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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y 04. 2020

증인으로서 증언, 소설 속 서술자의 정직과 객관성

『페스트』 같이 읽기 3




민음사 출판의 페스트는 총 5부로 이루어져 있어요. 5부 끝에는 김화영 번역자님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고요. 김화영님은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카뮈 연구자'로 손꼽히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프랑스 프로방스대학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알베르 카뮈 전집』을 비롯해 『어린 왕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발자크와 플로베르』, 『김화영의 번역수첩』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대단하쥬?)


아래는 해설 부분 읽다가 발췌한 부분이에요. 문학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에 참 매력있죠. 동시에 번역자 혹은 평론가의 전문적인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느낀 영역의 폭을 확장하는 데도 역할을 합니다. 




417

이 작품은 전체 5막으로 이루어진 고전 비극처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 하나의 장으로 된 짧은 3부를 중심으로 해서 비교적 길이가 긴 앞의 1,2부와 뒤의 4,5부가 대칭을 이루는 균형잡힌 형식을 갖추고 있다. (...) 우선 소설의 1장에서 무대(오랑)가 설정된다. 이 도시의 지형은 서술자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요소로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도시는 완벽하게 선을 그어 놓은 듯한 만에 면해 있고 빛 밝은 언덕들에 둘러싸인 채 헐벗은 고원 한가운데, 비길 데 없는 경치와 접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여 지적해 두는 것이 옳으리라. 다만 이 도시가 그 만을 등지고 있으며, 그래서 바다를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야만 바다를 볼 수가 있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하겠다.” (14-15p) 이 도시가 ‘완벽하게 선을 그어 놓은 듯한 만’에 면해 있다든가 ‘고원’ 위에, 바다를 ‘등지고’, 또 더군다나 ‘일부러 찾아가야만’ 될 만큼 분리된 채 세워져 있다는 사실은 장차 페스트 발생시 이 도시 공간을 완벽하게 고립시켜 존재의 ‘감옥’으로 만드는 공간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 소설 배경의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는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페스트가 창궐하게 될 도시의 지리적 공간이 마치 섬처럼 봉쇄되기 쉬운 위치적 요건을 갖추었다는 점. 감염으로 인해 고립된 도시가 중심 배경이니 공간을 중심으로 재독을 해봐도 좋겠다 싶어요!



         

431-433

그러면 이 '연대기'의 '서술자'가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의 임무는 "다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것이 한 민중 전체의 삶에 관계되는 일이고, 또 그리하여 그가 하는 말이 진실임을 마음속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증인들 수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뿐"이라고 그는 이미 도입부에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15쪽). 따라서, 서술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 먼저 '정직성'이다. '증인들이 인정하는' 사실을, 오직 사실만을 말한다는 것은 서술자의 또 다른 자질인 '겸손'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임의적인 생각들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리하여 정직성과 겸손이라는 그의 자질은 궁극적으로 서술의 '객관성'과 결부된다. 그는 오로지 '관찰자' 혹은 '증인'으로서 '증언'("이런 일이 일어났다")할 뿐이다.


(...)

“끔찍하고 집요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집요한 증언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시사평론, 플레야드판 카뮈 전집 2권 719쪽) 페스트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증인’이다. 투쟁하는 사람의 행동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증언 행위이기 때문이다. 


: 소설의 첫 부분부터 소설의 화자가 밝혀지진 않지만 얼추 짐작해볼 수 있어요. 가장 객관적으로 진실된 인물이 화자인데요. 어떠한 개입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지 이 모든 사실을, 상황을 '서술'하는 데에 충실한 서술자는 5부에 가서 밝혀지게 됩니다. (작중 서술자가 누구인지 여기에 쓰면 스포일이 될 듯해 언급은 안할게요) 궁금하시면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후후.






이로써 페스트를 총 세 번에 걸쳐 발췌독을 하며 간단하게 읽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4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라 아무래도 요약 정리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되지 못한 것 같지만, 조금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셨는지 궁금하네요. 


tvN 예능 '요즘 책방' 에도 소개되었어요. 페스트,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다가오는 주말에는 이다혜 작가님의 신간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로 돌아올게요! 



세미콜론 출판사 '띵' 시리즈의 첫작,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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