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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곡동 서작가 Dec 18. 2022

훈육과 학대 사이,
그 비극의 시작을 막으려면

2022년 아동권리 컨퍼런스 토론문

안녕하세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서이슬입니다. 저는 곧 만 열 살이 되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출산 당시 배우자가 박사과정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해외에 있었는데요. 낯선 나라에서 갑작스레 엄마가 되어 7년을 살았지만 그곳에서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이 손등 한 번, 등짝 한 번 때리는 일 없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하며 살아온 것은 모두 주변의 물리적, 정서적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저는 저희 가정의 육아 경험을 담아 <아이는 누가 길러요>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요. 그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 그리고 책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뒷이야기가 오늘의 주제인 ‘긍정적 양육문화’와도 연결됩니다.

  

고립된 양육자가 잘못된 훈육과 학대의 가해자가 된다  


소위 말하는 ‘집중 육아기’를 다 지나온 사람으로서, 양육자가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자칫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폭력을 저지르게 되는 순간은 바로 ‘육아의 힘듦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 그리고 ‘아이의 소위 ‘문제적 행동’을 혼자서,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에 수 십 번씩 기저귀를 갈고, 먹이고, 재우기를 반복해야 하는 신생아기,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수 십, 수 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는 유아기, 생활습관, 학습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령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시기에 누군가 곁에 있어 ‘육아는 원래 이렇게 힘든 게 맞다, 그 힘든 걸 당신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알아주고, 양육자가 어려워하는 지점을 이해하고 조금 기다려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보다 건강한 양육 문화가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감시와 신고 이전에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양육자가 힘듦의 악순환에 갇혀 ‘지금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적인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다수는, 바로 그런 ‘위험한 상태’에 놓인 양육자들로부터 비롯됩니다. 세간에 알려진 대다수의 학대 가해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가 생기면 당장 어떤 생활이 펼쳐지고, 어떤 어려움이 닥칠 수 있는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고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육아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떠넘기기에는, 우리 사회는 아직 아동친화적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가 부족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뒤늦게나마 각종 육아서를 탐독하고 온라인 상의 정보를 찾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저만 해도, 임신 중에 꽤나 많은 책을 찾아 읽었고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렴풋이 이름만 알고 있던 마리아 몬테소리의 저작들을 찾아 읽으면서 아이를 대하는 시선을 일찍 교정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찾아볼 여유나 여력 없이 갑자기 부모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끔찍한 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오는 사후 대책은 학대 가해자에 대한 신고의무 강화, 위기 가정에 대한 기관 개입 강화입니다. 하지만 체벌과 학대 없는 긍정적인 양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면, 감시와 신고 이전에 학대 방지를 위한 부모 교육과 지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책적 지원의 예시와 방향: 미국에서의 경험


미국은 결코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잘 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노력은 하는구나’싶은 영역이 있는데, 그중 제가 경험한 정책적 지원은 저소득 가정 양육자를 위한 바우처 및 교육을 지원하는 WIC (Women, Infants, and Children)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WIC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임신부, 신생아, 그리고 만 5세 미만 아동의 영양 및 건강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신생아기에는 모유수유 교육과 더불어 아기 분유를, 유아기에는 아이에게 먹일 우유, 과일 등의 간식거리를 바우처로 지원합니다. 


이때, 다음 바우처를 받으려면 반드시 양육자가 아이를 데리고 가서 기본 성장/발달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양육자는 담당자와 함께 아이를 보면서 양육 상황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육아 팁, 수유 상담, 발달시기별 특성, 긍정적 양육 방법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도 ‘체벌’에 해당하는, 일부 양육자들 사이에서 꽤나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잘못된 훈육법이 있는데요. 아이의 엉덩이를 세게 때리거나(spanking) 아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 질질 끌고 가는(dragging) 행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나쁜 말을 하는 아이를 훈육한답시고 화장실로 끌고 가 입에 비누를 마구 문지른 다음 씻게 하는 것도 그 예죠. WIC에서 저를 정기적으로 만나던 담당자는 이런 행위도 학대(abuse)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또, 제 아이가 배변을 가리고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여유와 인내를 갖고 지도하기를 독려한 것도 그곳의 담당자였습니다. 담당자는 이미 청년기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했는데, 육아와 관련해 어려운 점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방문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 좋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취약계층 아동의 영양 공급을 지원하기 위한 ‘영양 플러스 사업’이 있지만 아동발달 전반에 관한 양육자 교육을 포괄하지 못하고 영양 교육에만 치중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접근은 ‘영양 관리’를 넘어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추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양육자가 지게 되는 과도한 양육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는 처음 부모가 될 이들에게 올바른 양육 방법을 교육하고, 출산 후에도 지근거리에서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순간을 알아채고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각종 지원 프로그램 구축, 그리고 안내와 연계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산전 검사, 산후조리, 출생신고, 영유아검진, 소아과 진료 등으로 이어지는, 양육자가 거쳐가는 일련의 보건 및 행정 기관 곳곳에 부모가 된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고, 이에 대한 안내와 연계가 가능해야 합니다. 


임신 당시 제게는 의료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 진단을 지역 내 ‘보건소’에 해당하는 ‘Community Health Center’에서 받았는데요. 임신 진단을 받던 당일, 저는 지역 내 각종 임신부 지원 프로그램이 빼곡히 적힌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료를 보고, 저는 곧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임신부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 배우자와 함께 산전 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이 교육 덕분에 출산 당일 겪게 될 일들, 출산 후 찾아올 수 있는 우울감, 신생아를 다루는 방법, 신생아 목욕법, 신생아의 특성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자지러지게 우는 신생아를 영어로 ‘Colic baby’라고 하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듯 보이는 아기의 특성이 실은 꽤나 흔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배운 것도 유용했습니다. 아기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 특성을 미리 알면, 모를 때에 비해 아무래도 덜 당황스럽고, 덜 과격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보육/교육 기관의 역할: 올바른 양육문화의 실천자이자 제공자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의 교육기관이 신고의무자로서만이 아니라 올바른 양육법의 실천자이자 제공자로서 역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희 아이는 계속되는 지원 프로그램의 연계 시스템 덕분에 만 3세부터 미국의 공보육 기관인 ‘헤드스타트(Head Start)’에 등록해 어린이집 과정을 거칠 수 있었는데요. 헤드스타트에서는 몇 해 전부터 소위 ‘의식적 훈육(Conscious Discipline)’이라는 훈육법을 공식 훈육법으로 채택해 전 교사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이 ‘의식적 훈육’은 취약계층 아동일수록 어려움을 겪는 사회-정서 스킬(social-emotional skill)의 발달 및 건강한 자존감 형성을 중심에 놓고, 아동에게 올바른 행동 양식을 가르치기 위해 긍정적 양육법을 활용하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협박이나 체벌 등의 징벌적 훈육이나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아닌, 아동이 현재 처한 여건이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 아동의 현재 감정을 인지하고, 아동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문제적 행동’을 개선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폭발하는 습성이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의 화가 폭발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의식적 훈육’을 실천하는 교사는 아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멈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봐. 그러면서 힘을 빼보자.” “너는 안전해. 같이 호흡을 골라보자. 화 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어.”


이런 것도 있습니다. 다른 친구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져서 친구를 밀치고 때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앞서 말한 ‘미국식 체벌'에 익숙한 교사나 부모는 아이를 거칠게 잡아끌어 아이에게서 놀이감을 빼앗거나, 벌을 줍니다. 하지만 ‘의식적 훈육'훈련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에게 말로 표현해보자. ‘나는 네가 이렇게 하면 싫어. 하지 마.‘” 유아기 아이들은 주변 성인들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며 배운다는 점에 착안해, 일부러 평소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교사도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헤드스타트 교실에서 보조교사로 몇 개월간 일 하면서, 이미 이렇게 거칠어진 아이들에게 이런 고상한 훈육법이 도대체 가당키나 하냐며 불평하는 교사도 여럿 봤습니다. 하지만 이 ‘의식적 훈육’법은, 무엇보다도 아이를 돌보는 성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교사와 부모 스스로 자신의 양육 방식을 의식하고 교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헤드스타트는 이 접근법을 공식 훈육법으로 채택하면서, 매달 열리는 교사 워크숍에서 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부모 교육을 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검색하다 찾은, 의식적 훈육 부모교육 안내문의 예시입니다.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의 양육자들은 폭력이나 방임 등의 취약한 배경에서 자랐거나 현재도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아 ‘올바른 양육법의 실천자’로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사와 부모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서 보여드린 간단한 일러스트 자료들을 복사해서 가정통신문으로 보내고, 집에서도 이런 접근법을 사용해달라고 등/하원 시 부모들에게 당부하는 건 교사 입장에서 꽤나 번거로운 일이지만,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충분한 교육, 그리고 기관 간 교육 정보 공유와 연계가 아이들을 살린다


지금까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렸는데요.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임신-출산-육아-취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양육자가 긍정적 양육법에 관한 지식과 정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기관과 프로그램이 곳곳에 필요하다

2.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보건/행정기관 간 정보 공유와 연계가 필요하다

3.    긍정적 양육문화의 실천자이자 제공자로서의 보육/교육 기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육 내용이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스웨덴에서는 1979년에 세계 최초로 체벌금지법을 통과시킨 후, 심지어 우유팩에까지도 그 내용을 실어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이 그 사실을 알도록 애썼다고 하죠. 해당 내용에 대한 브로슈어를 여러 언어로 제작해 350만 가정에 보급했다고도 합니다. 그 정도로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캠페인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해, 이러한 내용이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전단지, 책자, 온라인 캠페인, 공익광고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양육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드나드는 모든 곳에서 긍정적 양육문화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어야 하고, 그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사람의 손길 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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