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02 :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공항, 기차역까지
20170201, VVO → 시내, 공항철도
입국심사는 엄청 빨리 끝났다. 일찍 나온 탓도 있지만 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게다가 심사관이 질문도 전혀 하지 않았는데, 혹시 받는다면 심사관이 있는 부스의 유리창에 붙어있는 종이를 참고하면 될듯하다. 영어가 된다면 상관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 몇 가지 단어들이 여러 언어로 표기되어 있고 번호까지 매겨져 있으니, 외국어에 약해도 일반적인 관광객이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사관들은 유럽 국가 치고는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었다. 금방 여권을 스캔하고 출입국 증명서와 함께 돌려주었다. 출입국 증명서의 중요성은 익히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도 큰 당부를 드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추가로 붙는 서류를 정말 싫어한다. 여권 하나만으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에 준하는 서류를 더 챙겨야 한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다. 다행히도 겨울이라 안쪽 주머니에 여권과 함께 넣고 지퍼를 잠그면 해결되어서 걱정을 좀 덜었다. 여름 여행 때 여권 보관할 장소가 애매해서 고민하던 것에 비하면 낫다.
입국심사대 바로 뒤쪽 아래층에 수하물 찾는 곳이 있었는데, 규모가 작은 걸 보니 왕래가 잦은 편인 공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심사가 너무 빨리 끝난 터라 아직 컨베이어에 짐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수 분 기다리니 수하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컨베이어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건지, 짐을 워낙 대충 놓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왔던 짐이 다시 들어갈 때 입구에서 막히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래서 수시로 정지했다가 재개했다. 그런데 그럴 때도 다시 걸리지 않도록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만 치우고 다시 가동하는 식이라 자주 멈췄는데, 그래서 수하물 수령이 더 늦어졌다. 내가 제대로 정리해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괜히 손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냥 놔뒀다.
수화물을 챙겨 조금 걸으니 바로 공항 로비다. 규모가 작은 탓인지 출국 로비와 입국 로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들어서자마자 가벼운 택시 호객을 받지만, 가볍게 말을 거는 정도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진짜 심각한 곳에서는 짐에 손을 대려고 하거나 길을 막아서기까지 하니까.
원래는 공항에서 심카드(유심칩)도 사고 환전도 하려고 했으나, 심카드의 경우에는 МТС(MTS)의 부스에 앞서 나간 한국인들이 줄을 이미 길게 서있는 관계로 패스하기로 했다. 얼마나 걸릴지 도저히 알 수 없기도 하고, 거기가 정식 대리점이 아니라 일처리가 서툴기 때문에, 잘못 개통되었다거나 큰 심카드를 가이드 없이 적당히 잘라 넣어준다는 식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안 좋은 소문들을 많이 본 터라, 굳이 여기서 하기보다는 시내에서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МегаФон(MegaFon)과 Билайн(Beeline)의 부스는 줄이 없었지만, МТС(MTS)로 하고 싶었기에 그냥 무시했다.
환전하는 곳은 출입구 쪽 항공사 부스가 밀집한 곳 근처에 있었는데, 공항 치고 그렇게 높은 환율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사설 환전소와 비교 계산해보니 100달러 기준으로 3달러 정도 손해 보는 정도였다. 한 푼이 아까운 여행자가 아니라면 공항에서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낭비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100달러만 교환하고 나머지는 다음날 시내 사설 환전소에서 했다.
환전을 한 다음에는 공항 밖을 잠시 구경했다. 나가자마자 가벼운 추위가 엄습했지만, 기온을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밖에서 바라 본 공항 건물은 현대적이고 상당히 미려했으며,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평지와 거기에 쌓인 잔잔한 눈은 내가 다른 장소에 왔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잠시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고 다시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보안검사를 받았다.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다. 큰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입장할 때부터 엑스레이와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검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면 협조 못할 것은 없다. 다행히도 엄청 깐깐하게 검색하는 것은 아니라서 금방 지나갈 수 있었다.
나갔다가 굳이 들어온 이유는 시내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힘들고, 택시는 비싸다. 그리고 마침 비행기 도착 시간에 근접하여 기차가 출발하는 데다, 개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철도를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차역으로의 출입구는 공항 건물 내에만 있는 것 같았고, 국제선 입국장 바로 앞이었다.
역 대합실은 생각보다 작았는데, 그에 비해 플랫폼은 약간 커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살짝 일찍 도착해서 스탠다드 티켓을 끊고 기다리고 있으니 심카드를 산다고 통신사 카운터에 있던 사람들이나 ATM에서 돈을 인출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승객들은 대부분 외국인(한국인)들로, 러시아 사람들은 그다지 타지 않는 것 같다.
기다리다 화장실을 잠시 다녀오고 싶어 표지판대로 향했는데,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도 화장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2층 정도 내려가니 사무실 같은 복도가 나오는데, 화장실이 도저히 어딘지 감이 오질 않아 헤매고 있으니 지나가던 청소부께서 나를 불러서 내려온 계단 바로 옆에 있던 문을 가리킨다. 러시아어로 말씀하셔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 호의에 감사드렸다. 솔직히 처음 본다면 화장실로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출발 시각이 가까워지니 직원이 나와 탑승하라고 안내했다. 플랫폼이 한국에서는 잘 못 보던 두단식 승강장이라 신선했다. 유럽 여행 다닐 때는 흔하게 보던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다. 다만 선호하지는 않는데, 배정된 좌석에 따라 기차를 타기 위해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십 수대의 객차를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거슬러 올라가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개찰구와 가장 가까운 객차는 비즈니스석이었고, 그 뒤로는 스탠다드였다. 비즈니스는 1열당 4석인 반면 스탠다드는 1열에 팔걸이가 없는 6석이었는데, 열차의 너비가 넓어서 공간이 충분했기에 불편함은 그다지 없었다. 사실 불편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용객이 적기 때문인데, 운영이 적자라고 하는 것이 납득 갈 정도였다.
시간이 되자 열차는 서서히 출발했다. 마침 해가 서서히 지고 있어서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며 갈 수 있었다. 그런 붉고 뜨거워 보이는 태양과는 대조적으로 지면에는 차가운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공항 근처는 눈을 열심히 치우는 터라 그다지 안 보였지만, 그곳을 벗어나니 바로 수 cm는 기본적으로 쌓여있는 듯한 마을이 펼쳐졌다.
게다가 출발한 지 수십 분 후 열차는 바다가 보이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얼음 위에 구멍을 파고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니 이곳이 확실히 추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부동항(不凍港)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얼핏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는 곳은 어는 것 같다.
열차는 시내로 바로 가지는 않았고, 중간에 여러 역을 들러 현지인들을 조금 실었다. 역시라면 역시랄까, 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다. 현지인들이 타서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표를 체크하러 다닌다. 공항의 역에는 개찰구가 있지만, 정차하는 역에는 개찰구가 없어 보이는 구조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참 보기 힘든 광경이다.
출발한 지 약 한 시간쯤 지나니 블라디보스토크(블라디보스톡) 역에 도착했다. 그 사이 해는 거의 다 저물어 날은 어둑해졌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