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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곡동 서작가 Nov 27. 2021

만나지 못한 당신의 평안을 빌며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이환희, 이지은



2020년 4월, 우연히 입사한 곳에서 별안간 ‘편집’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책을 만드는 작업과 관련된 책을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책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 은유 님이 출판업계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 ‘어크로스’의 이환희 편집자였다. <출판하는 마음>에서 엿보인 그의 생각과 성품에 끌렸다. 그래서 ‘책을 읽다 그 저자가 궁금하면 페이스북으로 몰래 찾아보는’ 나의 오랜 습성을 따라 페이스북에서 그를 찾았다. 페북 속 그 역시 어쩐지 매력적이었다. 평범한 얼굴, 그러나 어딘지 맑고 깨끗해보이는 인상, 짧은 글에서 엿보이는 어떤 고민들. 그게 좋아 모르는 사이이면서 무턱대고 페북 친구신청을 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도 말해두었다. “자기, 나중에 책 낼 때 이 편집자랑 작업하면 잘 맞을 것 같아.” 하고.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무심히 페이스북을 훑다가 알게 되었다. 그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장에서 하루종일 뭘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내내 동동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괴로워하던 나는, 2020년 내내 간간이 그의 소식을 그렇게 출퇴근길 페북에서 접했다. 페북 속 그는 때로 많이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많은 사람들과 댓글을 주고 받으며 힘을 얻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휴직을 하고 요리 포스팅을 올리면서 아내를 ‘우리 집 바깥양반’이라고 칭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고, 히어로 캐릭터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걸 알고는 ‘이건 좀 의외인데?’ 싶었다. 


그 의외의 취미 이면에 무엇이 있었을지, 이번 책을 읽으며 알았다. 마블 캐릭터 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를 가장 좋아했다는 그는, 지은 님의 짐작처럼, 아마도 자신의 내면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스스로를 구현해낼 수 없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성장 배경으로 인해 그와 비슷한 면모를 지닌 히어로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출판하는 마음>을 읽으며 만난 그는 꽤나 타인의 고통에 감응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겸손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오래전부터 남겨 왔다는 많은 글들 속에는 자신의 한계를 더욱 크게 느끼고 혹독하리만치 자신을 몰아세우는 그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어릴적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십여 년간 남매를 키워주셨다는 할매의 임종을 보러 가서는 스스로를 ‘인정머리 없는’ 막내 손자였노라고 평하고, ‘나같이 차갑고 공감능력 없는 사람이 내 곁에 하나 더 있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식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아내 지은 님을 만났고, 투병으로 휴직을 하면서도 끊어낼 수 없어 유지하고 있던 후원처가 줄잡아 열 군데는 됐던 사람이면서도, 그는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치 엄격했다. 


그는 내가 페친 신청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인 2020년 5월에, 이렇게 썼다. 


평생 치열하게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이 회사에서만이라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지.

그가 정말로 그 이전엔 치열했던 적이 없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회사에서만이라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던 덕에, 세상은 그가 내어놓고 간 책들로 반짝인다. 그중엔 내가 좋아하는 책도 여럿 포함돼 있다. 그 책의 목록만 보아도, 그가 무엇을 지향했고 무엇을 꿈꾸었으며 어디를 향해 그렇게 치열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있어 더욱 마음이 아팠다. 


같은 글에서,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정작 뭔가 엄청난 걸 만들어내지도 못했으면서
나는끊임없이 지치고 힘들고 어려워하는 나를
비난하고 의심하고 다그치면서
죽이곤 했지.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즐겁고
괴롭고 짜릿하고 괴로웠지. 

그의 괴로움을 먹고 나왔을 책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더 좋아졌으리라고, 그 책들의 독자로서 나는 믿는다. 하지만 실은, 세상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그냥 그가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세상은 그의 치열한 분투 끝에 나온 어떤 작업물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로 인해 더 좋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사후,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은 그의 존재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빛과 따뜻함으로 머물렀을지 알게 해주었다. 스스로에게 조금 덜 모질었어도 될 것 같은데, 그 모든 괴로움을 껴안고 스스로를 불태운 그가 못내 아쉽다. 사랑하는 사람들, 아끼는 벗들, 고양이들, 좋은 음식과 음악과 책. 그것들에 둘러싸여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덜 괴로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것이 그가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즐겁고 짜릿해'한 일이었다면, 그것이 그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면, 그것에서 의미를 찾아주는 것 또한 그를 아끼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일 게다. 그의 괴로움과 외로움 덕에 한뼘 더 자랐을 나는, 그의 그 괴로움과 외로움에 빚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그의 투병이 어느덧 계절을 넘겨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페북 속 그는 퉁퉁 부은 얼굴에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하다 졸다, 노래를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그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가라앉고는 했다. 글로만 만났지만 언젠가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던 그였기에, 그의 맑고 해사했던 보통 때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지 못한 것이 오래도록 아프고 슬펐다. 책 속에는 그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이 함께 언급되는데, 지난 3, 4일간 밤마다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내게도 그 노래들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그러나 세상에는 더없이 귀했던 존재 이환희 님, 그리고 꼭 그와 닮은 듯 똑같이 맑고 해사한 얼굴을 한 이지은 님에게 평안과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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