서 경치가 괜찮은 편이었으며, 호텔 앞으로 차가 많이 다니는 터라 소음이 다소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야간에 폭주를 하는 차량이 몇 대 지나갔는데, 그 소리는 상당히 크게 들렸다. 아침식사는 호텔 내 카페에서 할 수 있었으며, 전형적인 서양식 호텔 조식 뷔페에 러시아식 센스가 가미된 정도였다.
부대시설로는 영국식 펍과 바(Bar)와 중국요리 레스토랑과 헬스장과 관광 안내소 등이 있었는데, 하나도 이용하지 않아서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저렴한 카페테리아와 24시간 마트와 샌드위치를 파는 서브웨이(Subway) 등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마트만 방문해봤는데, 기본적인 물품은 충분히 다 있었고, 그 외 조리된 음식들을 엄청 다양하게 팔고 있기에, 테이크 아웃해서 호텔에서 먹으면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데울 수 있는 음식은 데워서 주기도 하니까, 필요하면 요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텔 내부 사진을 많이 보여주고 싶지만 찍은 사진이 없어서 올리지를 못 한다. 이전 호텔 글에서도 방 사진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나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부모님을 통제해서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내가 혼자 다니더라도 숙소의 사진은 잘 안 찍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신경 쓴다고 바쁘기도 하고, 그게 아니면 쉰다고 늘어져있다 보니 찍을 생각이 별로 안 든다. 그전에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낮을 다 보내고 나서도 숙소에 있기보다는 근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타입이기 때문에 숙소에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된다는 점도 크다.
여행 다녀오고 나서는 매번 대충이라도 좀 찍을 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다니는 도중에는 간과하기 때문에 항상 숙소 내부의 사진이 거의 없다. 이런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숙소를 소개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잠을 잔 곳도 추억의 장소인데, 사진을 제대로 남기지 않아 돌이켜보기 힘들게 되는 일이 반복되는 건 안타깝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생각해도 다음에 또 안 찍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크게 자신을 책망하지는 않는다.
총평을 내리자면 이틀 뒤 묵은 그 근처의 호텔이 개인적으로는 더 나았다. 이 호텔에서 3분 정도 안쪽 골목에 있을 뿐이지만 비슷한 가격에 방은 더 넓었고 낡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거기는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았고, 혹시 자는 곳 이상으로서의 호텔을 바란다면 이쪽이 더 나을 것 같다.
약간의 휴식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중심가로 나섰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