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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 Jun 11. 2024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산후우울증을 이겨내고 나를 찾는 공간

 내가 갑자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산후우울증 때문이었다. 이제 곧 11개월에 접어드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나는 아기를 키우기 시작하며 가끔씩 불쑥 올라오는 우울감과 무기력을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기를 낳고 나면 삶이 한번 아주 크게 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엄마라는 역할을 만나 적응을 하면서 겪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종종 사람들이 표현하기를 아기를 낳는 일은 내 삶의 차원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일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 말이 딱 맞는 말이구나 싶다. 일단 온전히 나만을 위한 삶을 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늦잠자기, 먹고싶을때 밥먹기, 화장실 가고싶을때 마음편하게 가기, 홀가분하게 외출하기 등 자유를 누리는 일이 많이 어려워졌다. 특히 아기가 어릴때는 더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아기에게 완전히 속박되어 버린 상황에 남편은 출근하고 혼자 아기를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특히 나는 임신 7주차에 절박유산 진단을 받고 재택근무를 1개월 정도 하다가 이후에는 퇴사를 하고 현재까지 약 1년 반 가량 쭉 쉬고 있는 상황이다. 내 전문 지식들도 많이 사라져가는 것 같고,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역량이 예전과 같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문득 몰려오기도 한다. 이런 고민을 종종 하지만 현실은 예민한 아기를 키우느라 아기 자는 밤 시간에도 계속 옆에 있어야 하고(안그러면 깨서 울면서 완전히 잠에서 깨어버린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아기 이유식, 청소, 빨래 등을 하기 바쁘다.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낯을 엄청 가리는 아기라서 내가 없을 때 아기가 다른 사람과 있는 것이 아직은 불가능하다. 즉, 지금은 내 전문성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쩌다 자유롭게 내 시간을 쓰려고 하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양보받아야 겨우 내 시간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남편도 평일 내내 일하느라 힘든데 주말 시간까지 육아를 혼자 온전히 해달라고 부탁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자주 부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나를 찾을 시간과 공간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원래 친구들을 만나고 활동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도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분명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고 깨닫고 배우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그냥 지나가고 사라져버리는 느낌도 들었고, 이런 소소한 깨달음을 정리해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가 생각났다. 원래도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서강대에서 글쓰기 튜터로 일을 하기도 했었던 터라 글쓰기는 나에게 스트레스 받는 활동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이다. 글을 쓰다보면 내 생각도 정리가 되고, 글을 완성시키고 나면 뿌듯함이 있다. '아기가 낮잠자는 시간 동안 약간의 틈을 내면 글을 쓸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은 온전히 내 공간이고, 내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내 시간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되었다.


 실제로 요 근래 브런치에 글을 쓰는 활동을 시작하면서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남편에게도 "나 작가야. 지금 작가활동 하는 시간이야."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남편도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한다. 다만 매순간 시간에 쫓기며 글을 써야하기때문에 완성도 높은 글을 써내려는 마음은 내려두었다. 정말 좋은 글을 쓰려면 글의 전체 주제, 단락별 주제, 문단 구성 등 미리 개요를 짜고 수정을 여러번 거쳐야 잘 정리되고 다듬어진 글이 나온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래도 글을 쓰는 활동은 하고 싶기에 그냥 가볍게 에세이처럼 생각나는 대로 쭉 글을 쓰기로 했다. 보통은 쓴 글을 다시 한번 읽고 수정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대충 읽어보고 올려버리기 일쑤지만 말이다. '오늘도 글 한 편 썼네.' 하는 성취감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에 글을 쓰는 활동이 참 재미있다. '혹시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이 글을 마주쳐서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될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요즘은 정말 아기를 기르며 바쁘게 사느라 깊게 고찰한 글을 써내기가 어렵지만 브런치 활동을 하면서 쭉 내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놓고 언젠가는 이 조각들을 예쁘게 꿰어낼 날이 오면 좋겠다. 브런치 덕분에 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을 더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참 고맙다. 앞으로도 내 브런치를 소소한 일기처럼 따뜻한 글을 써내려가는 공간이자 가끔은 내 마음과 생각도 한번쯤 더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보잘것 없는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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