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월 May 01. 2020

코로나 시대의 중고거래 (3)

네고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메시지 주인의 닉네임은 ‘해맑은’이었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의 중고거래 경험으로 한 번에 값을 깎기 보다는 여러 번에 걸쳐 네고를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알고 있었다. “사정이 있으시니 특별히 해맑은 님께는 5.9(5만 9천원)에 해드릴게요.” 나는 물건을 파는 갑의 위치에 있고, 물건의 가격은 내가 정하는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중고 거래할 때 닉네임 아래에는 이용자의 메시지 답장 평균 속도가 표시되어 있다. ‘10분 이내, 30분 이내, 1시간 이내 응답’ 이런 식이다. 해맑은 은 보통 30분 이내 응답하는 이용자였다. 30분이 지났지만 메시지는 ‘안읽음’ 상태로 계속됐고, 나는 혹시나 팔리지 않을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5년이 넘게 신발장에 묵혀있던 신발이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아가려는데, 어설픈 자존심과 서투른 네고실력으로 거래를 망친 건 아닌가 슬쩍 조바심이 들었다.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순간의 몇 분을 더 견디지 못하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5만원에 해드릴게요.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실까요?’      


몇 시간 뒤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으로 해맑은이 찾아왔다. 캐쥬얼차림의 옷을 입은 그는 닉네임을 알고 있어서인지 꽤 해맑아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가벼워보이는 그의 발걸음에 자연스레 그의 신발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그의 발에는 그의 닉네임과 그의 네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는 나이키 운동화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잠시 자신의 발을 보는듯 하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건네고선 안전화를 들고 경쾌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접힌 자국이 선명한 구깃한 5만 원 권 1장을 들고 나는 집에 들어와 다시 어플을 켰다. 어플의 거래 후기에는 이용자의 거래 매너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었는데, 비매너 평가에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거래 직전 취소했다.' '불친절하다' 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네고를 많이 한 기능성 운동화를 사러 온 구매자가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는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거래 장소에 온 것은 어떠한 비매너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애초에 비매너라고 느끼고 비매너 평가 항목을 샅샅이 훑는 나 자신은 구깃한 지폐처럼 쪼그라져 있었다. 물건을 팔아 놓고 사기 당한 것 같은 괴상한 기분을 느끼며 다짐했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코로나 때문에 실직상태라, 돈이 얼마 없는데 2.5에는 안 될까요?” 딩동- 알림이 울려서 폰을 열어보니, 동네중고마켓 어플에서 온 메시지다. 벌써 다섯 번째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구구절절한 사연이 낯익다. 네고에 창의적인 네고는 없다. 차라리 그냥 좀 깎아달래지. 나는 덩달아 받아쳤다. “저도 학생이라서요. 영화관 알바도 잘리고 돈 없어서 쓰던 물건들 내놓은 거예요.”


여전히 하이에나 마냥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찾아 중고 마켓에 올린다. 팔아서 번 돈은 쌀이 되고, 라면이 되고, 종종 고기도 된다. 네고는 정중히 사양한다. 


(완)



https://brunch.co.kr/@sep108/39


https://brunch.co.kr/@sep108/40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의 중고거래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